
틸다 스윈튼은 마치 르네상스 회화에서 걸어 나온 것 같은 배우다. 보통 배우들을 향해 ‘범접할 수 없는’이라는 수식어를 쓰는데, 그 표현을 단 한 명에게만 허락한다면 오직 그에게만 쓰고 싶다. 틸다 스윈튼의 표정을 보고 그 기분을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마치 시간과 공간의 감각이 소멸된 듯한 그 얼굴은 마치 밀랍인형처럼 인위적이다. 눈곱만큼의 윤기와 생기도 흐르지 않는, 일말의 현실감도 없는 얼굴이랄까.

16세기 천재 화가 카라바조의 삶을 재구성한 데릭 저먼의 영화 〈카라바조〉(1986)가 틸다 스윈튼의 데뷔작이라는 것도 무척 상징적이다. 16세기의 천재 화가 카라바조의 삶을 재구성한 영화. 늙은 화가 카라바조(나이젤 테리)는 죽음의 침상에서 과거를 회상한다. 이단적이고 불손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화풍으로 귀족들과 주교의 후원을 받던 카라바조는 모델 라누치오(숀 빈)와 그의 연인 레나(틸다 스윈튼) 사이에서 삼각관계에 빠지게 된다. 현대와 르네상스를 가로지르는 실험적인 형식 속에서 강렬한 명암대비와 빛으로 특징지어지는 카라바조의 대표적인 그림들을 탁월하게 재현하며, 데릭 저먼의 영상미가 정점에 도달한 영화다. 이처럼 〈카라바조〉를 시작으로 〈대영제국의 몰락〉(1987), 〈가든〉(1990), 〈에드워드2세〉(1991) 등 데릭 저먼과 쭉 함께 하며 틸다 스윈튼의 운명은 이미 결정지어졌다. 그가 스크린에 등장하는 순간 데릭 저먼이 의도한대로, 미학적 욕망과 성적 욕망이 그리 멀지 않은 그 세계에서 순식간에 육욕은 증발한다.

〈올란도〉(1992)에서는 심지어 400년을 살아 남성과 여성 사이를 오가는 인간이었다. 16세기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귀족 소년이었던 올란도(틸다 스윈튼)의 미모에 반한 여왕이 ‘영원히 늙지 말고 죽지도 말라’는 명을 내린다. 이후 사랑, 정치, 전쟁, 또다시 사랑, 그렇게 무려 400년의 시간을 관통해 남자도, 여자도 아닌 완전한 인간이 된 올란도는 마침내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언제나 진정한 남성이자 또한 진정한 여성이었던 올란도는, 젠더에 대한 고민이 반영돼가던 1990년대 영화문화를 표상하는 젠더리스 캐릭터였다.

한참 시간이 흘러 〈케빈에 대하여〉(2011)는 또 어떤가. 자유로운 삶을 즐기던 여행가 에바(틸다 스윈튼)에게 아들 케빈(에즈라 밀러)이 생기면서 삶은 180도 달라진다. 일과 양육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 에바의 삶은 케빈의 이유 모를 반항으로 점점 힘들어져만 간다. 에바는 가족 중 유독 자신에게만 마음을 열지 않는 케빈과 가까워지기 위해 애쓰지만, 그럴수록 케빈은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에바에게 고통을 준다. 세월이 흘러 청소년이 된 케빈은 에바가 평생 혼자 짊어져야 할 끔찍한 일을 저지르게 된다. 아들과의 이해하기 힘든 관계 속에서 기이한 모성의 딜레마를 근심하는 배우로, 틸다 스윈튼 외의 다른 얼굴은 쉬이 떠오르지 않는다. 린 램지 감독은 에바의 얼굴에서 아들에 대한 그 어떤 원망도, 혹은 자신의 처지에 대한 탄식도 읽히지 않는 얼굴이길 바랐다. 그처럼 원근법이 느껴지지 않는 듯한 창백한 피부와 눈동자, 그리고 침묵과 광기가 뒤섞인 그 얼굴은 ‘중성적’이라기보다 차라리 ‘무(無)성적’이다.


〈설국열차〉(2013)에서 굵은 뿔테 안경을 쓰고 뻐드렁니 틀니를 끼운 총리 메이슨(틸다 스윈튼)으로의 놀라운 변신을 제외하면, 틸다 스윈튼은 무척 기품 있고 귀족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배우인데, 실제 귀족 출신이라는 점이 묘한 반전이다.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가문 중 하나인 스윈턴 패밀리의 일원인 것. 육군 장성인 아버지는 기사 작위를 받았고 주지사였으며 대영제국 훈장 수훈자이다. 어머니도 ‘레이디’ 칭호를 받은 귀족 출신이다. 고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실제 친구였다는 사실도 유명한 일이다. 더구나 두 사람은 ‘베프’였다. 틸다는 가문의 엄격한 교육 방침에 따라, 집에서 멀리 떨어진 웨스트 히스 기숙 여학교에 들어갔는데, 바로 이곳에서 바로 다이애나 스펜서를 만나 친구가 됐다. 하지만 ‘올A’를 받을 정도로 성적이 좋았음에도 기숙사 생활에 만족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세월이 흘러 〈해리포터〉 시리즈를 보고서는, 호그와트 기숙학생들의 생활을 행복하게 그리고 있어 어린아이들에게 기숙학교에 대한 환상을 심어줄 수 있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엄격한 귀족 교육을 받던 그녀는 남아프리카와 케냐 지역으로 자원봉사 활동을 떠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갇혀진 기숙학교 학생으로 그때까지 알 수 없었던 세상의 진짜 ‘현실’을 보았던 것. 그렇게 사회 변화에 대한 강한 열망을 품게 되면서 나중에 캠브리지 대학에 들어가서는 공산당에 가입했고, 이후 스코틀랜드 사회당에도 들어갔다.

틸다 스윈튼이 명문 캠브리지 출신 배우라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앞서 얘기한 아프리카 자선봉사 활동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캠브리지 대학에 들어가며 작가를 꿈꿨다. 하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이 대단해서 작가의 꿈은 배우의 꿈으로 바뀌어 연극반에 들어가게 됐다. 참고로 캠브리지 대학 출신 배우들을 보자면,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간달프’ 이안 맥켈런과 레이첼 와이즈, 그리고 슈퍼히어로 ‘토르’의 동생 ‘로키’로 유명한 톰 히들스턴 등이 있다. 또한 라이벌 관계인 옥스퍼드 출신으로는 휴 그랜트와 케이트 베킨세일, 그리고 ‘미스터 빈’ 로완 앳킨슨이 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영국 최고 배우들을 배출해온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에 들어갔다. 하지만 케네스 브래너, 게리 올드먼, 대니얼 데이 루이스 등 쟁쟁한 남자 배우들 사이에서 별다른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극단 특유의 강한 형식미가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았던 것이다.
▶ 재개봉 〈올란도〉 틸다 스윈튼에 관한 글은 두번째 기사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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