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명화] 어떤 찐따남이 가장 좋으신가요

매일신문 임소현 기자

부부가 함께 영화를 봅니다. 멜로물을 보며 연애 시절을 떠올리고, 육아물을 보며 훗날을 걱정합니다. 공포물은 뜸했던 스킨십을 나누게 하는 좋은 핑곗거리이고, 액션물은 부부 싸움의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훌륭한 학습서입니다. 똑같은 영화를 봐도 남편과 아내는 생각하는 게 다릅니다. 좋아하는 장르도 다르기 때문에 영화 편식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편집자 주-


부부명화를 주제로 영화를 고르다 보면, 가끔 스크린 속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하게 된다. 주인공이 꼭 우리 집 남편을 빼다 박은 것 같은 순간들 말이다. (남편에게 미안하지만) 그 얼굴은 근육질 히어로나, 카리스마 넘치는 상남자는 아니다.

우리 집엔 마블 히어로는 없지만, 영화 속 숨어 있는 귀여운 찐따남들이 모여 살고 있다. 운동을 좋아하지도 않고, 퇴근하면 집으로 직행하고, 술자리에선 늘 사진을 찍어 보내 안심을 시키는 그런 남편. 친구가 없진 않지만 만나면 기 빨린다며, 결국엔 가족 곁에 머무는 걸 더 편해하는 남편. 스크린 속 어딘가에서 이런 남편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생각했다. 언젠가 우리 남편 설명서로 글 한번 써야지!


“無외출 남편, 팀과 꼭 닮았네”

〈어바웃 타임〉의 팀
〈어바웃 타임〉의 팀

팀이 아버지에게 묻는다. “시간 여행 능력을 어디에 쓰면 좋을까요?”. 아버지는 답한다. “대단한 일 말고, 평범한 하루를 다시 한번 살아봐라”. 이후 팀은 매일 아침 출근길, 저녁 가족 식사 같은 평범한 일상을 반복하며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팀은 아내에게 말한다. “내 인생 최고의 결정은 널 만난 거야”.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천하무적 능력이 있지만, 그것으로 세상을 구하거나 큰 성공을 거두려 하지 않는다. 팀은 그저 집에 일찍 돌아가 가족과 저녁을 먹고, 사랑하는 여자와 시간을 더 보내는 데 쓴다. 영화 속 팀이 가장 행복해하는 순간은 여행이나 파티가 아닌, 집에서 아내와 아이들과 나누는 평범한 일상이다.

우리 남편도 그렇다. 퇴근 후 늘 집으로 직행하고, 주말이면 “어디 놀러 나가야지!”보다 “우리 오늘은 뭐 할까”라고 말한다. 자기 욕심이나 취미보다 가족의 하루가 우선이고, 그게 본인도 가장 편하다며 웃는다. 겉보기엔 소심한 집돌이지만, 사실 그건 가족과 시간을 더 갖기 위한 선택일 것이다.

메리에게 청혼하는 팀의 모습도 인상 깊었다. 보통의 로맨틱 코미디 속 프로포즈와는 달랐다. 파리, 뉴욕, 레스토랑에서 멋지게 청혼하는 다른 남자주인공들과는 달리 팀은 집에서, 자기 방 침대에서, 잠옷 바람으로 청혼한다. 특유의 소박하고 투박한 방식. 하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팀의 한마디. “메리, 난 그냥 널 사랑해. 그러니까 결혼해줄래?”

집돌이 우리 남편의 프로포즈도 신혼집에서 거행(?) 됐다. 몇장의 편지와 함께. 누군가 들으면 ‘그걸로 되겠어?’라고 말할 소박한 프로포즈지만, 이런 것이 남편에게는 어울리고. 또 우리 부부에게 맞는 방식이지 않겠는가.


“無취미 남편, 패터슨과 꼭 닮았네”

〈패터슨〉의 패터슨
〈패터슨〉의 패터슨

패터슨은 매일 같은 시간에 버스를 몰고 출근한다. 일상의 루틴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특별한 이벤트나 취미 없이 소소한 삶 자체에 만족한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오늘 하루도 특별히 달라진 건 없지만, 이런 일상이 좋아”.

