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 17〉, 복제 인간 미키의 딜레마와 존재의 질문

영화 〈미키 17〉 속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미키 17〉 속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헤이, 미키. 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

크레바스에 빠진 한 남자가 친구의 차가운 농담을 듣는다. "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라는 물음에 그는 놀라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이는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에서 주인공 미키(로버트 패틴슨 분)가 자신의 운명에 덤덤히 대응하는 장면이다.

영화 속 미키는 위험한 임무와 실험에 투입되고 죽음을 반복하는 복제 인간, 즉 익스펜더블(소모품)이다. 그의 직업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숙명을 담고 있으며, 그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은 고통 없는 단번의 죽음뿐이다. 이러한 설정 속에서 친구 티모(스티븐 연 분)는 미키를 내려다보며 "잘∼죽고 내일 봐"라는 가벼운 작별 인사를 건넨다.

17일 한국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미키 17〉은 봉준호 감독 특유의 블랙코미디와 비극적 요소를 결합한 작품으로, 그의 첫 우주 배경 SF 장르 도전작이다. 약 1억1천800만달러로 추산되는 제작비 규모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그의 이전 연출작들 중 가장 큰 예산이 투입된 대작이다. 그러나 무거운 소재를 경쾌하게 풀어내는 봉 감독의 솜씨는 여전히 빛을 발한다.

봉준호 감독은 <설국열차>(2013)와 〈기생충〉(2019)에서 자본주의의 병폐와 계급 문제를 꾸준히 조명해온 바 있다. 그의 신작 〈미키 17〉은 이들 작품보다 훨씬 더 암울한 2054년의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권력자들은 첨단 기술을 활용해 대체 가능한 노동자인 '익스펜더블'을 무한히 생산한다. 심지어 같은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조차 익스펜더블들을 경시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주인공 미키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겪는 고통은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다.

영화 〈미키 17〉 속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미키 17〉 속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초반부는 미키가 익스펜더블로서 살아가게 된 배경과 그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는 티모와 함께 지구에서 마카롱 가게를 운영했으나 실패하고 사채업자의 압박에 시달리는 처지가 된다. 결국 그는 경제적 궁핍 속에서 목숨을 담보로 한 선택을 강요받는다. 전직 국회의원 마셜(마크 러팔로 분)이 주도하는 얼음 행성 '니플하임' 개척단에 합류하려 하지만, 별다른 기술이 없는 그에게 남은 선택지는 몸으로 모든 위험을 감당해야 하는 익스펜더블 직책뿐이다. 이에 따라 미키는 자신의 신체 정보와 기억을 스캔하여 죽으면 기계에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미키의 애처로운 상황은 현대 청년들의 현실을 반영하는 듯하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외주화된 위험 노동이 지속적으로 문제로 제기되어 온 만큼, 생존을 위해 위태로운 작업 현장으로 향하는 미키의 발걸음은 많은 관객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것이다.

영화는 복제 인간이라는 주제를 통해 현대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윤리적 딜레마를 조명한다. '미키 17'과 새롭게 등장한 '미키 18'은 자신들의 실존을 주장하며 서로 생존권을 두고 갈등한다. 이 세계관에서 한 번에 하나의 익스펜더블만 허용되기에, 두 미키 중 하나는 반드시 죽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두 미키가 동시에 존재하게 되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과거를 되돌아보게 되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고통 속에서 일하며 사랑했던 기억이 진짜 자신에게 속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반복된 삶 중 일부일 뿐인지를 묻는다. 봉 감독은 이러한 물음을 통해 단순한 공상과학적 상상이 아닌, 오늘날 우리의 현실로 이어지는 철학적 논쟁을 제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 〈미키 17〉 속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미키 17〉 속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또한 후반부에서는 인간이 다른 생명체에게 행사하는 권력과 이를 둘러싼 도덕적 문제들이 등장한다. 특히 크리퍼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스토리는 봉 감독의 이전 작품 〈옥자〉(2017)를 연상시키며, 생명체 박탈과 터전 침탈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우울한 스토리지만 봉 감독 특유의 유머 덕에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눈에 띄는 캐릭터는 마셜과 일파(토니 콜렛 분) 부부다. 쇼맨십에는 능하지만 결정권을 아내에게 의존하는 무능한 마셜과 음식 소스에 집착하는 기이한 일파의 모습은 우스꽝스럽지만 동시에 실제로 있을 법한 독재자 부부를 연상시킨다. 이들의 관계는 웃음 뒤에 미묘한 공포감을 남긴다.

마셜 역은 공개 당시부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을 받아왔다. 근엄한 표정으로 손가락질하는 그의 모습과 그를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군중은 트럼프의 이미지와 겹친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영화 〈미키 17〉 속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미키 17〉 속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주연 배우 로버트 패틴슨은 1인 2역으로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소심하게 운명에 순응하는 미키 17과 대담하게 시스템에 저항하는 미키 18을 완벽히 표현하며, 말투와 목소리만으로도 두 캐릭터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게 했다.

촬영감독 다리우스 콘지는 〈옥자〉, <퍼니 게임>(미카엘 하네케) 등에서 보여줬던 역동적인 화면 구성으로 영화에 생동감을 더했다. 또한 정재일 작곡가는 영화 〈기생충〉 이후 다시 한번 봉 감독과 호흡을 맞추며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음악으로 귀를 사로잡는다. 차갑고 황량한 분위기를 극대화하기 위해 디스토피아적 미장센을 활용한 미술 역시 볼거리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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