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끝자락, 바다의… 아니, ‘여름의 왕자’가 왔다. 지난해 여름 470만 관객을 동원한 〈파일럿〉의 조정석이 든든한 동료들과 믿을 만한 원작으로 돌아왔다. 영화 〈좀비딸〉은 좀비가 돼버린 딸 수아(최유리)를 지키려는 정환(조정석)과 그의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네이버 웹툰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을 영상화했는데, 이윤창 작가 특유의 코미디와 감성적인 스토리텔링을 필감성 감독이 카메라 앞으로 옮겼다. 7월 마지막 주를 겨냥한 만큼 문화가 있는 날과 맞물려 조정석의 ‘여름 흥행’ 기록을 이어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개봉 전 30만 예매를 기록한 〈좀비딸〉, 볼까 말까 고민 중이라면 사전 시사로 미리 만난 씨네플레이의 기자들의 단평이 도움이 될 것이다.
추아영_기존의 한국 신파와 다른 길을 개척하다

〈좀비딸〉은 명확한 선악 구도, 관객의 감정선을 증폭시키는 상징적인 음악의 사용, 감정의 과잉 등 멜로드라마 장르의 특성을 띤다. 그리고 영화는 멜로드라마에서 탄생한 신파를 사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다만 〈좀비딸〉의 신파는 가족을 새롭게 정의하면서 기존의 한국 신파와 다른 길을 걷는다.
맹수 전문 사육사인 정환(조정석)은 좀비로 변해버렸지만 이전의 기억이 남아 있는 딸 수아(최유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그녀를 길들이려 한다. 국가와 군대는 한때는 누군가의 가족이나 친구였지만 지금은 좀비가 되어버린 그들을 죽이려 한다. 국가의 억압이 거세질수록 정환이 딸 수아를 지키려는 모습에서 오는 통속적인 감정은 배가된다. 이때,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훈련을 거듭하는 수아의 모습은 영락없이 맹수로 보이며, 정환은 인간의 이성을 잃은 수아를 배척하지 않고 여전히 가족으로 대한다. 동물과 같이 변해버린 수아와 그녀를 이전과 똑같이 대하는 정환의 모습은 동물권을 옹호하는 작품의 태도를 드러낸다. 또 좀비를 죽여 없애려는 국가의 판단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시위 장면으로 소수자 인권을 주장하는 시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극 속에서 국가와 군대, 시위를 막아서는 경찰은 혐오와 폭력의 주체로 존재하며, 혐오와 폭력으로부터 소수자성을 대변하는 수아를 지키려 하는 정환의 모습은 더욱 애처롭게 다가온다. 게다가 극 중후반부에서는 정환과 수아가 일반적인 부녀 관계가 아닌 것이 밝혀진다. 이처럼 〈좀비딸〉은 직계가족이 아닌 동물권을 비롯한 여러 소수자 인권까지 아우르면서 가족을 새로이 정의한다. 이러한 〈좀비딸〉의 신파는 가족애에서 발현되지만, 〈국제시장〉, 〈해운대〉와 같은 한국 신파의 국가주의적이고 가부장주의적인 신파와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동시에 코미디 영화인 〈좀비딸〉은 소수자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적재적소에서 웃음을 유발해야 하는 장르적 의무를 저버리지도 않는다. 소수자성과 재미 둘 다 놓치지 않는 〈좀비딸〉은 한국 영화가 나아갈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주성철_지난해에 〈핸섬가이즈〉가 있었다면 올해는 〈좀비딸〉이다!

2000년대 들어 좀비물의 상상력은 무궁무진해졌다.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처럼 이른바 원전 비슷한 것도 없기에 뱀파이어물보다 더 자유로웠던 것. 〈28일 후〉(2002)에서 좀비가 뛰기 시작하더니 〈월드워 Z〉(2013)의 좀비들은 병든 인간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비슷한 시기 〈웜 바디스〉(2013)에서는 급기야 좀비가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좀비는 K콘텐츠의 중심으로 들어와 시각에 민감한 〈부산행〉(2016)의 좀비, 온도에 민감한 〈킹덤〉(2019) 시리즈의 좀비를 경유해 ‘K좀비’라는 표현까지 만들어졌다. 마침내 〈좀비딸〉에 이르러서는 좀비가 얼굴 핏줄을 가리는 메이크업을 받고 학교까지 가고, 할머니의 효자손만 보면 무서워 눈을 내리까는 K좀비까지 탄생했다. 마치 필감성 감독의 전작이자 데뷔작이었던 〈인질〉(2021)처럼 좀비를 가둬놓고 ‘지성이면 감천, 좀비병도 반드시 낫게 되리라!’며 트레이닝까지 시도하는, 한국적 교육열도 더해진다. 조정석, 이정은, 윤경호, 조여정 등 이 모든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기어이 말이 되게끔 만드는 배우들의 앙상블이 놀랍다. 컴퓨터그래픽을 통해 원작 못지않은 전투력을 탑재시킬 수도 있었던 고양이 ‘애용’도 놀라운 ‘낄끼빠빠’로 이들 사이에 훌륭하게 녹아든다.
