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대 씨네필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는 이른바 ‘메이저 감독’을 꼽으라면 〈인셉션〉 〈덩케르크〉의 크리스토퍼 놀란과 〈팬텀 스레드〉 〈리코리쉬 피자〉의 폴 토마스 앤더슨, 그리고 〈컨택트〉(2016), 〈블레이드 러너 2049〉(2017)를 비롯해 〈듄〉 시리즈를 연출한 캐나다 출신 감독 드니 빌뇌브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세계적으로 알린 첫 번째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그을린 사랑〉(원제: Incendies, 2010)을 통해 휴 잭맨, 제이크 질렌할 주연 〈프리즈너스〉(2013)로 할리우드에 입성할 수 있었다. 레바논을 배경으로 이슬람과 기독교의 종교 갈등, 그리고 그로 인한 가족의 비극적인 비밀 등을 담아낸 〈그을린 사랑〉은 드니 빌뇌브 특유의 어두운 세계관과 인간성 회복의 드라마를 펼쳐 보인다. 지난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고 이내 극장 개봉한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그을린 사랑〉이 4K 리마스터링된 버전으로 6월 25일 개봉했다. 영화 속 거대한 화염 장면을 다시 한번 스크린으로 볼 수 있는 기회다.

쌍둥이 남매 잔느(멜리사 디소르미)와 시몽(막심 고데트)은 어머니 나왈(루브나 아자발)의 마지막 유언을 듣고 충격에 빠진다. 바로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와 존재조차 몰랐던 형제를 찾아 어머니가 쓴 편지를 전하라는 것. 남매는 아버지와 형제를 찾기 위해 머나먼 어머니의 고향으로 떠나 그 과거를 쫓기 시작하고, 가족 안에 숨은 어두운 진실을 알게 된다. 그 진실이란 감히 상상하기도 감당하기도 힘든 것이었기에, 개봉 당시 〈그을린 사랑〉은 영화팬들 사이에서 ‘영화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결말의 작품’이라 소개되기도 했다. 그만큼 이 영화는 고통의 경험을 수반하는, 뒤틀린 역사와 붕괴된 가족의 이야기가 하나로 만나는 걸작이다.

〈그을린 사랑〉과 〈화염〉 사이, 와즈디 무아와드
국내에서는 영화제에 이어 수입사를 통한 극장 개봉을 거치며, 〈그을린 사랑〉이라는 제목을 갖게 됐지만 원래 〈화염〉(Incendies)이라는 연극이 원작이다. ‘Incendies’는 프랑스어 제목이고 영어 제목은 ‘Scorched’다. 국내 최초 공개였던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그을린〉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는데, 이후 극장 개봉 때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을린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 원작 희곡 「화염」 자체가 나왈의 화재, 어린 시절의 화재, 자나안에게 일어난 화재, 사르완에게 일어난 화재, 그렇게 4개의 챕터로 이뤄져 있다. 여기서 화염과 화재는 실제 일어난 화재이기도 하고, 인물의 내면과 세계관을 뒤흔든 중요한 사건을 화재라고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레바논 출신의 캐나다 극작가 와즈디 무아와드는 1975년부터 1990년까지 이어진 레바논 내전을 배경으로 종교 갈등으로 인한 증오와 분노, 그리고 보복과 보복의 악순환이 가져온 폭력의 대물림으로 그려냈다.

