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배우 이연과의 만남은 2부에서 이어집니다.

평소 밝은 성격으로 대범하게 도전하는 모습과 달리, 사실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두려움을 치유하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들었어요. 그렇게 시작한 연기가 어느 순간 ‘아 배우가 진짜 잘 맞는다. 더 잘해보고 싶다’ 하고 확 들어온 순간이 있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정확하게 있어요. 원래 음악을 하다가 목소리가 안 나올 정도로 무대 공포증이 와서 치료 목적으로 연기를 시작했는데요. 처음엔 워크숍으로 연기를 하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런데 사실 이게 진짜 내 직업이 되려면, 괴로운 순간이 찾아왔을 때 잘 이겨내야 하는 것 같아요. 그게 정확하게 첫 장편 작업인 〈파고〉 때였어요. 촬영 현장이 진짜 힘들었어요. 적은 예산에 섬 안에서 계속 촬영만 했거든요. 산꼭대기를 뛰어가는 장면을 20번 넘게 찍으면서 헛구역질이 나기도 했어요. 한번은 촬영 중에 제가 “할 거 되게 많네” 하고 나도 모르게 육성이 나와 버렸는데, 박정범 감독님이 웃으면서 “해야 돼. 너 배우잖아” 하셨어요. (웃음) 그렇게 촬영하며 진짜 힘들고 화가 날 때도 있었는데, 나중에 결과물을 보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저 사람이 나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그렇게 이 일을 괜히 시작했나, 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지만 그런 괴로움을 견디며 얻게 되는 재미를 느껴버린 거죠. 그때 내가 이 일을 진짜 좋아하는구나, 이게 앞으로의 내 직업이구나. 제대로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죠. 박정범 감독님과 〈파고〉라는 영화를 데뷔작으로 만난 게, 앞서 얘기한 그 ‘내 인생에서 행운처럼 이어져온 과정’의 시작인지도 모르겠네요.
〈파고〉가 첫 장편이었는데, 어떻게 캐스팅된 거였나요.
원래 다른 배우가 주인공이었거든요. 근데 그분이 하차하시면서 원래 조단역 역할이었던 제가 갑자기 주인공이 된 거예요. 사실 당시에 오디션을 꽤 많이 봤는데, 잘 풀리지 않을 때 만난 작품이 바로 〈파고〉에요. 그런 다음 〈담쟁이〉를 만났죠. 한제이 감독님이 촬영현장에서 계속 “연아, 너 진짜 좋은 배우야. 너무 좋아. 괜찮아!” 하시며 계속 격려해주셨어요.


〈담쟁이〉는 동성 연인 은수(우미화)와 예원(이연) 커플이, 갑작스러운 은수의 교통사고로 일상이 흔들리게 되는 이야기인데요. 예원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긍정적인 캐릭터죠. 〈파고〉와 비교하면 현실의 이연과도 많이 닮아 보였어요. 이런 직진형의 저돌적인 면모가 혹시 어릴 때 했던 육상선수의 경험, 운동선수의 재질에서 온 게 아닐까도 싶었어요. 부상으로 그만두었다지만, 여전히 그때 훈련한 태도가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엄청 커요. 제가 왜 이렇게 단순하고 태평할까 생각해봤는데, 오래 해온 운동이 사고의 범위를 확장하는 데 큰 영향을 준 것 같아요. 해보지 않고 생각만 할 때는 진짜 생각이 많아지잖아요. 근데 막상 해보면 생각할 필요가 없거든요. 제가 여러 번 ‘일단 해본다’라고 반복해서 말하는 이유도 거기 있는 것 같아요. 안 해보면 온갖 생각이 다 들어요. ‘저래서 별로일 거야’, ‘이래서 안 될 거야’ 같은 정말 많은 사소한 걱정들이요. 근데 막상 해보면 되게 단순해지잖아요. 운동할 때도 똑같았어요. 육상 선수였을 때도 뛰어보지 않으면 얼마나 힘든지 모르고, 해야 할 걸 하지 않으면 더 하기 싫거든요. 그래서 무조건 해야 해요. 물론 운동하러 나가는 것 자체가 싫긴 하지만. (웃음)
그러고 보면 운동이든 음악이든, 원래 가려고 했던 길에서 중도 하차했다고도 할 수 있잖아요. 거기서 주저앉기보다 또 다른 동력으로 새로운 일에 도전해 왔어요. 원래 이연이라는 사람이 가진 회복력이 아닐까 싶어요.
결국 지금 연기를 하고 있으니까, 예전에 했던 것들이 다 도움이 돼서 고마운 것 같아요. 운동을 했기 때문에 체력이 생겼고, 그 덕분에 〈길복순〉 때도 액션 연기를 할 수 있었고요. 어릴 때 했던 체력 관리나 운동 신경이 연기랑 너무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걸 느껴요. 음악도 결국 연기에 도움이 되고요. 나중에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엔터테이너로서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무기잖아요. 그래서 지나온 과정들이 다 고마워요. 그 시기에 내가 그걸 했던 것도, 그리고 애매하게 한 게 아니라 그때도 매번 최선을 다했던 것도요. 과거의 나한테 되게 고마워요. ‘포기했어도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다’는 마음이 있어요.

