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THE 자연인' 노영석 감독 “1인 매체의 시대, 영화로 맞장뜨다”

“제 스타일로 하면서 길을 찾아가야겠죠”

씨네플레이 이화정 객원기자


〈THE 자연인〉 노영석 감독 (사진제공=스톤워크)
〈THE 자연인〉 노영석 감독 (사진제공=스톤워크)

독립영화 팬들이라면 분명 궁금했을 거다. 〈THE 자연인〉은 노영석 감독이 〈낮술〉(2009)과 〈조난자들〉(2014) 이후 내놓은 11년 만의 신작이다. 조회수와 구독자에 매달려 귀신 콘텐츠를 찍기 위해 GPS도 터지지 않는 산골로 들어 간 인공(변재신)과 병재(이용훈)가 그곳에 사는 자연인(신운섭)을 만나 겪는 3박 4일 간의 무섭고 쫄리고 웃기고 황당한 체험을 통해 바라보는 현실 풍자 코믹 스릴러다. 재밌고도 무서운 이 영화와 꼭 닮은 건 바로 제작 방식이다. 각본, 연출, 프로듀서뿐만 아니라 촬영, 미술, 의상 담당에 컴퓨터그래픽, 디지털 색보정, 사운드믹싱까지 빼곡히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등장하는 모든 파트에는 ‘노영석’의 이름이 들어간다. 연기를 제외한 모든 파트를 감독 저 혼자 다 한다. 1인 매체의 속성으로 그렇게 완성된 영화!

다행히 세월이 무색하게도 노영석 감독의 크리에이티브한 힘은 그대로다. 무릇 영화는 이런 매체였다. 눈치 보지 않고, 괴상하며, 기괴하고 예측불가한 상황에 내 눈과 귀, 모든 감각을 의심하며 피식 웃게 만드는 힘. 길을 잃은 우리시대의 독립영화를 길을 찾은 매우 단수가 높은 영리한 영화다. 그러니 부디 125분간 쉴 새 없이 펼쳐지는 이 영화의 괴상한 재미에 부디 많은 관객이 ‘고립’되기를 바라는 바. 재작년 서울독립영화제 대상 수상 후 드디어 관객과의 만남을 앞둔 노영석 감독을 만났다.


〈THE 자연인〉
〈THE 자연인〉

〈나는 자연인이다〉와 귀신 영상 유튜브 콘텐츠를 버무린, 신종 영화의 출현인데요.(웃음)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왔나요.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뛰는데, 모니터에 〈나는 자연인이다〉(MBN 프로그램으로 자연에서 자급자족하는 일반인이 출연한다)가 나오더라고요. 제작비도 많이 안 들고, 효과도 좋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보다 보니, 말도 안 되는 장면들이 연출되는 걸 발견했어요. 예를 들면 나물이 나올 철이 아닌데, 마트에서 산 냉이를 심어놓고 그걸 ‘채집’하는 거예요. 그 장면을 보고 ‘저걸 과장하면 어떨까?’ 생각했죠. 의심스럽고 기괴한 느낌이 들 것 같았어요. 또 저희 누나가 귀신 찾는 유튜브를 자주 보는데, 장비를 쓰거나 귀신을 찾는 설정이 있더라고요. 그 두 요소를 합치면 정말 괴상하겠다 싶었어요.(웃음) 산속에서 만드는 거니까, 장소만 있으면 저예산으로 할 수 있겠다 싶었죠. 그래서 다급히 시나리오를 썼어요.

호러의 요소로 시작하지만 코믹한 지점으로 선회하는데요. 사실 이 영화의 진짜 공포는 엔딩 크레딧이었어요. 각본, 연출, 촬영뿐만 아니라 기술 파트까지, 연기를 제외한 모든 역할에 ‘노영석’ 크레딧이 들어가는 제작 방식인데요.

전작 〈조난자들〉을 만들고 시나리오만 쓰다 보니 자존감이 내려가더라고요. 그래서 안 되겠다, 혼자 해보자. 성취감도 있을 것 같고. 그래서 검색해봤어요. 장편영화를 혼자 만든 사람이 있는지. 있더라고요.(웃음) 배용균 감독이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을 각본, 연출, 촬영, 조명, 편집을 혼자 다 해서 만들었어요. 누군가는 했구나, 그렇다면 나는 더 해보고 싶었어요. 목표의식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도전이었죠.

〈THE 자연인〉
〈THE 자연인〉

1인 N역할은 제작 여건이 풍족하지 않아서 한 선택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 영화가 유튜버, 1인 미디어 등의 속성을 비판하는 것과도 연결되는 제작 방식 같았어요.

