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우식이 하면 그럴듯하다. 눈앞에 숫자가 보인다는 설정도, 엄마의 밥을 먹을 때마다 숫자가 하나씩 줄어든다는 설정도, 엄마의 집밥을 피하기 위해 고향을 떠난다는 다소 황당한 설정도, 최우식의 얼굴을 경유하면 장르가 판타지에서 현실밀착형 휴먼 드라마로 바뀐다.
오는 2월 11일 개봉하는 〈넘버원〉은 어느 날부터 엄마의 음식을 먹을 때마다 하나씩 줄어드는 숫자가 보이기 시작한 하민(최우식)이, 그 숫자가 0이 되면 엄마 은실(장혜진)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엄마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넘버원〉은 〈거인〉(2014)의 김태용 감독과 배우 최우식이 약 12년 만에 재회한 작품이다. 〈거인〉에서부터 〈기생충〉, 〈그 해 우리는〉과 〈살인자ㅇ난감〉까지, 현실에 발붙이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닮은 이른바 ‘최우식식 청년’의 얼굴이 하나의 카테고리로 자리 잡은 지금, 최우식은 〈넘버원〉의 하민으로 ‘최우식식 청년’의 얼굴을 다시 한번 변주했다. 지난 3일 오후, 배우 최우식은 종로구 모처에서 씨네플레이를 만나 개봉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날 최우식이 전한 〈넘버원〉의 비하인드부터 배우로서의 진솔한 이야기까지, 아래 인터뷰의 전문을 옮긴다.

시사회에서 〈넘버원〉을 보고 눈물을 흘린 분들이 많았어요. 최우식 배우 역시 〈넘버원〉을 보고 눈물을 흘리셨나요.
제가 연기한 영화를 보고 우는 게 조금 부끄럽긴 한데, 맨 마지막에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 조금 눈이 붉어졌어요. 엔딩 크레딧에 저희 어머니 사진이 삽입됐거든요. 그게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제가 인생 살면서 엄마와 함께 스크린에 걸리는 일은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은데,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아요.
〈넘버원〉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눈물이 났다고 하셨어요. 어떤 부분에서 눈물을 많이 흘렸나요. 가장 마음을 건드렸던 대사나 장면이 있다면요.
하민이가 맨 마지막에 엄마 은실에게 하는 말을 보고 눈물이 나왔어요. 사실 저는 제가 대본을 읽으면서 정말 슬프다고 생각해야 감정신을 연기할 수 있는데, 〈넘버원〉 대본을 읽으면서 정말 슬픈 지점들이 많아서 연기할 때 몰입이 됐어요.
〈거인〉으로 함께 호흡을 맞춘 김태용 감독과 재회하셨어요. 〈넘버원〉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는 어떤 생각이셨나요.
감독님이 저에게 주고 싶은 시나리오가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사실은 저는 처음에는 부정적인 마음이 컸어요. 왜냐하면, 〈거인〉으로 저희가 좋은 반응을 받았는데, 괜히 두 번 만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때의 만남을 예쁘게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었어요. 〈거인〉 때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고. 또 〈넘버원〉은 감정 표현을 정말 잘해야 되는데,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부담감도 있었고요. 또 가장 컸던 건 부산 사투리였어요. 그게 저는 걱정이 많이 됐어요. 감정 연기를 하면서 사투리를 해야 하니까요. 사실 제가 여태까지의 제 필모그래피를 보면, 저는 항상 안전하고 쉬운 길을 많이 택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잘할 수 있는 캐릭터, 저에게 잘 어울리는 캐릭터를 좀 많이 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넘버원〉으로 도전을 해보고 싶었고, 그 도전을 김태용 감독님과 함께한다면 옆에서 많이 만져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결심하게 됐어요.
어떤 면에서 〈넘버원〉이 최우식 배우에게 큰 도전이라고 생각했나요?
사투리는 장치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엄청 큰 거예요. 그냥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이 친구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디에서 자라왔고, 그런 것들이 다 말에 녹아 있는데, 〈넘버원〉에서는 거기에 격한 감정까지 들어가니까요. 그래서 저는 아직 그 정도까지는 못 할 것 같아서 많이 무서웠어요.

