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캐릭터를 맛깔스럽게 살려낸 '좀비딸' 이정은 “'좀비딸'은 생명체와 공생하는 방법을 찾는 이야기… 20년 동안 유기견을 키운 경험을 녹여냈다”

“밤순의 근거 있는 힙함을 표현하려 했다”

〈좀비딸〉 포스터
〈좀비딸〉 포스터

그의 대표적인 얼굴들만 나열해도 끝이 없다. 천부적인 재능 같지만, 이정은은 인터뷰 내내 ‘노력을 많이 한다’라는 말을 숨기지 않았다. 근거를 찾고, 믿음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얻은 확신으로 치밀하게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는 배우 이정은은 〈좀비딸〉에서도 삶의 통찰을 녹여내 밤순을 완성했다.

〈좀비딸〉은 이 세상 마지막 남은 좀비가 된 딸을 지키기 위해 극비 훈련에 돌입한 딸바보 아빠의 코믹 드라마로, 이정은은 정환(조정석)의 어머니이자 좀비로 변해버린 수아(최유리)의 할머니인 ‘밤순’ 역을 맡았다. 〈좀비딸〉의 이정은이 완성한 밤순은 단지 원작 웹툰과의 ‘역대급 싱크로율’이라는 찬사로만 갈음하기에는 너무나도 덧붙여야 할 말이 많다.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배우 이정은과 씨네플레이가 만나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배우 이정은. (사진제공=NEW)
배우 이정은. (사진제공=NEW)

원작 웹툰의 밤순과 영화 〈좀비딸〉 속 이정은 배우의 싱크로율이 굉장히 화제가 되고 있어요. 직접 〈좀비딸〉 영화를 보고 느낀 본인의 모습에 대한 소감이 있다면요.

솔직히 말하면, (밤순 역에) 조금 더 작은 할머니가 나왔으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몸집을 줄여봤자 한계가 있더라고요. 정말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작은 체구의 할머니를 생각했는데. 그런데 저희 비주얼 팀이 분장, 메이크업을 정말 잘 해주셨어요.

〈좀비딸〉의 밤순 할머니는 은근히 귀여운 구석이 많잖아요. 혹시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웃음)

저도 좀 괜찮았던 것 같아요. 근데 제가 머리를 까면 얼굴이 이렇게 둥그렇잖아요. 그렇게 얼굴이 환한 달덩이같이 나왔던 작품이 〈기생충〉 〈미스터 선샤인〉이었어요. 〈우리들의 블루스〉 찍을 때는 귀엽다는 얘기 들어본 적 없고,“저 여자 왜 이렇게 화내는 거 잘하냐, 3단으로 화낸다” 이랬는데, 밤순 같은 머리를 할 때 좀 귀엽다는 말을 듣는 거 보니까 제가 나이가 들어서 머리를 이렇게 하고 다녀야 되겠다, 그러면 얼굴이 이렇게 달덩이처럼 귀엽게 보일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말씀처럼, 밤순은 정말 시골에서 볼 수 있을 법한 할머니였어요. 그런데 밤순은 ‘힙함’이 있는, 은봉리의 핵인싸라는 설정인데요. 처음 캐릭터를 잡을 때, 어떻게 준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뮤지컬 ‘빨래’라는 작품을 할 때, 연령을 초월해서 배역을 맡은 걸 감독님이 재미있게 보셨던 것 같아요.(이정은은 ‘빨래’에서 주인 할매와 의정 엄마 역을 모두 맡은 바 있다) 그래서 필감성 감독님의 〈운수 오진 날〉 촬영 후반부에 〈좀비딸〉을 제안을 주셨어요. 그리고, 칠곡 래퍼 할머니들의 다큐멘터리와 레퍼런스를 주셨어요. 그래서 ‘근거 있는 힙함’을 봤죠. 어머님들이 랩도 만드시고, 춤도 추시는구나. 어머님들에게 이런 사연이 있는데도 이렇게 즐겁게 사시네, 그런 것들이 저에게는 인물을 만드는 배경이었어요.

〈좀비딸〉 스틸컷
〈좀비딸〉 스틸컷

본인의 나이대와 다르게, 조정석 배우가 연기한 정환의 어머니 밤순 역할을 맡으셨어요. 유독 본인보다 훨씬 나이대가 높은 배역들을 많이 맡으시는 것 같은데요. 부담은 없으셨나요.

