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벡델데이 2025’ 올해의 벡델리안! 대중성과 작품성, 평등의 가치를 동시에 잡아낸 '옥씨부인전' 박지숙 작가

“착하면서도 재미있는 드라마를 쓰는 것이 인생의 목표, 〈옥씨부인전〉으로 목표 이룬 것 같아”

〈옥씨부인전〉 포스터
〈옥씨부인전〉 포스터

이렇게나 재밌는데 전복적인 드라마라니. 〈옥씨부인전〉은 전복적이면서도 따뜻하고, 희망적이면서도 긴장감 넘치고, 16부작임에도 호흡이 빠르고 탄탄하다. 무엇보다도 〈옥씨부인전〉의 성취는 ‘착한 드라마는 재미없다’라는 편견을 깼다는 데에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방송된 JTBC 토일드라마 〈옥씨부인전〉의 시청률은 첫 화 4.2%에서 시작해 최종화인 16화에서는 13.6%(닐슨코리아)을 기록하며 우상향 곡선을 그려냈다. 점차 시청자들의 입소문을 타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잡아낸 셈이다.

한국영화감독조합(DGK)이 매년 주최 주관하는 행사 ‘벡델데이’는 한국 영화영상 미디어에서의 성평등 재현을 돌아보기 위해 마련된 행사로, 영화·시리즈를 통해 성평등에 대한 관객들의 인식을 제고하고 문화다양성 향상에 기여하는 콘텐츠 페스티벌이다. 벡델데이는 매년 성평등에 기여한 감독, 작가, 배우, 제작자를 ‘벡델리안’으로 선정하는데, 올해 시리즈 작가 부문의 벡델리안으로는 〈옥씨부인전〉의 박지숙 작가가 선정됐다.

〈옥씨부인전〉의 구덕이는 옥태영(임지연)으로, 송서인은 천승휘로, 그리고 성윤겸(추영우)으로 살아가며 역할과 고정관념을 자유로이 전복해나가는 인물들이다. 극 중 옥태영이 말하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라는 당연한 명제는 벡델데이가 줄곧 외쳐오던 ‘성평등’의 가치와 일맥상통하기에, 〈옥씨부인전〉은 어쩌면 벡델데이가 그토록 기다려왔던 시리즈였을지도 모른다. 박지숙 작가의 벡델리안 선정을 기념해, 씨네플레이가 박지숙 작가와 진행한 서면 인터뷰의 전문을 옮긴다.


〈옥씨부인전〉 박지숙 작가
〈옥씨부인전〉 박지숙 작가

박지숙 작가님은 〈옥씨부인전〉으로 독창적인 성평등 서사와 캐릭터를 구현해, 벡델데이2025의 벡델리안으로 선정되셨습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벡델리안 선정에 감사드립니다. 〈옥씨부인전〉에 공감해 주신 시청자분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방송될 수 있도록 힘써주신 관계자분들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늘 주류가 되지 못한 사람들, 소외되거나 약한 이들이 행복해지는 이야기를 써왔습니다. 그저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용기를 주고 마음이었는데, 이번 선정으로 그 마음을 조금은 인정받은 것 같아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리지널 극본이 드문 요즘 시대에, 드라마 〈옥씨부인전〉은 박지숙 작가님의 오리지널 극본이라는 점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지금까지는 현대극을 집필해오셨는데, 〈옥씨부인전〉으로 조선시대 배경의 극본을 써야겠다고 처음 마음먹은 이유가 궁금하고, 발상의 시작 단계가 궁금합니다.

현대극을 집필하면서 늘 목말랐던 것은 감정의 깊이를 축적할 수 있는 서사의 시간과 공간이었습니다. 현대의 발달된 생활환경이 관계의 전개를 단순하고 가볍게 만들어, 감정이 충분히 머무르지 못하게 한달까요, 그래서 매체의 편의가 존재하지 않던 시대극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습니다. 그 시대에는 기다림이 관계를 더 깊게 만들고, 기다림이 길수록 애틋해지고, 만나기 어려울수록 간절해지는 정서가 있었던 것 같아요.

