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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보석함] ‘디바인 아이’ 클라렌스 맥클린을 비롯해, 모두가 그 자신을 연기한 '씽씽'의 배우들

나는 사람이 궁금하다. 이미 주목받는 배우일지라도, 지금이 그들의 가장 덜 유명한 날일지도 모른다. ‘김지연의 보석함’은 나날이 고점 갱신 중인 배우들을 소개한다. ‘떡상 종목’을 ‘저점매수’ 하시라.

〈씽씽〉
〈씽씽〉

이들을 비전문 배우라고 칭하는 것 자체가 실례일 것이다. 매체 연기에서는 신인일지언정, 그들은 이미 교도소 안에서 몇 년씩 연극 무대에 올랐던 배우들이기 때문이다. 영화 〈씽씽〉의 배우들 말이다.

영화 〈씽씽〉은 부당한 판결로 뉴욕의 ‘씽씽 교도소’에 수감된 ‘디바인 G’(콜맨 도밍고)가 연극 무대에 오르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영화다. 이 영화가 다루는 예술을 통한 사회 복귀 훈련 ‘RTA’(Rehabilitation Through the Arts)는 1996년 ‘씽씽 교도소’에서 출발한 연극 워크숍으로, 재수감률을 크게 낮추는 데 기여해 현재는 여러 교도소로 확대된 상태다.

〈씽씽〉
〈씽씽〉

〈씽씽〉은 RTA 프로그램의 효과를 설파하는 대신, 재소자들이 연극을 올리는 과정과 그들의 삶을 담담히 비춘다. 마냥 마초 같은 태도만이 팽배했던 교도소에서 그들은 연극 워크숍을 통해 오손도손 둘러앉아 서로에게 진솔해지고, 자신의 약한 면을 거리낌없이 드러내고, 각자의 소중한 기억을 하나둘씩 꺼내보기도 한다. 그렇게 그들은 거친 별명 뒤에 가려져 있던 자신의 진짜 이름, 어린 시절 불리던 이름을 다시 떠올리며 재소자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되찾아간다.

RTA 참여자들이 연극 워크숍을 통해 무대에 올린 작품은 그야말로 ‘짬뽕’ 연극이다. 희극이지만 ‘햄릿’이 등장하고, 서부극의 카우보이와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공존하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오리지널 연극. “꼭 진지한 연극만 해야 돼요? 여기서 허구한 날 트라우마에, 사건에, 비극까지 겪잖아. 수감자들은 희극을 더 좋아할걸”이라는 ‘디바인 아이’(클라렌스 맥클린)의 제안으로 시작된, 씽씽 교도소만의 독창적인 작품이다. “메시지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그저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모두 넣은 이 연극은, 여태껏 감정에 솔직해지지 못했던 이들에게 가장 귀중한 자기표현의 창구가 되었다.

〈씽씽〉
〈씽씽〉

영화 속 재소자들이 무대에 올리는 연극 ‘브레이킨 더 머미스 코드’는 2005년 씽씽 교도소의 RTA 참여자들이 실제로 올렸던 무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의 85%가 실제로 수감 경험이 있는 RTA 출신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씽씽〉은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까지 봐야 비로소 완성되는 작품인데, 엔딩크레딧에서 배역을 맡은 이들의 이름 옆에 ‘as himself’라는 문구가 따라붙기 때문이다. 스크린에서 울고 웃던 이들 모두가 결국 자기 자신을 연기했던 셈이다. 이 대목에서 관객은 지금까지 본 장면이 연기이면서 동시에 이들의 삶이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확인하게 된다.

〈씽씽〉
〈씽씽〉

영화는 ‘디바인 G’와 ‘디바인 아이’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친우가 되는 과정을 중심에 놓는다. 디바인 아이는 도서관 카트에서 떨어진 「리어 왕」을 우연히 읽고는 RTA 프로그램에 지원한다. “독방에 있을 때, 어떤 책을 한 권 봤는데. 책 속의 어떤 형씨가 하는 말이 마음에 진짜 와닿았어. 뭐랬더라. ‘우린 태어날 때 운다, 바보들의 무대 위에서 태어났으므로.’ 그때 생각했지. 이걸 쓴 형씨는, 분명 감방 생활해봤을 거다”라며 말이다.

