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가 흥행하면서, 논란에서 벗어나 재평가를 받은 배우가 있다. 시논 역의 엘리엇 페이지다. 영화가 공개되기 전까지만 해도 ‘엘리엇 페이지가 아킬레우스로 출연한다’는 루머가 기정사실처럼 퍼졌고, 엘리엇 페이지와 놀란은 “트랜스젠더가 어떻게 세기의 영웅을 연기하냐”는 폭력적인 비난까지 들어야 했다. 하지만 엘리엇 페이지는 그리스 연합군의 최후의 전령 시논을 무척이나 섬세하게 연기해냈고, 적은 분량에 분명한 존재감을 남기며 영화의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렸다. 지금은 좀 잠잠하지만 PC 열풍이 분 지난 몇 년간, 할리우드는 성 소수자에 해당하는 트랜스젠더 영화인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 기간 동안 화제를 모으거나 구설수에 올랐던 배우들을 소개한다.
엘리엇 페이지

서두에 설명한 엘리엇 페이지는 과거 엘런 페이지로 활동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이나 브랫 레트너 감독의 〈엑스맨: 최후의 전쟁〉 등으로 특히 유명하다. 할리우드에서 보기 드문 작은 체구의 귀여운 외모로 독보적인 영역을 만들었던 그는 2014년 동성애자 커밍아웃 후 2020년, 수술을 받고 트랜스남성으로 복귀했다. 당시 넷플릭스의 〈엄브렐러 아카데미〉에 후속 시즌에도 출연할 예정이었기에 독단적이고 무책임한 수술로 넷플릭스가 피해를 봤다는 등 온갖 루머에 시달렸는데 트랜스젠더 발표 이후 넷플릭스 공식 계정이 응원의 댓글을 작성하는 등 충분한 사전 협의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남성이 된 후 배우 활동은 확실히 줄었는데 이번 〈오디세이〉에서 변치 않는 연기력을 보여주면서 반등의 기회가 올지는 두고 볼만하다.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


가장 빠르게 떠오르고, 그만큼 가장 빠르게 가라앉은 스타. 2024년을 여러모로 뜨겁게 달군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은 1995년 배우 데뷔해 카를로스 가스콘으로 활동하다가 2018년 성전환 수술을 받아 여성이 됐다. 모국 스페인에서 활동하던, 글로벌 활동과는 별로 연이 없던 그가 2024년 〈에밀리아 페레즈〉의 주연으로 등장하면서 전 세계 영화인의 눈길을 끌었다. 멕시코 카르텔의 두목이었으나 여성으로 살기 위해 신분 세탁과 성전환을 한 에밀리아 페레즈 역을 맡아 조 샐다나, 셀레나 고메즈, 아드리아나 파즈와 함께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해 미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로도 등록되며 꽃길만 걷을 듯 보였다. 문제는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 본인의 과거였다. 일약 스타가 된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는 과거 SNS로 남긴 수많은 발언들이 재발굴되면서 상승세만큼 빠른 하락세를 맞이했다. 인종, 종교 등 굉장히 편협적인 차별 발언들과 〈에밀리아 페레즈〉 작품 자체의 멕시코 비하 논란 등이 얽히면서 2024년 최고의 다크호스는 아카데미에서 주요 부문 수상에 모두 실패했다.

헌터 샤퍼

수많은 스타를 낳은 드라마 〈유포리아〉에서도 헌터 샤퍼는 단연 돋보였다. 극중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트랜스여성이 된 줄스 본을 연기한 헌터 샤퍼는 배우 스스로도 비슷한 경로로 트랜스여성이 되었다. 다행히 헌터 샤퍼는 그런 혼란을 강압적으로 무시하는 가정이 아니라 그에게 관심을 기울여주고 선택을 존중해주는 가족이 있었기에 그는 일찍이 모델이자 배우로 날개를 펼 수 있었다. 〈유포리아〉에서의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여러 작품에 발탁됐는데, 지금은 〈블레이드 러너 2099〉에서 양자경과 호흡을 맞추는 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이외에도 코지마 히데오 디렉터의 신작 호러 게임 ‘OD’, A24의 신작 호러, 잭 스트라우스 감독의 호러 〈팔레트〉 등 호러 차기작이 다수 준비돼 있어 새로운 ‘호러퀸’의 자리까지 넘보고 있다.

워쇼스키스



이러나저러나 이런 주제를 다루면 빠질 수 없는,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도 가장 유명한 트랜스젠더 영화인은 워쇼스키스일 것이다. 한때 워쇼스키 형제라고 불렸던 두 감독은 2012년 맏이 라나(당시 래리)가 성전환을 하면서 ‘남매’가 됐다. 〈매트릭스〉 삼부작, 〈스피드 레이서〉 등을 연출한 유명 감독이었었기에 이것만 해도 화제가 되었는데, 그들이 특히 이런 사례에서 빠지지 않게 된 이유는 2016년 동생 릴리(당시 앤디) 또한 성전환을 하면서 ‘자매’가 됐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두 사람은 드라마 〈센스8〉를 제외하면 특히 영화에서 성공작을 내지 못해 이런 행보가 더욱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다. 또 두 사람 모두 성전환을 끝낸 후엔 공동으로 작업한 작품이 거의 없어서 공식석상에 함께 서지 않은 것도 특이한 점. 현재 두 사람 중 라나 워쇼스키는 (다분히 의도적이지만) 〈매트릭스: 리저렉션〉으로 시리즈의 숨통을 끊으면서 차기작이 없는 상태고, 릴리 워쇼스키는 연출 차기작 없이 여러 드라마 등에 총괄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린 차기작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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