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11월, 극장에서 큰 인물을 만날 기회가 마련됐다. 2025년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한국 관객들을 만난 〈호루몽〉이 바로 그 자리이다. 다큐멘터리 〈호루몽〉은 재일 코리안 3세이자 인권운동가 신숙옥의 모습을 담았다. 신숙옥은 재일 한국인에 대한 편견 속에서 기업가로서도, 인권운동가로서 성공적인 행보를 보이며 당시 일본 사회에 큰 파장을 남겼다. 〈호루몽〉 공개를 앞두고, 신숙옥이 걸어온 길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먼저 제목 〈호루몽〉의 의미를 아는 것이 도움이 되겠다. 호루몽은 일본어로 ‘내장 요리’를 뜻하는데, 보통 이 호루몬의 기원을 ‘자이니치’ 재일 조선인에게서 시작됐다고 본다. 이전까지 내장요리가 없던 것은 아니나 대중적으로 ’호루몬’이란 곱창·내장 구이가 알려지기 시작한 건 당시 일본으로 건너온 조선인들이 먹는 사람이 많이 없어 암시장에서 싸게 구할 수 있는 돼지의 내장을 구해 야키니쿠집에서 메뉴로 팔면서부터다. 즉 제목 ‘호루몽’부터 단순히 신숙옥의 일대기만을 담는 것이 아니라, 편견 속에 소외돼온 자이니치로부터 그의 이야기가 시작됐음을 시사한다.

그런 환경에서 1959년 태어난 신숙옥은 1990년대 인권운동가로서 목소리를 내기 전에도 그 자신의 능력을 입증했다. 자이니치라는, 사회적 편견에서 기회가 많지 않던 시대에 광고대행사 근무를 거쳐 인재 육성 컨설턴트이자 기업 연수 회사를 운영하는 사업가로 입지를 다졌다. 그런 그가 1990년대부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오키나와, 아이누 민족, 장애인, 난민 등 다양한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권리 등 재일 코리안과 여성 인권 문제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일본 사회가 주목하는 인물이 됐다.

특히 그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논객으로 출연한 토론 방송이었다. 1990년대에 방송된 이 장면에서 신숙옥은 “(위안부 문제를) 돈으로 해결해달라는 것 아니냐” 일본 극우를 상대로 “인간에겐 존엄이란 것이 존재한다”면서 “사과하고 싶지 않은데 사과를 하려 하니까 위선처럼 보인다”고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를 촉구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단 한 번도 언성을 높이거나 격양되지 않은 채로 극우 논객의 태도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모습으로 지금까지도 한국과 일본에서 다양한 플랫폼으로 영상이 거듭 언급되고 있다.

그렇게 시민·인권운동을 이어온 신숙옥에겐 언제나 명예와 위협이 따라다녔다. 2000년 다문화·다민족 관련 활동으로 일본 ‘자치연구대상’을, 2003년 ‘타다 요코 반권력 인권상’을, 2013년 사회에 기여한 여성에게 수여하는 ‘에이본 올해의 여성상’을 수상한 그는 올해 2026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의 이름을 딴 ‘김복동상’까지 받아 약자와 소수자를 위해 연대의 목소리를 낸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송신도를 곁에서 응원하며 구체적인 의제로 끄집어낸 그는 “자신을 응원하고 송신도를 지지해온 많은 사람과 함께 받은 상”이라며 다시 한번 연대의 의지를 보였다.
한편 오키나와 평화운동과 관련해 일본에서 방송된 〈뉴스여자〉에서 일방적인 주장을 담아 신숙옥을 겨냥한 적이 있는데, 해당 방송의 여파로 신숙옥은 가족을 향한 협박과 스토킹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그는 안전을 위해 잠시 일본을 떠나 독일에 머물러야 했으며, 방송 제작사 DHC 텔레비전과의 법적 소송에서 승소해 명예훼손에 따른 550만 엔의 배상 판결을 받기도 했다.

〈호루몽〉에서 지목하듯 신숙옥의 투쟁은 그 본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외할머니 이백란과 어머니 케이코로 이어지는 3대 여성의 역사에서 사회적 차별과 배제의 역사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때문에 신숙옥 본인도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에게 이런 싸움은 자신답게 살아갈 권리를 지키고, 차별받는 이들이 더 이상 배제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사회운동 현장에서의 경험을 담아 다양한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아쉽게도 국내엔 모두 절판된 상태. 「여자의 인생은 마흔부터가 진짜다」, 「악인예찬」, 「자이니치在日, 당신은 어느 쪽이냐는 물음에 대하여」, 「화 내는 법」 등을 집필했다. “싸우지 않으면 아무도 내 권리를 찾아 주지 않으니까요”



댓글 (0)
댓글 작성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