성찬얼_원작에 누가 되지 않는, 착하디 착한 좀비물
![영화 〈좀비딸〉 속 한 장면 [뉴(NEW)·스튜디오N 제공]](https://cdn.www.cineplay.co.kr/w900/q75/article-images/2025-07-30/53c33574-443c-42a3-8063-6af95376cb72.jpg)
관객들이 아무리 좀비물을 사랑해도, ‘좀비딸’은 실사화 결정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좀비가 된 딸을 몰래 숨겨서 데리고 있는다는 설정은 재밌지만, 현실적으로 그려지기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비딸〉은 그것을 납득하게 한다. 순둥이 같지만 강단 있는 정환과 설령 좀비가 돼도 쉽게 보낼 수 없는 사랑스러운 딸 수아를 연기한 조정석, 최유리의 공이 크다. 물론 함께 주연을 맡은 이정은, 윤경호, 조여정 또한 캐릭터의 성격을 찰떡처럼 소화하며 동력을 더한다. 원작을 본 입장에서 ‘효자손’ 개그를 실사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반면 영화는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는데, 원작부터 에피소드식 전개인 것을 엮다보니 이야기가 매끄럽게 이어지는 느낌이 적다. 거기에 만화라서 넘어갔던 것들이 실재로 그려지다보니 영화 속 세계가 지나칠 정도로 착하게만 그려진다. 그래서 관객을 긴장시켜야 할 요소들이 그렇게 긴장감을 유발하지 못해 다소 처진다. 좀비가 소재인데 착하고 느긋한 세계라니. 이 지점에서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릴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원작 팬들에게 결코 누가 되지 않게 작품을 완성한 것에서 일단 호를 표하고 싶다(원작자 이윤창 작가도 카메오로 나온다). 다만 가장 강렬하게 불만을 표하고 싶은 건 두 곡의 삽입곡이다. 대중적이고 메시지에 적합한 곡인 건 맞지만, 시대적 배경을 더 모호하게 했어야 효과적이었을 이 영화에서 유독 특정 시대를 연상시켜 기묘한 이질감을 빚어내는 것이 못내 아쉽다.
김지연 _ 신선한 소재에 익숙한 공식을 입히면
![영화 〈좀비딸〉 속 한 장면 [뉴(NEW)·스튜디오N 제공]](https://cdn.www.cineplay.co.kr/w900/q75/article-images/2025-07-30/3c7b922c-e027-4645-9b80-c822e465736e.jpg)
매끈하고, 직관적이다. ‘호불호’ 갈리는 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흥행할 법하다. 반대로 얘기하면, 전형성 덕에 고유의 개성은 다소 희석된 모양새다. 따라서 모두에게 무난하지만, 다 본 후 기억에 선명하게 자리하지는 않을 영화가 될 법하다. ‘좀비를 길들인다’라는 신선한 소재는 예측 가능한 공식을 입어 중화됐다. 영화는 블랙코미디적 색채가 강했던 원작 웹툰의 유머를 보다 직접적으로 풀어내 직관적인 코미디를 표방한다. 그게 단점이자 장점이며, 특정 타겟을 겨냥한 것이 아닌 ‘온 가족’ 여름 피서용 영화로서는 영리한 선택이기도 하다. 더욱이, 매끈하지만 세련되지는 못해 분명 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임에도 2000년대의 노스탤지어를 그리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에, 중장년층이 공감할 법하다. 다만 마치 〈핸섬가이즈〉처럼 호러와 코미디, 두 장르의 경계를 과감히 뛰어넘는 파격을 기대한다면 싱거울 수도 있다. 그러나 ‘안전한 즐거움’을 원하는 관객에게는 무난한 선택지다. 영화 속 ‘좀비가 된 딸’이 과연 무엇에 대한 알레고리일지 생각해 보게 되는, 소소한 교훈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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