제 나이가 50대 중반이 넘어가고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나문희 선생님도, 김수미 선생님도 제 나이 때 이런 역할을 많이 하셨어요. 지금 이렇게 (이런 역할이) 오는 건 이유가 있을 거야(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밤순 역과는 제 연배가 다르지만, 밤순은 힙함을 표현할 수 있는 할머니이기 때문에, 정말 할머니들은 못 하실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작품이 좋으면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좀비딸〉은 코미디 영화지만, 좀비들도 꽤나 사실적으로 등장합니다. 〈좀비딸〉이 다른 좀비물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좀비를 훈련시킬 수 있다는 것. 좀비를 훈련시키는 영화는 없는 것 같아요. 좀비가 기억의 일부분을 갖고 있다는 걸 발견하는 아버지의 부성도 놀랍고. 원작에서는 아빠의 직업이 번역가였지만, 사육사가 되면서 동물도 사람처럼 감정을 느끼고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아는 인물을 등장시켜서, 좀비로 변해버린 딸의 가능성을 보는 것이 좀비물에서는 없었던 가장 특이한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좀비물은 사실 미국에서 많이 나왔었고, 항상 좀비는 사람을 해치는 존재였잖아요. 그런데 〈좀비딸〉은 우리가 왜 이것을 공포스럽게 생각했는지, 정말 악한 부분만 있는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매력이 있어요.

필감성 감독님과의 작업은 〈운수 오진 날〉 이후 두 번째인데요. 필감성 감독님이 코미디라는 되게 의외의 선택을 하셨잖아요. 그래서 처음에 제안받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궁금해요.

필감성 감독님이 ‘피감성’이거든요. (웃음) 장르물을 엄청나게 잘 찍으세요. 〈인질〉도 정말 긴박하고. 그래서 〈좀비딸〉은 코미디이긴 하지만, 좀비를 어떻게 다루실지, 또 긴박함과 쫀쫀함이 기대됐어요. 또 공포 속에 코미디를 넣으셨기 때문에, 여전히 장르적인 특성은 잃지 않고 계시는 것 같고. 그리고, 감독님이 평상시에 말을 재미있게 하세요. 원래 코미디 감이 있으신 것 같아요. 그래서 〈좀비딸〉 현장에서도 자연스러운 것들만 편집해서 살려내신 것 같아요.

그럼 최종적으로는 편집된 것들 중에, 〈좀비딸〉 촬영 현장에서 나온 더 재밌는 상황이 많았나요.

배우들의 욕구는 계속 막 튀어나오죠. (웃음) 그런데, (하다 보니까) 작품과 상관없이 가는 거죠. 그런 조절을 감독님이 잘해 주셨어요. 처음 밤순이 등장하는 영상통화 장면은 감독님이 핸드폰을 들고 찍은 거예요. 그런데 손동작은 애드리브이었는데, 꼭 살려달라고 했죠. 사실, 경호 씨의 정배를 놀리는 게 제일 재밌었고요. “토르라고? 도른 거 아냐?”는 영화에 나올 줄 몰랐어요. 멀리서 찍어서, 저희끼리 재밌자고 한 건데 쓰셔서 깜짝 놀랐어요.

조정석 배우는 인터뷰에서 “정은 누나는 천재다. 감독님이 컷을 안 하면, 계속 애드리브를 할 거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현장에서 정말 끊임없이 애드리브를 하셨나 봐요.

정말 공포스러울 때는 감독님의 ‘컷’이 안 날 때예요. 도대체 어디까지 갈 것인가. 그런데 내가 포기를 하면 왠지 진 것 같잖아요. 그래서 감독님의 컷이 나올 때까지 그냥 버티는 거예요. 제가 풍부한 애드리브를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정석 씨와 컷 나올 때까지는 계속 머물고 있어야죠. 정석 씨가 그런 것을 좋게 봐주신 것 같고, 천재는 본인이 천재죠. 정석 씨는 진지함을 뚫고 나오는 코미디를 너무 잘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딸이랑 함께 좀비 흉내를 내는 것도, 왠지 그 사람이 하면 ‘그럴 것 같다’라는 느낌을 주잖아요. 정말 믿어져요.

