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의 변방에서 호출된 디지털 미궁, 스크린의 지형도를 뒤흔들다
현대인의 내면에 잠재된 고립과 미지에 대한 원초적 공포가 마침내 스크린을 뚫고 현실의 군중을 집어삼켰다. 극장가에 낯선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백룸'이 국내 관객 수 100만 명을 돌파했다. 17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전날 1만 2천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이룩한 성과다. 이는 외화 공포 및 스릴러 장르로는 조던 필 감독의 '어스'(2019) 이후 무려 7년 만에 달성한 기념비적 기록이다. 배급사 바이포엠스튜디오 측의 평가처럼, 침체기를 겪던 장르 영화 시장에 투여된 강력한 극약 처방이라 할 수 있다.
지난달 27일 개봉한 '백룸'의 흥행 폭발력은 철저히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입소문에서 기인한다. CGV 연령별 예매 분포를 보면 20대 관객 비중이 39%로 압도적 1위를 기록했고, 10대(19%)와 30대(19%)가 그 뒤를 잇는다. 이는 단순한 흥행 지표를 넘어, 인터넷 공간을 부유하던 익명의 괴담이 동시대 청년들의 집단 무의식을 대변하는 거대한 사회적 밈(Meme)으로 격상되었음을 방증하는 지표다.
동명의 인터넷 도시 전설을 모티브로 삼은 '백룸'은 출구 없는 미지의 공간에 던져진 인간의 사투를 밀도 있게 그려낸다. 특히 유튜브라는 매체를 통해 이 기괴한 미궁의 시각적 원형을 제시하며 전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켰던 '케인 파슨스' 감독이 직접 메가폰을 잡았다는 점은 텍스트의 정통성과 신뢰도를 동시에 부여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낡은 노란색 벽지, 불규칙하게 명멸하는 형광등의 파열음은 흡사 출구 없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미로에 갇힌 우리의 실존적 불안을 완벽하게 은유하는 듯하다.
이러한 인문학적 통찰과 감각적 연출의 결합은 국경을 초월한 자본의 성취로 직결되었다. 미국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백룸'은 전 세계적으로 2억 4900만 달러(약 3700억 원)라는 천문학적 수익을 거둬들였다. 1000만 달러에 불과한 제작비의 20배를 상회하는 이 수치는, 웰메이드 작가주의의 산실인 'A24' 제작 작품 중 역대 최고 흥행작이라는 전대미문의 타이틀을 안겨주었다. 바야흐로 독창적인 디지털 아이피(IP)가 전통적인 할리우드 문법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새로운 영화적 패러다임의 최전선에 우리가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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