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의 미로 공간 속에 무언가가 있다? 공포 맛집 A24의 호러 영화 '백룸'

〈백룸〉 포스터
〈백룸〉 포스터

인터넷에서 이미 수많은 2차 창작을 낳으며 하나의 문화적 흐름을 만든 크리피 파스타(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도시 괴담) ‘백룸’이 드디어 영화로 만들어졌다. 케인 파슨스 감독은 미국 커뮤니티 4chan에 올라온 사진 한 장과 원문 텍스트에서 영감받아 2022년 자신의 웹 시리즈를 제작했다. 그 시작인 9분 분량의 영상 〈백룸(파운드 푸티지)〉는 인터넷 문화를 예술적 차원으로 확장함과 동시에 누적 조회수 7,931만 회를 기록하며 화제성까지 잡은 작품이다. 영화 〈백룸〉은 이러한 그의 웹 시리즈를 장편 영화로 만든 것이다. 영화는 대표적인 리미널 스페이스(익숙하면서도 물리적으로 텅 비어 있어 기묘하고 낯선 느낌을 주는 공간 혹은 이러한 공간의 분위기를 차용한 미학)답게 시종 익숙하면서도 낯선 위화감과 알 수 없는 공포를 자아낸다. 극장의 어둠 속에서 이 공포를 감각하길 바란다.


〈백룸〉
〈백룸〉
클락(왼)과 메리-〈백룸〉

손님의 발길이 끊긴 한적한 가구점의 사장 클락(추이텔 에지오포)은 아내와의 갈등 끝에 심리치료를 받는다. 아내가 그의 곁을 떠난 것은 그가 심리치료를 받는 데 결정적인 트리거가 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건축가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동네 외곽의 가구점 사장이 된 그는 하루하루 의욕을 잃고, 삶의 주도권을 일상의 무의미한 루틴에 빼앗긴다. 클락의 심리치료사 메리(레나테 레인스베)는 그런 그에게 반복되는 삶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조언을 건넨다. 하지만 그녀 또한 어린 시절 교외 개발 사업으로 자신의 집이 철거되는 장면을 목격한 기억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한편, 어느 날 클락은 자신의 가구점에서 알 수 없는 공간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들어간다. 메리는 메시지를 남긴 채 사라진 클락을 찾으러 그곳에 들어선다.


악몽과 무의식의 결합 ‘백룸’

〈백룸〉
〈백룸〉

영화의 주된 공간인 ‘백룸’은 형광등 불빛 아래 노란 벽면으로 둘러싸인 텅 빈 복도가 끝도 없이 늘어져 있다. 클락은 눈앞에 펼쳐진 기괴한 공간의 모습에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며 압도된다. 높이가 제멋대로인 벽면, 난데없이 등장하는 정사각형의 좁은 문은 관객의 방향 감각을 상실하게 하고, 마치 꿈속에서 헤매는 듯한 몽환적인 공포를 선사한다. 이처럼 케인 파슨스 감독은 원본 사진의 공간을 자신의 백룸에 고스란히 재현한다. 동시에 그의 백룸은 자신의 기억과 꿈, 무의식으로부터 남겨진 유산이기도 하다.

〈백룸〉
〈백룸〉

어린 시절 케인 파슨스는 버려진 유적지를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고프로 촬영 영상을 시청하며 그러한 장소들이 주는 분위기에 이끌렸다. 이후 그는 산업 시설의 뒷골목, 창고, 비상구, 텅 빈 사무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쇼핑몰과 같이 사용되지는 않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 버려진 공간에 매료된다. 10대가 된 그는 직접 버려진 유적지와 산업 공간들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그의 경험과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인상은 백룸의 황량하고 적막한 공간 디자인으로 녹아들었다. 특히 영화 속 백룸의 수영장 이미지는 그가 꾼 악몽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이미지는 과거의 흔적이 현재의 공간에 겹치면서 초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백룸〉
〈백룸〉

케인 파슨스의 백룸은 프로이트의 꿈의 영역을 펼친 듯한 전치와 응축의 공간이기도 하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무의식적 욕망을 꿈의 표면으로 드러나게 하는 과정에서 전치와 응축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응축은 여러 잠재적인 생각과 기억, 표상을 하나의 집약된 요소로 합치고, 전치는 감정의 초점과 에너지를 연결된 원래의 대상에서 무관한 대상으로 옮기는 의미화 과정을 이른다. 백룸에서 아내에게 버려지면서 생긴 클락의 유기 공포와 존재론적 고독은 버려진 공간의 이미지와 제자리에 있지 않고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사물의 이미지로 전치되어 드러난다. 전치된 이미지는 평범하고 익숙한 대상이 기이한 배치를 통해 이질감을 유발한다. 이러한 이질감은 공포의 초점을 직접적인 위협에서 주변 공간의 왜곡으로 이동시킨다. 또 클락의 가구점에 질서정연하게 배열되어 있던 가구들은 백룸 안에서 한데 뭉쳐 더미를 이룬 응축된 이미지로 재구성된다. 기억의 왜곡으로 인해 여러 얼굴이 합쳐진 기괴한 모습의 존재들 ‘스틸 라이프’ 또한 응축의 결과물이다. 전치와 응축을 통해 왜곡된 공간의 이미지는 익숙한 대상을 낯설게 느끼게 하는 리미널 스페이스의 정수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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