〈좀비딸〉 스틸컷
〈좀비딸〉 스틸컷

영화 속 밤순이 ‘내가 제일 잘 나가’(2NE1의 곡)를 부르며 춤을 추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 장면을 찍을 때는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영화에서는 많이 편집되었는데요. 촬영할 때, 실제 70대 어머니들도 다 한 대목씩 춤을 추셨어요. 모여서도 추고. 같이 젊은 춤을 추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니까 좋았어요. 되게 즐거워하셨는데, 시간 관계상 많이 못 나온 게 아쉬워요.

안무는 미리 연습하신 건가요?

선생님과 한 달 반 전부터 연습했고, 현장에서도 선생님이 지도해 주셨어요. 그리고 코믹한 신이 나올 거라고 생각을 못 할 때, 그런 춤을 넣으신 거는 분명히 감독님의 초이스가 너무 훌륭하지 않았나. 그리고 그게 놀이동산 장면과 맞물려서 등장하잖아요. 사실 처음에는 제가 ‘내가 제일 잘 나가’를 녹음한 버전도 썼었어요.

〈좀비딸〉 스틸컷
〈좀비딸〉 스틸컷

손녀 수아와 할머니 밤순의 케미는 〈좀비딸〉의 큰 웃음 포인트입니다. 손녀 수아를 연기한 최유리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유리가 굉장히 독특한 배우예요. 쉬는 시간에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곤충을 관찰을 해요. 문학적이고, 소설도 읽고, 글도 써요. 보통 또래와 다른 감성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약간 예술가적인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현장에서 어떤 스태프에게든 감사함의 표현을 너무너무 잘해요. 10대라고 해서 어리게 볼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내가 존중감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함부로 할 수 없는, 굉장히 독특한 지점을 가지고 있는. 그리고 굉장히 겸손한 배우구나 싶어요. 또, 사실 유리 배우의 리액션 때문에 제 연기도 살았고, 우리의 케미가 굉장히 좋게 나온 것 같아요. 저희 영화가 ‘좀비가 되어버린 딸’을 다루고 있지만, 10대를 바라보는 우리 세대의 관점이 들어가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좀비딸〉의 히든카드, 애용이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치즈태비 고양이와의 연기는 어떠셨나요.

애용이의 눈을 보면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되게 본능적인 연기가 나와요. 그래서 저도 저렇게 연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도 강아지를 오랫동안 한 20년간 키웠으니까, 솔직히 어떤 때는 동물들하고 연기하는 게 더 좋아요. (웃음)

배우 이정은. (사진제공=NEW)
배우 이정은. (사진제공=NEW)

이정은 배우는 정말 팔도 사투리를 다 연기해 본 적이 있으시잖아요. 이번 밤순은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데요. 평소 사투리의 차이뿐만 아니라, 연령대의 말투까지 연구한다고 하신 적 있어요. 이번 밤순의 사투리는 어떻게 접근하셨나요.

사투리를 녹취할 때, 다섯 분의 선생님을 만나 뵀어요. 예전에는 이런 얘기를 뻘쭘해서 안 했는데, 노력을 많이 했어요. 레퍼런스로 사투리 녹취를 해 주신 분들이 다 기본적으로 연기를 너무 잘하시는 분들이라, 제가 그분들에게 상황에 맞는 애드리브도 녹음해달라 요청했어요. 다행히 코미디의 타율이 좋았나 보네요.

항상, 연기의 기술적인 테크닉보다는, 마음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적 있어요. 〈택시운전사〉 때, 사투리를 배우러 광주에 갔다가 그분들의 마음을 먼저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고, ‘사람살이에 대해 알아야 한다’라고 하셨는데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는요.

사투리는 사실 리얼감을 갖게 해주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생각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연습을 하는데도 도달하지 못할 때가 있다고 느껴요. 근데 도달하지 못하는 지점에 대해 지금은 좀 용서가 되는데, 한참 할 때는“왜 이렇게 해도 왜 빛이 안 날까? 더 그 지역 사람처럼 하고 싶은데”라는 생각을 했어요. 근데 그게 너무 지나친 욕심이었다는 생각은 들어요. 왜냐하면 지방에 있는 친구들도 서울말 되게 열심히 잘 쓰다가 감정만 올라가면 바로 자기 고향 말이 나오는 것처럼, 그걸 숨길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노력하고, 또 정서를 배우는 과정을 더 중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는 결과에 너무 매달렸기 때문에 스스로 괴로운 지점이 좀 많이 있었어요. 그런데 내가 결과에 너무 집착하면 아무도 해보려고 하지 않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과정의 즐거움을 나눌 수 있다면, 배우로서 더 많은 시도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덜 지치는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에요.