우리 남편의 하루도 항상 똑같다.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하면 집으로 온다. 이 시간쯤엔 남편이 이걸 하고 있겠네! 하면 그 생각은 항상 적중한다. 일하는 틈틈이 보내주는 카톡과 일상 사진들 덕분에 육아맘인 나의 하루도 심심하지 않다. 언젠가 남편에게 이러한 일상이 지루하지 않냐고 물어본 적도 있다. 하지만 남편은 말했다. “일하고 집에 와야지, 그럼 내가 어딜 가”.

이런 루틴이 가능한 것은 남편이 취미가 없기 때문이다. 마치 패터슨처럼. 취미가 없기 때문에 집에 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운동을 잘하지 못하는 남편은 축구를 하면 늘 깍두기였단다. 그런 그에게 축구, 야구, 테니스 등은 취미가 아닌 고통이다. 부모님의 권유로 출산 전 남편과 함께 골프를 배워본 적도 있다. 하지만 타수가 줄지 않자 흥미를 잃어버렸던 우리…. 남편에게 운동은 아파트에 있는 헬스장에서 러닝머신 뛰고 오는 30분이 전부. 운동, 외출보다 집과 가족 중심의 안정적 루틴에서 행복을 느낀다.

물론 소소한 취미는 있다. 패터슨이 작은 공책에 하루를 기록하며 시를 쓰는 장면처럼, 우리 남편은 노래 부르는 것이 취미. 왕년에 대회에서 상도 몇 번 탔던 남편은 이제 나와 함께 코인 노래방에서 열창을 한다. 취미 부자인 사람들이 보면 "참 재미없게 산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남편에게 취미는 가족이 함께하는 모든 것들이다. 산책. 맛있는 식당 탐험. 드라이브. 여행…. 이렇게 보니 취미가 없는 사람이 아니네!


“無친구 남편, 테오도로와 꼭 닮았네”

〈그녀〉의 테오도로
〈그녀〉의 테오도로

테오도로라면, 혹시 〈그녀〉의 주인공? 뜨악할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테오도로는 하루 종일 인공지능 사만다와 교류한다. 아니 그럼 남편이 히키코모리라는 거야? 그 정도는 아니다. AI와 연애하는 정도는 아니니 오해는 마시길.

남편은 테오도로처럼, 집 안에서 가장 편안하게 살아간다. 외부 모임이나 친구들과의 파티는 필수 옵션이 아니다. 친구가 있어도, 에너지 소모가 큰 활동은 자동 회피 모드. 아만다와만 교류하는 테오도로처럼, 남편은 친구를 잘 만나지 않는다.

오해할까봐 말하자면 남편은 친구가 많다. 결혼식 도우미 분이 이렇게 친구가 많은 부부는 처음 본다고도 했다. 하지만 결혼 후 친구를 자주 만나지 않는다. 모임에 가는 대신 커피 한 잔과 아기 웃음소리를 선택할 뿐. 조용한 성격 덕분에 집안은 평화롭고, 가족과의 시간은 영화 속 장면처럼 특별하다

테오도로는 친구 모임이나 회식 대신 집에서 사만다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하루를 보낸다. 또한 테오도로는 집 안에서 혼자 음악을 듣거나, 사만다와 대화하며 하루를 보낸다. 남편도 내게 그런 말을 했다. “친구들도 좋은데, 그냥 자기랑 있는 게 제일 재밌어”.


“쓰고 보니 자랑 같지만...”

쓰다 보니 찐따남이 더 좋아졌고, 쓰고 보니 자랑글 같아 얼굴이 뜨겁다. 하지만 이러한 찐따남도 나와 맞으니 자랑이 될 수 있는 것. 누군가는 E 성향, 취미 부자, 인맥 부자를 좋아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외치겠지. 저게 무슨 자랑이라고 글까지 써!

그래서인지 이러한 성향을 가진 남자 주인공들은 많지 않다. 이런 남주에게는 (그닥) 남성미가 없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남주들을 좋아하는 게 내 성향인 걸 어떡하리. 삐까번쩍 인공지능 자비스를 두르고 휘휘 날라다니는 히어로보다는 남루한 옷에 거미줄 쏘는 것이 전부인 스파이더맨을 제일 좋아하는 나로서는, 찐따남 남편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겉보기엔 평범해 보여도, 매일 아기 웃음을 지켜보고, 아내가 힘들어할 때 곁을 지키며, 소소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모습은 영화 속 어느 주인공보다 특별하지 않을까.

“다음엔.. 한국 영화로 써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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