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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정의 딥톡스] “본 적 없는 연기로 선과 악의 경계를 허문다.” '타짜: 벨제붑의 노래'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2' 배우 노재원과의 만남 ①

디톡스 하듯 깊은 호흡으로 배우에게 다가가는 토크. 영화 저널리스트 이화정이 만난 배우들.

배우 노재원 (사진=이상엽)
배우 노재원 (사진=이상엽)

노재원을 만나야 했다. 이 배우를 만나지 않고 지금의 스크린과 OTT, 드라마를 넘나드는 창작물의 지형도를 읽는 건 반칙이지 싶었다. 당장 지난 3년만 돌아보더라도 시리즈 〈D.P. 시즌 2〉(2023)와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2023), 그리고 〈살인자o난감〉(2024)과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2024)의 인상적인 연기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더니 〈오징어 게임 시즌2〉(2024)에 합류해 존재감을 확인받고 〈오징어 게임 시즌3〉(2025)까지 영향력을 이어나갔다. 최근 들어 노재원의 행보는 한층 더 눈에 띈다. 현재 디즈니+의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2〉와 추석 극장가의 화제작인, 〈타짜〉 시리즈의 4번 째 이야기 〈타짜: 벨제붑의 노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영화에서 그는 변요한과 함께 투톱의 위치다. 이른바 상업영화로는 첫 주연작이다.

노재원은 누구길래, 어느 날 갑자기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자신의 입지를 확보했을까. 관객들에게, 시청자들에게 화제작의 한가운데 그의 이름을 보는 게 더이상 그리 낯설지 않은 일이 되었을까. 〈오징어 게임〉 시리즈에서 눈을 희번덕 거리며 죽음의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 혈안이 된 남규의 얼굴을 잊지 못하는 이들이,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 망상장애를 가진 정신병동에서 해맑게 뛰어다니던 김서완의 얼굴도 잊지 못한다면 이 게임의 승자는 분명 노재원이다. 선과 악, 그 사이에서 노재원의 연기는 관객이 섣불리 어느 한쪽으로 캐릭터를 규정하는 걸, 대놓고 방해한다. 이 장면의 선함이 다음 장면의 악함을 전혀 담보하지 않는 예상 밖의 흐름. 노재원은 스토리를 궁금하게 만들고 긴장감을 불어넣는 장르의 교란자다. 기존 액션누아르 장르에서 정답처럼 통용되던 ‘선이 굵은’ 빌런 캐릭터와의 결별 같은 새로운 형태다. 한국 콘텐츠 빌런의 역사는 노재원의 등장으로 분명 새롭게 갱신됐다. 노재원이 제시하는 대혼돈의 카오스라면 이제 기꺼이 발을 들여놓고 싶을 만큼 그는 자신의 영역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지금의 창작진이 앞다투어 그를 필요로 하는 이유이자, 한번 보면 우리가 그의 연기를 다시 기다리게 되는 이유다.

〈타짜: 벨제붑의 노래〉
〈타짜: 벨제붑의 노래〉

노재원은 지금, 가진 패와 상관없이 판을 흔들 수 있는 연기로 또 한 번의 승부수를 던진다. 1970년대 혼란의 시대를 다룬 〈메이드 인 코리아〉에서 중앙정보부 표학수가 백기태(현빈)를 견제하며 자신의 꼼수를 부리는 건 분명 이 시리즈에 긴장감을 더하는 증폭제로 작용한다. 빈틈 없이 짜인 시대극의 장르 안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요리조리 판을 살피는 캐릭터. 노재원의 눈빛을 따라가는 건 이 작품을 읽는 여간 흥미로운 감상법이 아닐 수가 없다. 〈타짜: 벨제붑의 노래〉에서 그가 연기하는 박태영은 절친이자 사업 파트너이자 이름마저 같은 친구 장태영의 뒤에서 음모를 꾸민다. ‘장태’의 모든 걸 탐하고 제거해야 자신이 살 수 있다고 믿는다. 박태영의 히스토리를 마스터한 데서 나오는 연기. ‘박태’가 한때 가졌던 순수한 미소와 나약한 마음 한편, 이빨을 드러 낸 ‘악마같은’ 얼굴은 도무지 병렬로 배치되지 않을 만큼 소름 끼친다. 노재원은 이번에도 결국 한 인물이 내뿜는 결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 지 설득해 낸다.