앞서, 사투리 연습을 한다는 사실을 과거에는 뻘쭘해서 말하지 않았다고 하셨는데요. 혹시 과거에는 왜 뻘쭘하다고 느끼셨나요?

자랑하는 것 같아서요. 왜, ‘연기는 다 그렇게 하는 건데 내가 너무 드러내나’ 싶어서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많은 배우들이 자기가 했었던 걸 솔직하게 얘기할 필요는 있는 것 같아요. “나 이만큼 했고요. 그래서 이런 결과를 얻었어요. 근데 이게 쉽지는 않더라고요”라고 얘기를 해 주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밖에서 결과를 보시는 분들은 (어떤 결과를) 되게 단순하게 얻었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의 천부적인 재능이라고 생각하지만, 제가 본 어떤 배우도 천부적인 재능으로 거기까지 가지는 않아요. 그래서 이제는 저도 노력을 많이 했다는 말을 드려야겠다 싶어요. 최근에 내가 너무 좋아하는 배우 (이)병헌 씨가〈오징어 게임〉 때 인터뷰하는 걸 봤어요. 영어로 인터뷰하는데, 이 사람이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가 보이더라고요. 몇 년 전의 인터뷰와, 또 올해 인터뷰의 어휘 선택과 어순과 느낌이 다 달라지고 있어서. 언어를 연습하는 사람들의 노력은 정말 칭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어느 때보다도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배우 이정은. (사진제공=NEW)
배우 이정은. (사진제공=NEW)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정은 배우는 유기견을 오랫동안 키운 경험이 〈좀비딸〉의 감정을 형성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씀하신 적 있어요. 기자간담회에서 쓰레기장에서 컸던 유기견을 키우면서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고 하셨는데요.

그전에 키우던 아이들은 되게 얌전했어요. 그런데 올해 저세상으로 간, 19살 ‘흰둥이’는 매일이 말썽이었거든요. 제가 〈눈이 부시게〉 할 때는 눈을 물려서 수술도 했는데요. 아이가 변화하는 과정이 절대 빠르지 않아요. 맴매 갖고도 안 돼요. 맴매하면 더 삐뚤어져요. 그래서 훈련을 시키는 거죠. “이런 코드는 너를 해치는 게 아니야”. 그런데 아이가 이것을 알아가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어요. 거의 한 15살 정도 돼서 정신을 차렸어요. 그런데 지금은 제일 잊지 못하는 아이가 됐고. 그러면서 좀 참을성을 많이 배운 것 같아요. 펫 키우는 사람들이 그런 얘기 하잖아요. “같이 공생할 수 없으면 못 키운다.” 그런데 하나의 생명체를 우리가 같이 살 수 있는 방향으로 만드는 게, 〈좀비딸〉의 이야기이기도 해요. 그 노력이 우스꽝스럽게 보이긴 하지만, 사실은 삶은 훨씬 더 많은 인내와 참을성이 필요하고. 육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사담으로, 이번에 후배가 그림 작가로서 「도봉이 그리기」라는 책을 내는데, 저희 애가 장례식을 치른 그다음 날에 추천사를 부탁받았어요. 그런데 추천사가 그냥 막 써지더라고요. 혹시 「땡땡의 모험」에 나오는 밀루 아세요? 너무 우리 강아지를 닮아서, 계속 장바구니에다가 (밀루 관련 굿즈를) 몇십만 원어치를 담고 있더라고요. 너무 보고 싶으니까.