〈그을린 사랑〉은 와즈디 무아와드의 4부작(Tetralogy) 시리즈 중 두 번째 연극 작품이다. 와즈디 무아와드는 1968년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 태어나 7살 때 내전을 피해 파리로 이주했고, 1983년 프랑스 비자를 더 이상 연장할 수 없게 되자 또다시 캐나다 퀘벡으로 이주했다. 퀘벡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부상한 그는 2002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 훈장을 받았고, 2007년 캐나다 국립예술센터(NAC) 예술감독으로도 부임했다. 예술감독 수락 연설에서 그는 자신의 이력을 “한 번의 전쟁과 두 번의 추방, 그리고 죽음”이라 묘사했다. 1943년 프랑스 통치체제에서 독립한 이후 하루도 정세가 평온할 날 없었던 레바논의 기독교, 이슬람교 갈등과 끊이지 않는 주변국들과의 분쟁과 내전에 대한 얘기였다.
레바논 내전에 대하여
〈그을린 사랑〉은 1975년부터 1990년까지 지속된 레바논 내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67년 30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단 6일 만에 쫓아낸 이스라엘의 ‘6일 전쟁’은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때부터 20년 동안 레바논 남부에 자리 잡아 온 난민 캠프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몰려들도록 만들었다. 1970년 요르단 국왕이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추방을 결정하고, 베이루트에 PLO 본부가 설립되자 더 많은 난민들이 레바논으로 유입됐다.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전체 인구의 15%를 차지하게 되자, 레바논의 기독교 종파인 마론파와 이슬람 세력 간의 갈등은 극심해졌다. 그러던 중 1975년 4월 레바논의 극우 지도자 피에르 제마엘이 축성식에 참석한 교회 앞에서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추정되는 한 남자가 총을 난사해 4명이 사살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같은 날 이에 대한 보복으로 기독교 극우파 민병들이 팔레스타인들이 타고 있던 버스를 공격해 27명이 사망하고 19명이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화염’이라는 제목은 그런 보복이 반복되던 가운데, 1975년 베이루트 중심가에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타고 있던 버스를 기독교 무장단체가 무차별 총격하여 27명의 승객이 전원 사망했던 버스 테러 사건에서, 그 불타는 버스의 이미지에서 온 것이다. 그것은 주인공 나왈의 인생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는 가장 중요한 전환의 순간이자, 영화 〈그을린 사랑〉의 포스터 이미지이기도 하다. 그처럼 1990년 내전이 종식될 때까지 레바논 내에서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1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사망했고,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조국을 떠났다. 한편, 〈그을린 사랑〉이라는 제목은 국내에서 연극 그 자체에도 영향을 미쳤다.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이 후원하는 연극 ‘그을린 사랑’이 올림픽 공원 K아트홀에서 공연된 적 있다.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
여전사이자 ‘노래하는 여인’ 소하 베차라
〈그을린 사랑〉은 놀랍게도 실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주인공 나왈은 ‘소하 베차라’라는 실존 인물을 모델로 만들어진 것. 소하 베차라는 나왈처럼 1988년에 기독교 민병대 지도자 앙투안 라하드의 암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무려 10년 동안 지하 감옥에 투옥된 전사 같은 인물이다. 영화 속 버스 학살 사건은 나왈이 아들을 찾으려는 개인적 욕망을 초월해서, 맞부딪힌 현실에 대해 각성하고 운동가이자 혁명가로 변화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감옥에 있던 당시, 옆방의 포로가 고문을 받거나 자신이 고문을 받으러 갈 때 늘 노래를 불러 ‘노래하는 여인’이라는 별명이 있었는데, 와이디 무아와드 작가는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는 소하 베차라를 직접 만나 인터뷰해 「화염」에 녹여냈다. 당시 무슨 노래를 주로 불렀냐고 물어보니 ‘아바’(ABBA)의 대중적인 노래였다고 한다. 이를 들은 와이디 무아와드는 순간 울컥했다고 한다. “소하 베차라는 준비된 투사나 특정한 이념에 투신한 혁명가 이전에 그저 평범한 우리의 친구였다”는 것.

〈그을린 사랑〉은 연극 「화염」이 그런 것처럼, 사건이 벌어지는 구체적인 지역과 장소를 언급하지 않는다. 레바논이라는 특정 지역의 이야기가 아닌 전 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함이다. 드니 빌뇌브 감독이 원작에서 가장 공감했던 것도 바로 그 지점이었다. 그것은 전 세계에 만연한 혐오와 분노의 목소리를 끝내고 싶다는 마음이기도 했다. 와이디 무아와드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영원성’을 지닌 ‘그리스 비극’이었다. 비극 앞에 배경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레바논 현지에서의 촬영은 불가능했기에 실제로는 요르단에서 촬영했고, 영화에 등장하는 지명들은 모두 허구다. 실제 벌어진 사건들만 영화적으로 재구성한 것. 〈그을린 사랑〉이 묘사하는 비극의 대물림은 레바논이라는 특정한 영토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사는 곳, 구체적으로는 종교적 갈등과 폭력이 이어지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분노에 갇혀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물려받게 될지 모를 그 분노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는 감독의 말에 영화의 주제가 담겨 있다.