그렇죠. 제 안에서 ‘내가 다 해보겠다’는 다짐도 있었어요. 영화 내용과도 밀접한 제작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솔직히 아침마다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거지’ 하는 ‘현타’가 왔어요.(웃음) ‘이 방식으로 완성은 될까?’ 하는 생각도 컸었죠. 다른 건 몰라도 녹음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녹음도 혼자 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시나리오에 캐릭터에게 마이크를 다는 설정을 넣었어요. 실제로 그걸로 많이 녹음했죠. 붐 마이크도 개조해서 써봤는데 효과가 없어서 못 썼고요. 처음부터 녹음은 아쉬울 거라고 예상했어요. 후시라도 해야겠다 했죠.

영화를 본격적으로 짚어 볼게요. GPS도 터지지 않은 산골로 가서 일종의 고립을 경험하는 데요. 그런 점에서 〈낮술〉과 〈조난자들〉과의의 연결성이 보였는데요. 항상 어딘가로 떠나 한정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낮술〉도 다른 시나리오가 안 돼서 어떻게든 찍어야겠다 생각하고 갔다가, 실제 경험이 반영된 거거든요. 〈조난자들〉도 초반부는 시나리오 쓰러 갔던 제 경험에서 나왔어요. 이번 영화도 다른 거 하다 ‘생존 신고’ 목적으로 시작했는데, 제 안에 공간이나 타인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이상한 사람을 만나면 과도하게 경계하거나 상상을 많이 하고요. 처음엔 그로테스크한 공포물로 썼다가, 투자가 안되면서 시간이 지났고 지금의 코믹 버전으로 바꿨죠.

〈THE 자연인〉
〈THE 자연인〉

그런 제약이 결과적으로는 갖춰진 제작 환경에서는 나올 수 없는 장면들이 허용될 수 있었을 것 같은데요. 아니었다면 코로 피리를 부는 장면이 빠질 뻔했어요. 그리고 자연인이 외부인에게 대접하는 ‘소금잼’같은 것도 중요한 소품인데요. 원재료를 몰라서 궁금하고 공포스러운 음식인데요.

사실 지금 버전도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어떤 제작사에 보여줬더니 리포트를 주더라고요. 평점이 정말 낮았어요. ‘코로 휘파람을 분다’는 설정이 말이 안 된다고 하더군요. 오히려 그 평가를 받고 ‘혼자 하면 되겠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그래서 돈이 많이 드는 장면을 빼고, 혼자 감당할 수 있는 것만 남겼죠. 그리고 소금잼은 자연인이라고 하면서 말도 안 되는 걸 먹는 설정이었죠. 카야잼에 굵은소금을 갈아 넣었어요. 각질처럼 보이게 후추도 조금 넣었고요. 다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

영화에서 장르적 반전을 만들어주는 캐릭터는 소복을 입고 등장한 자연인의 후배 ‘란희’인데, 등장부터 압도적이죠. 놀랍게도 〈휴가〉 〈3학년 2학기〉를 연출한 이란희 감독님이신데요. 〈낮술〉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 바 있죠.

장소가 한정적이라 답답할 수 있어, 이야기 속에 또 이야기를 넣고 싶었어요. 호랑이 얘기도 넣고,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키는 거죠. 시나리오 쓸 때 제일 신났던 때가 란희를 떠올렸을 때였어요. 코로 라면 먹는 장면이 떠올라서 혼자 낄낄거렸죠. 바로 란희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드렸어요. 처음 만난 게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한겨레문화센터에서였는데, 그때 란희 누나가 머리를 길게 하고 치렁하게 하고 앉아 계시는 걸 보고 ‘여기 잘못 왔다’ 싶었죠. 알고 보니 너무 좋은 분이셨어요. 그 인연으로 〈낮술〉과 〈조난자들〉에도 나왔고요.

〈THE 자연인〉
〈THE 자연인〉

디지털과 SNS의 발달로 유튜브나 예능 같은 영상물을 손쉽게 찍을 수 있는 시대인데요. 한편으로 지금은 영화가 호응을 얻기 힘든 시기이기도 한데요. 〈낮술〉 이후 독립영화 만들기의 변화도 체감하셨을 것 같아요. 차기작도 궁금합니다.

2023년에 상을 받은 작품인데 개봉까지 시간이 걸렸어요. 그 후에도 저는 게임을 만들고 있었어요. 돈을 벌어야 해서요. 프로그래밍을 배워서 2년 동안 만든 게임이 작년 초에 나왔는데, 망했습니다. 잘 안됐어요. 그 2년의 시간이 저에게 나중에 어떤 도움이 될지 궁금해요. 결국 타이밍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은 〈조난자들〉를 만들던 즈음 썼던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데, 86년 초등학교 5학년생들이 여행 가는 이야기예요. 시대물이기도 하고, 고립되는 내용이라 돈이 많이 들죠. 정말 찍고 싶은 작품이라 지금보다 제가 더 잘 돼야 찍을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전 제가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경험을 체험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일반적인 코미디 흐름은 못 따라가겠더라고요. 제 스타일로 하면서 길을 찾아가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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