2011년 단편 〈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방법〉으로 데뷔한 그는 〈윤시내가 사라졌다〉(2022), 〈세기말의 사랑〉(2024) 등 독립영화에서의 꾸준한 활약을 더해 올해 15년 차 배우다. 소급 적용 해 거슬러 올라가 봐도 노재원의 연기는 이미 고유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금세 바스러질 것 같은 연약함도 극악무도하게 내뿜는 악다구니도 노재원의 것. 해맑은 웃음에서 1초 만에 변해 버리는 쓸쓸한 표정도 역시 노재원의 것이다. 당장이라도 태세 전환을 할 것 같은 아슬아슬한 표정은 매번 노재원의 손짓, 동작이 되어 화면을 장악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1〉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1〉

메릴 스트립은 “연기는 단지 주어진 과제를 끌어내는 것만으로는 가닿을 수 없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배우가 재능을 갖추고 있어야만, 타인을 표현하는 본능적인 이해가 있어야만’ 도착할 수 있는 곳이 그곳이라면 노재원은 독특한 재능과 단단한 노력, 자기만의 해석을 통해 등장부터 빠르게 그 길을 익혀 온 감이 탁월한 배우다. 노재원이 가이드가 되어 줄 한국영화와 시리즈의 흥미로움을 지지하며, 노재원에게 만남을 청했다. 마침 그 역시 한숨 돌리며 자신의 시간을 점검 중이던 때. 이 만남이 필요한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배우 노재원 (사진=이상엽)
배우 노재원 (사진=이상엽)

요즘 더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하시는 중이신데요.

몇 개월 정도 쉬었어요. 〈타짜: 벨제붑의 노래〉 개봉 때가 되어 이제 바빠 보이는데, 다행히 그 전에 쉬었죠. 저한테 그런 시간이 좀 필요했었어요. 작년은 정말 너무 바빴어요. 쉼 없이 하다 보니까 저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 하더라구요. 이러면 안 되겠다 좀 천천히 하자고 한 거죠. 제게 온 기회 모두가 너무 감사한 일들이었지만 더 행복하게 연기를 하고 싶었어요. 한 작품 한 작품 집중하려면 분명히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요. 짧지만 제 삶을 좀 잘 살다가 이제 다시 돌아 온 거죠. 정말 앞만 보고 살았더라고요.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궁금한데요.

저를 좀 분석하고 알아가는 시간이었어요. 요즘 제일 많이 하는 생각인데, 내가 놓쳤던 게 무엇인가, 내가 어떻게 연기를 해왔지? 어떤 태도로 연기를 해왔지? 그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작품을 할 때 기다림의 시간이 있거든요. 조마조마 할때도 많죠. 역할이 결정되고 일을 하는 시간에는 꿈만 같다 싶었어요. 촬영 때는 작품 들어가기 전의 일은 모두 잊고 오직 연기만, 앞만 보고 살아요. 그렇게 시간이 지난 거죠. 진짜 감사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구나, 새삼 느꼈어요.

〈타짜: 벨제붑의 노래〉
〈타짜: 벨제붑의 노래〉

역시 쉴 때도 연기 생각인데요. (웃음) 그 외의 평범한 순간을 좀 들여다 본다면요?

하하. 연기 생각을 안 하려고 해요. 일종의 ‘연기 디톡스’라고 할까요. 제 삶을 잘 살아보려고 노력했어요. 집에서 밥 해 먹거나 그런 시간도 좀 가졌고요. 제가 원래 혼자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요. 시간 날 때는 쏘카 같은 거 빌려서 어디 놀러도 가고요. 카페 가서 혼자 있기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그래요. 아니면 혼자 영화나 연극 보는 걸 좋아해요.

하긴, 촬영하는 동안 못 본 화제작도 궁금하실 것 같아요.

맞아요. 그래서 좋아하는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봐요. 얼마 전에 다큐멘터리 〈어떻게 해야 했을까?〉를 봤어요. 늦은 시간인데도 관객들이 절반 이상 차 있어서, 좋은 영화는 알아서 다들 찾아 보시는구나. 저도 그 중 한 관객이었는데, 이런 분위기가 좋아요.

배우 노재원 (사진=이상엽)
배우 노재원 (사진=이상엽)

문득 평소 좋아하는 극장이 궁금해지는데요.

라이카시네마도 자주 가요. 좌석이 좀 넓어서 편해서 자주 가는 편이에요.

영어와 일어를 열심히 공부한다는 인터뷰를 봤어요. 역시 글로벌 제작 환경에서 배우로서의 준비라고 생각했는데, 이유가 ‘혼자 여행하고 싶어서’ 라고 하더라고요.

맞아요. 그랬었어요. 그래서 결국 최근에 일본 여행을 혼자 가서 일본어도 좀 했어요. (웃음) 〈타짜: 벨제붑의 노래〉에 일본어 대사가 많아서 한참 일본어에 관심이 생겼고 촬영 전부터 일주일에 3~4번씩 선생님께 수업을 들었는데, 공부해보니 저랑 잘 맞더라고요. 영어 공부도 좀 더 해야 할 것 같아요.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2〉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2〉

이번 추석 시즌에 OTT와 극장가 모두에 노재원의 작품이 공개되는데요. 노재원 파워를 스스로도 체감할 것 같아요. 스스로 강점을 파악하실 것 같은데요.