〈옥씨부인전〉
〈옥씨부인전〉

작가님은 실존 여성의 기록을 찾고자 했으나, 극적인 서사를 지닌 실존 여성의 이야기를 찾기 어려워 가상의 인물을 창조했다고 밝히신 적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조선의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삶을 개척했던 많은 여성이 기록되지 않았을 뿐이다”라는 말씀을 덧붙이셨는데요. ‘기록되지 못한 여성들’을 왜, 그리고 어떻게 드라마의 언어로 되살리고 싶으셨나요?

사극을 집필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널리 다루어진 사건과 인물들보다는, 아직 조명되지 않은 사람을 찾아내고 싶었고, 그때부터 많은 자료와 기록을 찾아보았지만, 주로 정치와 권력을 쥔 지배층이나 관료 중심의 기록이 많았습니다. 사회 밑바닥에서 치열하게 살아낸 이들의 이야기도 대부분 남성에 국한되어 있었고요. 당시 조선의 기록 체계가 지배층 중심의 시각, 성리학적 가치관에 맞춰졌기 때문이겠지요. 분명 다양한 삶을 개척하며 살아간 여성들이 존재했을 텐데, 여성에 관한 기록은 매우 드물었고 현모나 양처, 열녀와 같은 한정된 이미지뿐이었기에 몹시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저는 실존 인물을 좇기보다는 상상력을 통해 가상의 인물을 창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옥태영이 된 구덕이(임지연)는 현대의 ‘인권 변호사’와 같은 활동을 펼칩니다. ‘노비 출신 여성 외지부’라는 설정은 어떻게, 왜 착안해 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옥씨부인전〉의 모티브는 백사 이항복의 ‘유연전’이라는 재판 기록이었습니다. 여기서 착안해 실제로 존재했던 외지부, 즉 조선시대 변호사의 역할을 가져왔어요. 주인공이 결국 재판을 받게 될 운명이라면, 무력하게 법정에 서 있는 모습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죄를 항변하는 인물로 그리고 싶었습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 있으며 제도권의 어떠한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노비 여성이,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지도 모르는 위험 속에서도 법과 제도를 무기 삼아 강한 목소리로 세상과 맞서는 모습은 매우 역설적이고 극적인 힘을 지닐 거라 생각했습니다.

〈옥씨부인전〉
〈옥씨부인전〉

작가님께서는 ‘죄인인 구덕이가 천신만고 끝에 용서받는 이야기’라고 〈옥씨부인전〉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신 적이 있습니다. ‘가짜 삶’을 살고 있는 구덕이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정이 가는 캐릭터인데요. 시청자들을 죄인인 구덕이에게 이입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셨고 어떤 장치를 고안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은, 구덕이의 거짓이 결코 이기적이어서는 안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사건을 배치할 때도 구덕이가 의도적으로 거짓을 선택하지 않도록 했고, 양반이 되고자 하는 욕망, 세상을 향한 복수심이나 미움 같은 감정은 철저히 배제했습니다. 대신 구덕이에게 선함과 곧음, 이타적인 마음과 희생을 부여했어요. 사람에 대한 진심,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타고난 영민함을 무기로 삼아 세상과 맞서도록 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진정성이 구덕이의 가장 큰 매력이 되었고, 그것이 구덕이가 시청자들에게 사랑받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옥씨부인전〉
〈옥씨부인전〉

구덕이뿐만 아니라, 서자 출신인 송서인(추영우) 역시 자신의 신분적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인물입니다. 송서인은 글공부보단 소설책, 무예보단 그림과 악기 연주와 춤사위에 관심을 두어 ‘광인’으로 불리는데요. ‘조선의 남성성’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깨는 인물을 남자 주인공으로 설정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극의 여성 캐릭터가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남성 캐릭터 역시 기존 질서와 전형을 벗어난 다른 얼굴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전형적인 남성상은 여러 사극 작품에서 자주 다뤄져 왔기에, 조금 다른 결을 가진 인물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서인이는 중반부부터 타인의 삶을 연기해야 하기에, 당시 연기자에 제일 가깝다고 생각한 직업을 찾다가 전기수의 설정을 가져왔습니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극에 LGBTQ+ 소재가 등장하는 파격을 보여주셨습니다. 〈옥씨부인전〉은 조선시대의 소수자를 가시화했다는 점이 인상적인데요. OTT 드라마가 아닌 TV 드라마로서,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선택의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 설정은 상상력이 아니라 실제 기록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모티브가 된 ‘유연전’ 뿐 아니라, 조선 시대의 여러 기록을 살펴보면, 성소수자는 과거에도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그렇기에 구덕이가 마주하게 될 소외된 약자의 범주에서 그들을 배제하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설정을 특별히 파격으로 의식하지는 않았습니다. 실제로 존재했던 사람들이고, 그들 역시 시대를 이루는 일부였기에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옥씨부인전〉
〈옥씨부인전〉