〈새벽의 Tango〉(2026) 홍보 스케줄도 마무리 되고, 이제 곧 또 다른 독립영화 〈경주기행〉 개봉을 앞두고 있잖아요. 모처럼 촬영을 쉬는 시기인데요.
쉬는 시간이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쉴 때 뭘 하느냐가 다음 캐릭터를 만났을 때의 퀄리티를 높여준다고 생각해요. 쉴 때는 그냥 진짜 잘 쉬려고 해요. 책도 많이 읽고, 못 봤던 작품들도 보고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미디어 영상과는 가까워져야 하는데 인터넷 세상과는 멀어져야 하는 것 같아요. 너무 많은 이야기가 들어오면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헛갈리게 되는 것 같아서 일부러 좀 떨어져 있으려고 해요. 제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제 감각을 잃고 싶지 않은 것 같아요.
배우뿐만 아니라 자연인으로서의 이연과 균형을 잡는다는 것, 그 사이에서 가진 목표도 궁금해요.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요. 나중에 꼭 보육원 관련 일을 하고 싶어요. 아마 그 일을 하려면 봉사활동도 계속 해야 하고, 배워야 할 것도 많겠죠. 땅도 사고, 건물도 지으려면 돈도 많이 벌어야 하고요. (웃음)


배우로서의 목표나 작품에 대한 욕심을 물어본 것이었는데, 정말 의외의 답을 들었네요.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건지 궁금해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도요.
제가 문제 있는 청소년 역할을 진짜 많이 했잖아요. (웃음) 그러면서 그 친구들을 공부하게 됐고, 실제로 그쪽 일을 하시는 분들 인터뷰도 여러 번 하게 됐어요. 가출 청소년 이야기를 들으면서 알게 된 게, 십대가 되어 보육원에서 갑자기 사회로 나와야 하잖아요. 그때부터 그 친구들이 보호받기 어려워져요. 그래서 그 친구들한테 뭔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만큼 사람 많이 만날 수 있는 직업도 흔치 않잖아요. 사람들을 모을 수도 있는 직업이고, 화정 기자님이 와서 교육해주실 수도 있고요. 전 결국 사람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연기도 결국 사람 이야기라서 이렇게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해요. 제가 어릴 때부터 엄마랑 둘이 살면서 너무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 컸기 때문에 그만큼의 어떤 것을 돌려주고 싶은 마음도 크고요.
중심을 잡고 속도를 내고, 리듬을 타는 이연의 달리기, 기대되고 응원해요.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사실 예전에는 남들이랑 비교도 많이 했거든요. ‘왜 나는 저 사람처럼 안 되지?’ 이런 생각도 하고, 그런데 결국 사람마다 속도가 다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진짜 ‘또 함께 하고 싶은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잘 살고 싶어요. 잘 연기하고 싶고, 잘 사랑하고 싶고, 사람들한테 좋은 영향도 주고 싶고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쉬지 않고 달리면서 계속 새로워지고 싶어요.

씨네플레이 이화정 객원기자, 사진 이상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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