솔직히 전 정말 잘 모르겠어요. 캐릭터들의 조금 다른 면을 기대하신 분들에게 제 연기가 조금이라도 인상을 드린 걸까. 사실 제가 그렇게 다르게 보이려 연기를 한다기 보다는 조금 다른 캐릭터를 많이 해서 그런게 아닐까 싶어요.

캐스팅 때 전달받은 품평 중 기억나는 게 있으시다면요.

그 이야기를 해주시지는 않더라고요. 저도 안 물어봤어요. 물어보면 부끄러우니까요. (웃음) 그런데 기억 나는 말이 하나 있어요. 감독님 중 한 분께서 지인으로부터 저를 추천받았는데 〈오징어 게임 시즌2〉에 나온 걸 알고서는, 아무래도 안 맞겠다고 생각하셨대요, 아무래도 연기가 강렬해서 그러셨대요. 그렇게 캐스팅은 안 되겠다 생각하던 중에 드라마 〈정신병동에 아침이 와요〉를 보셨는데, 보면서 〈오징어 게임〉의 그 사람이랑 같은 사람인 줄 모르셨다는 거예요. 그걸 깨닫고 캐스팅 하자 하신 거죠. 그 이야기를 듣는데 어떤 칭찬보다도 더 좋더라고요.

배우 노재원 (사진=이상엽)
배우 노재원 (사진=이상엽)

최근엔 작품 선택을 하는 기회도 많이 생기셨을 텐데요. 어떤 기준이 적용될 지도 궁금해요.

예전에는 패기와 기세로 도전을 할 법한 캐릭터들을 했었던 것 같아요. 저랑 결이 맞지 않더라도 내가 이 연기를 위해서 스스로를 쥐어짜면서까지 연기하고 싶다는 캐릭터들을 만났어요. 이제는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캐릭터들을 해보고 싶어요. 더 솔직하게 말하면 자극적인 것과는 조금 다른 연기에 끌려요.

그런 기준을 갖게 된 변화의 계기가 있었나요.

제 삶이 조금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예전에는 오로지 연기만 생각했다면 지금은 뭔가 제 삶을 좀 살면서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게 됐거든요. 사랑이라는 게 연애 이런 개념만이 아니라, 내 생활을,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의 여유 같은 거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러면서 사랑 가득한 역할을 해보고 싶다 생각도 하게 됐고요. 이제 조금은 새로운 연기를 하고 싶다. 조금 변한 내 모습을 통해 또 내가 어떤 새로운 연기를 할지도 기대가 되더라고요.

멜로 장르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말을 여러 인터뷰에서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웃음) 그 연장선인가요.

언젠가 저만의 멜로를 꼭 해보고 싶어요. 그런 이야기가 저한테 온다면 참 운이 좋은 거고요. 사실 멜로 아니라 해보고 싶은 역할이 너무 많아요. 스포츠 장르도 그 중 하나고요, 또 지금까지와 달리 터프한 역할도 해보고 싶어요. 제가 마침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는데요. (웃음) 10월에 공연을 올려요. 1인극이요. 또 준비 중인 작품도 있고요.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해보려고 해요. 어떤 걸 하겠다 정해두지 않고요.

▶ 배우 노재원과의 만남은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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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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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진행형으로 작품을 통해 계속 노재원의 가능성을 업그레이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 노재원의 과거를 역추적해보면 어떤 시간이었을까 궁금해요.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라 나서는 스타일은 아니었겠다는 짐작도 가는데요. 정말 그래요. 나서는 걸 잘 못 하고 숫기가 없는 건 사실이에요. 학창 시절도 그랬는데 마음 속에는 나서고 싶을 때도 있고 주목받고 싶을 때도 있을 때가 있었어요. 중학교 때였는데. 그때 제가 드라마 NG 장면을 보고, 저거다! 호기심이 생겼어요. 너무 가벼운 생각이라 부끄러운데 저는 그게 너무 재밌어 보였어요. 실수한 장면들을 모은 거라 다들 재밌게 웃고 장난치는 모습을 보면서 연기는 저렇게 재밌는 직업인가 보다, 나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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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입장에서 보면 노재원이라는 배우가 보여주는 새로움의 흐름은 이미 시작됐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메이드 인 코리아〉의 캐스팅 라인업을 보면서, 이전까지 자유로운 스타일의 연기를 보여준 노재원이라는 배우가 요건이 까다로운 형식 안에서의 연기, 즉 장르성이 강한 작품 안에 잘 조화될 수 있을까 질문을 가졌던 것 같아요. 그 의구심을 연기로 입증하고 시즌 2에 진입하고 있고요. 그렇게까지 생각 못했어요. 각 잡힌 장르물, 정공법을 요구하는 형식의 드라마라는 생각을 크게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메이드 인 코리아〉는 내가 어떻게 이 역할을 맡았을까 고민하는 게 시작이었어요. 우민호 감독님은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보시고 어떻게 나를 표과장으로 캐스팅하려고 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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