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어른 김장하'로부터 '남태령'까지, 광장은 진화한다.” '남태령' 김현지 감독 ②

체감온도 영하 20도의 ‘긴긴밤’은, 그렇게 가장 ‘밝은 밤’이 됐다. “이렇게 귀엽고 매콤한 투쟁, 이게 남태령 코어야!”

김현지 감독 (사진제공=시네마달)
김현지 감독 (사진제공=시네마달)

▶ 〈남태령〉 김현지 감독과의 인터뷰는 1부에서 이어집니다.


〈남태령〉
〈남태령〉

제목 고민을 좀 하셨을 것 같아요. 〈남태령〉이 〈어른 김장하〉와 다르지 않은 톤의 제목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안그래도 제가 “제목은 남태령으로 하겠습니다”라고 했더니 다들 “제목을 성의있게 지어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남태령이 그냥 고유명사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여기서부터 새로 이야기를 시작해봅시다, 그런 태도에 대한 고유명사로 남태령이 브랜드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제가 무성의해서 그런 건 아닙니다.(웃음)

그날 농민들을 지지하며 남태령을 지킨 집회 참가자들의 상당수가 2030 여성들이었는데요. 페미니즘, 청년 고용불안 등을 통해 이들이 그동안 길러 온 민주주의 근육이 추운 영하의 날씨에도 광장으로 나오고 버티게 해준 것 같았는데요. 남태령에 모인 2030 여성들을 단순히 ‘대단하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건 그들의 참여를 폄훼하는 또 하나의 편견의 언어가 되었다는 걸, 그들의 의제와 진지한 참여를 통해 스스로 증명하기도 했고요. 직접 그분들을 접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 감독님이 체감하신 부분도 클 것 같아요.

맞아요. 2030 여성 브이로거 한지인 씨가 2030 여성들은 이미 그전의 강남역 살인 사건부터 시작해서 민중총궐기 등을 거치면서 광장에 훈련된 사람들이었고, 어떻게 나와서 이야기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이, 더 빨리 나왔던 것 같다고 이야기해주셨어요. 저는 광장에 남성들이 없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또 여성과 남성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도 남태령을 통해 배웠어요. 20대, 30대 여성으로 패싱되지만 여성이 아닌 분들도 아주 많았어요. 용주 씨처럼 논바이너리인 분들도 있고요. 그래서 “2030 여성들 너무 대단했어”라고 상찬하면 이분들이 또 상처를 받는구나 하는 것도 배웠어요. 저에게 익숙하지 않은 화법이고 분류이지만, 그게 존재하고, 그래서 제가 배워야 한다는 것도 남태령을 통해서 알게 됐어요. 새로운 민주주의, 새로운 광장에서는 이분들이 선배구나. 배우겠다는 태도로 다가가는 게 맞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태령〉
〈남태령〉
〈남태령〉
〈남태령〉

진화된 광장의 형태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SNS 활용에 최적화된 새로운 세대가 전면에 나섰다는 점도 변화에 기여했는데요. 기존 세대들 오프라인을 주무대로 온라인을 활용했다면, 지금은 온라인을 베이스로 하고 광장이라는 오프라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장점을 극대화 하는데요. 남태령은 이 변화가 가장 극적으로 실현된 공간이기도 했어요.

SNS는 일상의 한 부분, 이분들에게 SNS를 빼앗으면 엄청난 상실감을 느끼실 것 같아요. 그런데 모두 그만큼 그게 얼마나 위험한 도구인지도 잘 알고 있어요. 사이버불링도 경험해보셨고 그 공포도 되게 크세요. 그래서 SNS만으로도 안 되고, 오프라인만으로도 안 된다는 걸 아신 것 같아요. SNS가 잘하는 것, 이슈를 만들고 홍보하고 터뜨리는 역할은 잘 활용하되, 오프라인도 필요하다는 걸 남태령과 광장을 통해 이해하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오프라인을 유지하는 사람들의 노고에 대해서도 현장에 가보신 분들은 다 생각하셨을 거예요. 활동가분들이 조직을 계속 운영하고 유지하는 것, 그건 정말 대단한 돌봄이잖아요. 돌봄 노동이 정말 엄청난 것이라는 걸 남태령에서도 확인했던 것 같아요.

모두가 흔쾌히 참여해주신 건 그만큼 남태령에서 맛본 성취감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 더 많은 분들께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컸을 것 같아요.