〈좀비딸〉 스틸컷
〈좀비딸〉 스틸컷

사실, 〈좀비딸〉에서 밤순은 굉장히 많은 시련을 견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영화에서는 밤순의 감정이나 서사가 자세히 그려지지는 않아요. 배우로서는 더 많은 감정을 담고 싶으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들 정환을 묵묵히 뒤에서 바라보는 게, 그런 지점인 것 같아요. 밤순에게는 즐거움만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이면에 굉장히 큰 아픔이 있고. 그런데 모든 작품에서 제가 찾아낸 걸 다 담을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강약 조절이라는 게 필요한 거고, 제가 너무 감정적으로 빠지는 신이 많았다면 정환의 부성애가 축소될 수 있는 지점들이 있어서, 밤순의 감정을 많이 드러내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인가 이런 생각이 좀 들었고요. 제 스핀오프를 만들어 준다면 여기서 담아내지 못한 얘기를 좀 많이 하고 싶죠. 칠곡 어머니들이 랩을 만드는 영상을 보고 정말 도움이 많이 됐어요. 너무 충격이었어요. 칠곡 어머니가 랩을 하실 때, 본인이 만드신 가사의 첫 소절이 “아들 여의고”였는데, 슬픔이라는 건 그런 것 같아요. 삶에서 아주 날카로운 몇 컷이 있는 것. 그래서 굳이 많은 부분을 욕심내지 않고, 상상의 공간을 열어놓는 인물로 있는 게 좋다고 생각이 드네요.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밤순 캐릭터를 만들어나갈 때 칠곡 래퍼 할머니들의 레퍼런스 영상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하셨어요. 평소 연기를 할 때도 근거를 찾는 편이신가요.

제가 또 병적으로 의심이 많아서. 사실은 액팅은 빌리빙(believing)인데, 저는 아직 완숙한 배우가 아니라서 항상 의심이 들어요. 그래서 “내가 분명히 뭐 조금 더 찾아볼 게 있을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하면 몸에 붙일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해요. 그래서 그런 것(레퍼런스)이 약간의 동아줄 같은 거죠. 열심히 타고 가보면 어딘가에 도달하게 되는 것 같아서. 저는 연출님들, 감독님들의 이러한 지침이 되게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완벽주의자이신 것 같은데요. (웃음)

완벽주의는 아니고, 거기에 도달하고 싶은 생각은 있고요. 일상에서는 말썽 부리는 10대 같은 50대예요. 엄마한테 맨날 등짝 맞아요. 엄마가 “제발 좀 옷 좀 제대로 입고 나가라. 맨날 체육복만 입고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니?”그래요.

영화를 보면 ‘나의 가족이 좀비가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데요. 이정은 배우님은 정말로 나의 가까운 가족이 좀비가 된다면, 어떻게 하실 것 같으세요.

저도 케어할 것 같아요. 그리고, 저도 사실 고령의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데, 기억이 많이 쇠퇴하셨거든요. 그래서 하루하루의 변화를 볼 때도 느껴요. 꼭 좀비가 되는 과정이 아니더라도, 나의 부모님이 부모님 같지 않은 행동을 할 때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매일 고민해요.

배우 이정은. (사진제공=NEW)
배우 이정은. (사진제공=NEW)

작년 〈낮과 밤이 다른 그녀〉부터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조명가게〉 그리고 〈천국보다 아름다운〉까지 최근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세요. 혹시 연이은 작품 활동으로 지치지는 않으셨나요.

체력적인 부분에서는 지칠 수 있지만, 멘탈이 나간 건 아니에요. 그런데 보통 “작품이 들어올 때 많이 해라”라고 하시잖아요. 그런데, 기준에 따라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점점 들고, 제가 즐길 수 있고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선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혜자 선생님도 늘, 너무 겹치게 많이 하지 말고, 작품도 좀 보라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저에게 자신감을 갖고 자유롭게 선택하라는 말을 저 자신에게 해주고 싶어요.

계속 한국 영화의 위기론이 화두가 되고 있는데요. 올여름 〈좀비딸〉을 볼 관객들에게 한 말씀해 주신다면요.

사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어느 한 영화가 기적적으로 한국 영화의 부활을 만들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불안한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제가 어렸을 때 〈벤지〉(1974)라는 영화를 봤어요. 강아지를 통해 아이들을 구하는 이야기가 모든 사람을 하나의 마음으로 만들었던 경험이 내 어린 시절 큰 원동력이 됐어요. 〈좀비딸〉도 그런 작품이 됐으면 좋겠고, 저희 작품뿐만 아니라 함께 경쟁하는 작품들도, 식구들이 모두 극장에 와서 여름휴가를 같이 보낼 수 있는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 배너는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댓글 작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