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컬트 AI 영화가 영광의 대상을 차지했다. ‘2025 KT AI P.A.N(Playground, AI, Now)_Next’ 영화제에서 ‘보이저 1호’의 단편 〈악탈〉이 최고상인 종합대상을 받은 것.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조선을 말살하려는 일본군과 함께 악귀가 들어온다. 그로 인해 부모와 시력을 잃은 소년이 조선의 신에게 능력을 받아 ‘악탈굿’으로 악귀를 봉인한다는 내용의 오컬트 판타지다. ‘AI 블록버스터’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다채로운 구성과 리듬, 그리고 스펙터클한 액션이 돋보이는 〈악탈〉은 개성 넘치는 수많은 후보작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작품이었다. ‘보이저 1호’는 단편 〈노인, 간병인 그리고 K〉(2010)으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받고, 〈끝까지 달린다〉(2022)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아시아 판타스틱영화 제작네트워크 SBA상 등 다수의 상을 받은 바 있는 김원진 감독의 1인 회사 이름이다. 향후 〈악탈〉이라는 IP를 더 확장하고, 실사와 AI의 경계 없이 다양한 작업을 펼치고 싶다는 그를 만났다. 한편, 올해의 수상작들은 KT 지니 TV 유튜브 채널 ‘지니어스 컷’과 지니 TV VOD로 감상할 수 있다.
올해 KT AI 영상 공모전에 어떻게 지원하게 됐나.
그동안 장편 상업영화를 준비하다가 작년 말 상황이 좋지 않아 일단 보류한 상태였다. 그와 별개로 AI 영화에 대한 관심이 커서 계속 공부하던 중 KT AI 영상 공모전을 접하게 됐다. 무언가를 쉬지 않고 하려면 동기부여가 중요하니까 ‘한번 출품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대상까지 받아 정말 기뻤다. 그래서 수상소감 자리에서 “KT 인터넷과 스마트폰 결합상품의 12년 우수 고객입니다”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웃음)
여전히 AI 영상으로 작업한 사람의 얼굴과 표정을 대면하는게 어색한데, ‘탈’을 쓴 주인공의 활약이라는 설정이 주효했던 것 같다. 어떻게 떠올리게 된 아이디어였나.
먼저 그런 의도가 있었던 건 맞다. 게다가 한 명의 인물이라도 탈을 통해 수십 개의 얼굴로 변할 수 있다. 어려서 학교 과제로 탈 만드는 걸 좋아했다. 특히 무서운 탈을 만든 날에는 그게 밤새 꿈에 나타날 정도였다. 〈악탈〉에서는 좀 색다른 이미지의 탈을 만들고 싶었다. 마침 〈파묘〉(2024)가 천만 영화가 되는 등 최근 오컬트 장르에 대한 관심도 커졌고, 우리 고유의 탈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말기로 접어들면서 일본은 우리 문화를 말살하려는 정책을 강력하게 펼쳤는데 그 중에는 우리 민간신앙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조선 신궁을 세운 이유도 그것이었다. 당시 서울 남산에 세워진 일본 민속신앙 신사로, 일본 건국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와 메이지 천황을 제신으로 모신 곳이었다. 그렇게 작업하던 중 2024년 12월 3일 계엄령이 선포됐는데, 뭔가 우려한 모든 것들이 맞아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소름 끼쳤다.

결말에 이르러 마치 후속편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맞다. 그래서 후속편에서는 바로 그 2024년 12월 3일을 배경으로 현대에서 탈이 깨어나면서 진행되는 이야기를 구상했다. 준비가 다 되어있는 상태고 투자만 이뤄지면 된다.(웃음)

〈악탈〉을 작업하며 힘들었던 장면이 있다면.
AI 영상이 여전히 안고 있는 단점을 상쇄하기 위해 탈을 사용하고, 시선을 여러 곳으로 분산시키기 위해 캐릭터들이 대규모로 등장하는 장면을 구상했다. 그러면서 작업한 이미지가 작품이 얘기하고자 하는 정서에 잘 맞지 않으면 될 때까지 계속 출력했다. 무엇보다 액션 장르라는 점에서 일본 요괴 ‘오니’와의 대결을 어떻게 풀지가 관건이었다. 주인공이 많아도 두세 명 정도일 텐데 이 대결 장면에서는 힘을 합치는 동료들까지 해서 대규모로 등장시키고 공간을 다채롭게 활용했다. 스펙터클로 승부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보니 한편으로 일관성이 부족하지 않은가, 하는 반성이 들기도 하는데 ‘정서’나 ‘무드’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액션 장르를 넘어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것 같은 울림이 있다. 〈악탈〉의 후속편도 궁금하지만, 고유의 IP로서 뮤지컬 등 다른 매체로의 확장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처음부터 그런 의도를 가졌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 얘기를 해주신 분들이 꽤 있다. 아무래도 탈이나 의상이 화려하고 공간 이동도 많아서 볼거리가 많다는 점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 음악을 베이스로 깔면서 영상을 붙이는 편인데, 그런 방식으로 장면을 전환하고 서사를 전진시켜 나간 점도 그렇게 느끼도록 했을 것이다. 배경도 쨍쨍한 낮보다는 어둠과 새벽 시간대의 사극이어서 무대 미술과 잘 맞을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창작자로서 그런 얘기를 들으면 큰 힘이 된다. 동시에 투자자들의 연락도 기다리게 된다.(웃음)

‘보이저1호’라는 회사명은 어떻게 정한 건가.
NASA가 1977년 외계행성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발사한 보이저1호는 무려 47년 동안 외계 행성 탐사 작업을 하고 있는 ‘인류 최장수 우주 탐사선’이다. 그러다 통신이 두절되며 교신이 끊겼다고 생각했는데, 작년 말 다시 지구와 교신할 수 있게 되어 놀라움을 안겨줬다. 돌이켜보면, 내가 극영화를 만들건, AI 영화를 만들건, 그리고 그 작품이 극장에서 상영되건, 컴퓨터나 스마트폰 화면으로 재생되건, 결국 관객과 만나는 일이다. 보이저1호는 내 작품을 통해 그런 미지의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지은 이름이다.

감독과 각본 크레딧은 본명인 ‘김원진’이고 촬영, 개퍼, 아트디렉터 크레딧으로는 ‘클링, 미드저니, 런웨이, Veo3’까지 4개의 AI 생성 툴을 올렸다. 원래 극영화 작업을 하던 사람으로서 어땠는지 궁금하다.
평소 내가 AI 영화를 만든다는 계획도 없었고, AI 영화의 미래라는 것도 실사영화의 보조나 징검다리 정도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 공모전에 출품하게 된 것도 일종의 미래를 위한 ‘피칭’ 정도로 생각했다. 게다가 이런 과정을 통해 얻은 영상을 과연 ‘내 작품’이라고 해도 되나 하는 의문까지 들었다. 그런데 힘들게 작업하고 제너레이트(Generate) 버튼을 눌러 영상을 생성하는 과정이, 영화 촬영 현장에서 카메라를 돌리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완성된 작품의 후속편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보니 AI 영화만의 서사나 고유성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실사 영화도 어렵고 AI 영화도 어렵다. 앞으로 그런 ‘혼종’ 감독으로 살아가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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