〈옥씨부인전〉에서 성윤겸(추영우)과 옥태영이 된 구덕이(임지연)의 결혼은 성소수자와 노비 출신 여성의 결합이므로, 사회적으로 소외된 인물들의 ‘생존을 위한 연대’로 읽히는데요. 작가님께서 성윤겸과 옥태영의 혼인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성윤겸과 옥태영의 혼인이 어떤 특별한 메시지를 의도한 것은 아닙니다. 두 사람 모두 위험한 처지에 있으면서도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신념과 가치가 강했기에, 이를 실현하기 위해 혼인이라는 안전한 장치를 선택한 동료라고 생각했어요.

극 중 성폭행을 당한 백이(윤서아)의 죽음, 과부와 열녀문 등 조선시대의 모순을 꼬집는 소재들이 등장합니다. 이런 소재들을 극에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실제 역사 속에서는 이러한 사건들을 겪은 이들 대부분이 아무런 구제도 받지 못한 채 억울하게 사라져 갔겠지요. 허구의 힘을 빌려 가상의 인물인 옥태영을 통해 그 부당했던 사건들을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에게는 작은 위로와 해방감을 전하고, 동시에 옥태영이라는 인물에 대한 신뢰가 깊어지길 바랐습니다.

〈옥씨부인전〉은 판타지적 요소 없이, 조선 신분제의 벽을 넘어선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이런 역사적 제약 속, 소수자, 노비 등 사회적으로 소외된 인물들을 그릴 때 어떤 점을 가장 고민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노비든 서자든, 소수자든, 사회적으로 약한 위치에 있더라도, 단순히 피해자로만 보이지 않길 바랐습니다. 스스로 선택하고 움직이며 살아내는 힘을 가진 주체적인 인물로 그리고 싶었습니다.

〈옥씨부인전〉
〈옥씨부인전〉

무엇보다도 〈옥씨부인전〉의 가장 큰 성취는 ‘재미’에 있습니다. 정의, 평등, 상식과 같은 가치를 담아내면서도, 드라마는 끝까지 재미와 긴장을 놓지 않았습니다. ‘착한 드라마는 재미없다’는 편견을 극복하고자 노력하셨나요?

착한 드라마이면서도 재미있는 드라마를 쓰는 것이 제 인생의 목표였는데, 〈옥씨부인전〉을 통해 그 목표가 이뤄진 것 같아 기쁩니다. 사람은 본래 선하다고 믿고 세상 역시 온기 있는 사람들로 가득하다고 믿습니다. 혐오와 갈등이 만연한 시대이지만, 여전히 많은 분들이 착한 사람이 복을 받는 이야기를 기꺼이 좋아하고 재밌어하신다는 사실에 무엇보다 큰 기쁨을 느낍니다.

〈옥씨부인전〉을 비롯해 〈엉클〉, 〈내 생애 봄날〉 등 박지숙 작가님의 작품을 보면,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보입니다. 또, 특별하지 않은 소시민적인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고요. 지금까지 해오신 것처럼, 앞으로도 따뜻한,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를 쓸 예정이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평범한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기회가 제게 주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허락되는 한 앞으로도 열심히 쓰겠습니다.

〈옥씨부인전〉
〈옥씨부인전〉

마지막으로, 9월 개최를 앞둔 벡델데이 2025를 향한 기대와 응원의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벡델데이는 양성평등의 가치를 바탕으로,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존중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뜻깊은 축제라고 생각합니다. 창작자들에게는 용기가 되고, 시청자들에게는 변화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되겠지요.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고, 모두의 이야기가 기억되고 존중받을 수 있는 따뜻한 세상이 되기를 기대하며 벡델데이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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