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연재 글을 여는 첫 글이므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도 첫날인데 취향을 까발리긴 다소 부끄럽고, 읽는 사람에게 영양가가 없으면 안 되니 좋으면서도 무난한 작품을 떠올리다 「스파이 패밀리」와 「스킵과 로퍼」 중 하나로 써야지 정했다. 그러나 자려고 누워 공상하다 보니 소개해야겠다 싶은 작품이 번뜩 생각났다. 「룩 백」이다.

이제는 동명의 애니메이션이 나와 많은 사람이 접했으리라 생각한다. '룩백단'으로서 자부심과 부끄러움을 모두 안고 말하자면, 필자는 「룩 백」을 정식 발간 전에 읽었고, 정식 발간하자마자 바로 사서 또 읽었다. 처음 접한 건 누군가 불법으로 번역한 것이었다. 참신한 일본 단편 만화는 보통 필자보다 덕력이 높고 일본어에 능통한 누군가가 인터넷에 퍼뜨리기 마련이다(덕후는 영업으로 먹고사니까). 「룩 백」도 유명 작가의 신작이었으니 누군가 번역본을 올렸는데, 마침 그것을 보게 된 셈이다(맹세컨대 불법 사이트를 들락거리다 본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읽었을 때 이미 마음에 들었으니 당연히 정발본을 사서 보은하는 것이 마땅했다. 이후 한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이런 만화가 있다'고 추천하곤 했다.
「룩 백」은 현재 극장가를 뒤흔든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의 원작 「체인소 맨」을 그린 후지모토 타츠키 작가의 단편이다. 후지모토 타츠키는 이른바 ‘단편의 악마’ 혹은 ‘1화의 악마’라고 불리는데, 그가 그린 많은 단편이나 1화의 흡입력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물론 첫 번째 장편 「파이어 펀치」가 제멋대로 완결된 탓에 반어법이 된 것도 있지만 아무튼. 그렇게 단편으로 명성이 높은 후지모토 타츠키는 「체인소 맨」 1부를 마무리 짓고 그해 7월 「룩 백」을 발표했다.

「룩 백」은 겉으론 아닌 척 하지만 만화가가 되고 싶은 소녀 후지노가 자신보다 훨씬 그림 실력이 좋지만 등교 거부 중인 쿄모토와 만나면서 겪는 일을 그린다. 「룩 백」은 후지모토 타츠키의 무심한 듯 정확한 인물 묘사와 컷 구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는데, 거기다 스토리가 무척 훌륭하다. 모든 게 다른 두 소녀가 서로에게 동력이 돼주고, 그러다가 꿈이 달라지면서 멀어지는 이야기는 창작자로서의 마음가짐을 경유해 삶에서 엇갈린 인연을 경험한 모두의 마음을 뒤흔든다.

결국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뒤로 한 채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작품을 그리는 후지노의 모습은 일본 만화 산업 종사자들의 마음까지 자극했으리라. 오죽했으면 경력 20년 차의 작화가가 소수정예로 애니메이션화를 추진했겠는가.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은 연출뿐만 아니라 콘티, 동화, 작화, 편집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 스스로를 내던져 중편 애니메이션 〈룩백〉을 완성했다. 원작을 최대한 고스란히 옮기되 후지노와 쿄모토가 보낸 시간을 아름답게 담아내 작품의 비극성을 강화했다. 그만큼 만화에서 쓸 수 없는 음악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이 모든 일이 좌절이 아닌 응원으로 닿을 수 있도록 마무리 짓는다.

한 권의 책으로도, 한 편의 중편 애니메이션으로도 ‘룩 백’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개인적으론 후지모토 타츠키의 컷 구성력과 거칠고 적막함이 감도는 작화의 원작을 좀 더 추천한다) 그러니 어쨌든 꼭 보시길, 보셨길 바란다. 만화책은 150페이지가 되지 않고, 애니메이션도 57분이라 한 시간만 투자하면 된다. 연말이 가까워지는 이 시점에서 본다면 작품의 봄여름가을겨울이, 작품을 관통하는 그 감성이 더욱 짙게 묻어날 것이다. 〈룩백〉은 현재 메가박스에서 재개봉 중이고, OTT 플랫폼 프라임 비디오에서 관람할 수 있다.

***** 영화 속 물건들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 ‘주성철의 사물함’을 시작으로 떡상을 기대하는 배우 사용 설명서 ‘김지연의 보석함’, 내 마음을 움직인 영화음악 감상실 ‘추아영의 오르골’, 서브컬처 잡상인의 구매일지 ‘성찬얼의 만화책’까지 씨네플레이 기자들이 저마다의 취향과 시선으로 격주 연재를 시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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