하지만 그 분노의 고리는 이미 깊이 박혀 있었다. 〈그을린 사랑〉 메이킹 영상에는 영화에서 나왈을 살려서 보내준 할머니 역을 맡은 배우의 인터뷰가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이 충격적이다. 영화에서는 난민과 사랑에 빠져 임신을 하게 된 나왈을 죽이려는 오빠들을 피해, 나왈이 달아나게끔 도와준 인자한 할머니였으나 현실의 그 배우는 “내 딸이 그런 짓을 하면 목을 졸라 죽여야죠. 도망치게 놔둘 수 없죠. 목을 졸라 죽이고 애도 죽여 버려야죠. 가족의 명예를 더럽혔잖아요”라고 말하는 것. 그처럼 난민에 대한 관용과 연민은 현실에서 일절 찾아볼 수 없었다. 드니 빌뇌브가 얘기하고, 또한 원작자 와이디 무아와드도 얘기했던 그 ‘물려받은 분노’의 고리를 어떡해야 할까.

사운드트랙의 감각적 사용,
라디오헤드의 ‘You and whose army’
연극이 영화로 옮겨지며 드니 빌뇌브의 감각적인 사운드트랙도 활용법도 눈에 띈다. 오프닝부터 들려오는 ‘You and whose army’는 라디오헤드가 권력자에 대한 비판과 환멸을 담아 노래했던 곡이다. 제목의 의미는 ‘너를 후원하는 군대라도 있냐? 무슨 빽을 믿고 그렇게 설쳐대냐?’라 해석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당시 영국 노동당 토니 블레어 정부에 대한 비판과 환멸을 담아냈는데,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는 한 인터뷰에서 “토니 블레어처럼 대중의 선택으로 권좌에 오른 사람이, 결국 자신을 뽑아준 사람들을 뻔뻔하게 배신하는 상황에 대한 것”이라 밝힌 바 있다. 머리가 깎이는 한 소년의 이미지에서 시작하는 이 곡은 ‘세계관’이라는 것이 채 자리 잡히기도 전에 총부터 들어야 하는 아이의 참담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오프닝에 곡 전체가 쓰였는데, 드니 빌뇌브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계속 들었던 것은 물론이고 촬영 현장에서도 헤드폰으로 내내 들었다고 한다.

〈그을린 사랑〉은 결국 반전영화다. 영화 속 끔찍한 사건이 얘기하는 것은 ‘전쟁에서 일어나지 못할 일은 없다’는 것. 아니, 그보다 더한 일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전쟁은 그야말로 인간성이 말살되는 시간이다. 그래서 영화 속 ‘1+1=1’ 장면은 실제 벌어진 일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려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고심이 묻어나는 순간이다. 주인공의 직업이 수학자라는 것도 중요하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철저히 수(數)와 공식에 따라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그에게, 전쟁과 세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인물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원작자 와이디 무아와드는 레바논에서 보낸 유년기에 대해 ‘햇볕이 따사로운 정원이 있는 아름다운 집’으로 기억했건만, 유독 부모님의 침묵을 견딜 수 없었다. 물론 영화 속 사건과 같은 비극을 겪은 것은 아니지만, ‘부모님의 침묵에 이름을 부여하기 위해’ 글을 썼다고 한다. 그 침묵은 영화에서 나왈의 동지이자 친구인 난민 여인 ‘사우다’를 통해 반영된다. 왜 사람들은 침묵으로 일관하는 걸까, 차라리 그들은 망각을 원한 것은 아닐까.

최근 〈그을린 사랑〉의 재개봉 소식과 맞물리는 비극적인 뉴스가 있었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무력 충돌로 인해, 팔레스타인의 국가 인정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었던 유엔 회의가 무기한 연기된 것이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계속되는 보복 폭격 속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대표단이 유엔 본부가 있는 미국 뉴욕까지 이동 자체를 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그을린 사랑〉을 레바논 내전이 아닌 인류의 보편적 상황이라고 본 드니 빌뇌브의 인식처럼 레바논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시리아를 거쳐 내전을 겪고 있는 아프리카의 수많은 나라들에 이르기까지, 이 비극적인 화염의 고리를 언제쯤 끊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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