우연히 도서관 카트에서 떨어진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고 연극의 세계에 빠진 갱스터의 이야기. 그건 〈씽씽〉 속 디바인 아이의 이야기이자, 영화 속에서 그 자신을 연기한 배우 클라렌스 맥클린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교도소에서 15년간 수감 생활을 한 배우 클라렌스 맥클린 역시 마치 디바인 아이처럼 우연히 연극을 시작하게 됐다. 그는 교도소 마당으로 향하던 중 길을 잃고 우연히 RTA 프로그램을 발견하며 연기를 시작했다고. 스스로를 ‘운동장의 도적’이라 부를 만큼 거칠었던 그는 “감옥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기에 감정을 숨겨야 했지만, 무대 위에서는 감정을 가져도 됐다”며 연극에 매료됐다. 그렇게 우연한 순간들이 맥클린을 예술로 이끌었다. 맥클린 외에도 숀 ‘디노’ 존슨, 존-에이드리언 ‘JJ’ 벨라스케스 등 RTA 출신 배우들이 각자 자신을 모델로 한 인물로 출연해 무대 위 이야기에 실제 삶의 무게를 더했다.

〈씽씽〉
〈씽씽〉

영화 후반부에 영화 속 연극과 실제 씽씽 교도소의 과거 연극 장면이 겹쳐지는 대목은 그래서 인상적이다. 영화 속 이야기에 허구가 섞였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이 영화가 ‘진짜’인 것만은 분명하다. 사실이라고 다 진짜인 것은 아니고, 약간의 허구가 섞였다고 해서 진짜가 아닌 것도 아니다.

〈씽씽〉에서 디바인 G가 사면 심사를 받는 장면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이 장면은 이 영화와 연기의 허구성에 대한 질문을 정면으로 던진다. 디바인 G는 심사위원들 앞에서 RTA를 이렇게 설명한다. “재소자들의 관리 능력을 향상시키려고 만들어졌으나 그보다는 조금 더 근사하게 변했죠. 사람들이 감정을 다스리고 발전하도록 이끌어서 진정한 교화에 이르게 해주니까요.” 그러나 심사위원들은 디바인 G에게 무대 위에서 다른 사람이 되는 법을 익혔다면, 지금 보이는 반성도 꾸며낸 것일 수 있지 않냐고 반문한다.

〈씽씽〉
〈씽씽〉

그렇다면 정말 이들의 일, 연기, 더 나아가 〈씽씽〉이라는 영화 역시 ‘가짜를 꾸며내는 일’에 불과한 걸까. 심사위원들은 디바인 G가 무대에서 그랬듯 사면 심사장에서도 연기하고 있다고 의심하지만, 재소자들이 가짜 삶을 연기해야 했던 곳은 오히려 무대 밖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연극이라는 명백한 허구의 무대에 오르고 나서야 이들은 어쩌면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진짜 감정’을 꺼내놓을 자유를 얻었던 셈이다.

연기는 지어낸 것일 수는 있어도 속이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연기한 인물은 한 번도 가짜였던 적이 없다. 배우, 영화 속 인물, 영화 속 연극의 캐릭터. 그렇게 세 겹으로 포개진 얼굴은 거짓이라기보다 그 사람 자신이다. 맥클린이 우연히 연극을 만나 삶이 바뀐 경험은 실제이고, 영화 속 배우들의 연기에 담긴 감정과 경험도 진짜다.

영화의 설득력은 바로 거기에서 나온다. 그리고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딱 ‘브레이킨 더 머미스 코드’와 같기도 하다. 애초에 일관된 장르도, 거창한 교훈도 없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한 편의 엉뚱한 짬뽕 희비극인 셈이다. “그 많은 캐릭터들을 한 작품에서 연기하는 거, 내 인생이 딱 그렇거든”이라는 한 재소자의 고백처럼, 〈씽씽〉의 재소자들은 조악한 의상을 걸치고 무대 위를 뛰어놀며 비로소 숨통을 튼다. 그래서 〈씽씽〉은 예술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묻는 영화로도 읽을 수 있지만, 동시에 삶이라는 서툰 희비극을 통과하며 살아내는 우리 모두에게 공명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삶이란 결국 그렇게 서툰 희비극 같은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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