맞아요. 성취감도 있고, 승리의 기억도 남태령으로서는 중요하지만, 각각의 개인에게 “내가 뭔가 기여했고, 내가 이 사회에 받아들여졌다”는 것이 되게 소중했던 것 같아요. 용주 씨도 평소 같았으면 50~60대 아저씨에게 “저희 딸이 아니에요”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남태령에서는 그 공간의 느낌이 모든 것이 받아들여지는 느낌이었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말을 할 수 있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용주 씨가 그 기억 때문에 “이제 다른 데서도 더 큰 용기를 낼 수 있게 됐다”고 하셔서 좋았어요.

〈남태령〉
〈남태령〉
〈남태령〉
〈남태령〉

영화의 말미, 이 영화는 더 큰 가치를 제시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가 도착하고자 하는 방향, 장소가 이곳이겠구나 싶었고요. 결국 남태령이 하루밤의 신화가 아닌 지속 가능한 광장문화, 사회적 담론의 장이 되는 걸텐데요. 마지막에 퀴어 퍼레이드에서 남태령 집회 참가자들의 만남이 그걸 가시적으로 보여주는데요.

초반에 2월, 3월 기획서를 쓸 때부터 전농에서 이미 무지개떡을 광장에 돌렸고, 우리가 퀴어 퍼레이드에 참여하겠다고 이야기하셨기 때문에, 그렇다면 마지막 장면은 퀴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영화적으로 딱 맞게 연결되는 것이라 생각해서 취재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되게 나이브했던 것 같아요. 내란 세력이 이때쯤 되면 다 정리돼 있겠지, 퀴퍼에서는 모두가 행복하겠지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한 일들이 많죠. 그래서 그래서 뒤에 그 후의 인터뷰들이 많이 들어가야 했고요.

후반부의 방향성을 전개할, 전환점은 어떤 것이었나요.

전주환 선생님(전국농민회 부경연맹 사무총장) 인터뷰를 봄에 했는데, 저희가 추수할 때 다시 가겠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농사가 잘 됐어야 했는데 농사가 망했어요. 절반을 버려야 하는 상황인데, 전주환 선생님은 “어쩔 수 없죠”라고 하셨어요. 그렇다고 밭을 불싸지를 것도 아니고, 밭을 버리고 떠날 것도 아니고, 어쨌든 수확을 한다. 내년에 조금 더 잘 되면 된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게 저에게 가르침을 주셨어요. 이다음에 우리가 뭘 해야 합니까? 남태령이라는 신화가 매일 반복될 것도 아닌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럴 때 전주환 선생님 말씀대로 우리는 계속 농사지으면 된다. 우리 일상에서 남태령이라는 씨앗을 심고, 싹이 반만 나더라도 반은 나는 거니까 계속 농사지으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만들고 나니 갑자기 〈어른 김장하〉 생각이 나더라고요. 〈어른 김장하〉는 한 사람의 거대한 초인이 평생에 걸쳐 한 도시를 돌본 이야기잖아요. 그런데 영화가 세상에 나오고 나서 걱정이 됐던 게, 사람들이 “너무 멋진 분, 존경합니다” 하고 끝나는 것이었어요. 그러면 선생님은 계속 외롭게 혼자 영웅으로 남아 있고, 우리는 다시 각자만을 위해 살게 되면 또 다른 김장하가 나오기 전까지는 세상이 다 힘들잖아요. 그런데 선생님이 “세상은 보통 사람들이 지탱하는 거야”라고 하셨을 때, 그 보통 사람들을 제가 남태령에서 만난 거예요. 그분들이 서로서로 돌보았기 때문에 남태령이 가능했던 거죠. “이거구나.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게” 싶었어요.

〈남태령〉
〈남태령〉
〈남태령〉
〈남태령〉

김장하 선생님으로부터 연결된다는 것도 중요하네요. 결국 지금은 남태령이지만, 광장은 어디에서든 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의 이야기로, 사람 사이 연결의 장으로서의 의미가 더해지는데요.

그렇죠. 어디서든요. 우리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어디서든 가능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서로 차이가 없다는 말은 아니에요. “너하고 나는 너무 다른 사람이지만, 우리는 같이 이곳에 있고, 그러니까 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해야만 하고 할 수 있다”는 거죠. 연대한다고 갑자기 모두가 천사가 돼서 내가 너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수용할 수는 없잖아요. 다만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존재, 내가 너를 죽여 없애고 싶다는 열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하는 정도만 돼도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일단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웃음) 아마도 거기서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지 않을까요.


씨​네플레이 이화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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