그렇다면 사투리 연기를 실제로 해보니까 어떠셨나요.
너무 힘들었어요. 정말 솔직하게 얘기해 볼게요. 어느 정도는 포기하고 들어갔어요. 왜냐하면 사투리는 너무나 큰 영역이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완벽하게 해도 사람들이 저는 네이티브가 아니라는 것을 알 것 같았어요. 제일 중요한 건 감정이고, 제가 사투리만 집중하다 보면 감정 연기를 못할 것 같아, 두 마리의 토끼를 다 놓칠까 봐서요. 그래서 정말 중요한 감정신에서는 하고 싶은 대로 했어요. 사실 사투리가 어색했다는 평을 들을 준비는 돼 있어요. 지금도 그런 얘기가 나오고 있을 거고. 그런데, 감정이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은 정말 문제가 있는 거니까, 감정에 더 신경을 썼어요. 그런데 다행인 건, 현장에 감독님, 장혜진 선배님,(두 사람 모두 부산 출신이다) 그리고 사투리 선생님이 계셨어요. 사실 저희 어머님도 경상도 분이신데, 사투리를 쓰시지는 않아서 초반에 부담감이 컸어요. 제가 원래 작품을 준비할 때는 현장에서의 자연스러움을 더 중시해서, 대사를 많이 고치기도 하고, 저의 입에 맞게끔 바꾸기도 하는데요. 이번에는 사투리 연기를 해야 하니까 그렇게 못 하겠는 거예요. 그래서 사투리 선생님에게서 추임새를 많이 배워서, 부족한 부분들을 채우려고 노력했어요.
예를 들면 어떤 추임새인가요?
대사가 아닌 모든 추임새는 즉흥에서 했는데요. 선생님이 그 추임새는 그때 사용하는 게 아니다, 그건 괜찮을 것 같다는 식으로 말씀해주셨어요. 하민이가 ‘압’이라는 말을 계속하는데, 사실 그 ‘압’도 원래는 그렇게 쓰지 않을 때가 더 많대요. 그런데 감독님은 그 ‘압’을 계속 넣고 싶어 하셨어요. 알고 보니까, 동네마다 약간씩 추임새를 쓰는 방법이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더 제가 긴장을 풀 수 있었어요.
하민이가 줄곧 하는 ‘압’도 사투리인 줄 몰랐네요.
유튜브에 치면 나오더라고요. 실제로 쓴대요. 제 부산 친구들에게 물어보니까, 쓰는 동네가 있더라고요.

〈거인〉에 이어서 김태용 감독과 재회했어요. 약 12년이 흘렀는데요. 시간이 지나 만난 김태용 감독은 어떻게 바뀌었고, 최우식 배우 본인은 어떻게 바뀌었나요.
〈거인〉 때 감독님은 스물일곱, 저는 스물넷이었어요. 그리고 경험도 많이 없었고요. 15회차인가, 20회차를 정말 짧은 시간에 정말 힘들게 촬영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즐거웠거든요. 이번에도 그래서 기대하고 들어갔어요. 감독님은 항상 누구보다도 저를 더 잘 알고 싶어 하시고, 또 실제로 잘 알기도 하고. 연기적으로나, 현장에서 제가 도움이 필요할 때 시원하게 긁어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제가 기대했던 것과 똑같은 모습도 있었고요. 확실히 달랐던 지점은 나이를 10년 정도 더 먹고 나니 서로 경험치가 쌓여 있었어요. 서로 확실히 성장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신기했던 건, 모든 배우들이 평소에 하는 행동들을 제가 그냥 했는데 감독님이 봤을 때는 엄청 성장한 걸로 보였나 봐요. ‘너 다 컸구나’, ‘배우구나’ 그런 말을 하셨는데, 사실 제가 딱히 뭘 한 건 아니고, 대본에다가 뭘 받아 적는 행동을 했는데 그걸 가지고 그러시더라고요.(웃음) 그래서 그걸 들으면서 〈거인〉 때는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거인〉 때는 정말 세상에 찌들지도 않았고 정말 순수한 마음이 있었고, 정말 날계란 같은 두 명이 만났었어요. 서로 진정성 있게, 싸우고 싶으면 싸우고, 얘기하고 싶으면 얘기하고. 그러다 보니 더 서로 진심으로 알게 된 것 같고, 친해지게 됐어요. 그래서 요즘 서로의 사회에 찌든 모습들을 볼 때면 웃겨요.
최우식 배우가 김태용 감독의 말투를 잘 따라 했다고 들었어요. 혹시 하민이를 연기할 때, 현장에서 감독의 디테일을 참고해 하민을 만들었나요?
사실 감독님의 말투는 엄마 은실의 말투에 가까워요. 장혜진 선배님과 감독님이 같은 동네에서 자라셔서, 둘이 얘기할 때 사투리 디테일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사투리 선생님 역시 선생님만의 디테일이 또 있었고요. 그런데 이제는 감독님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아요. 감독님을 사람 대 사람으로 잘 알다 보니까, 감독님이 어떤 유머 코드를 좋아하는지, 어떤 대사를 어떻게 치는 걸 좋아하는지를 알겠더라고요. 그리고 다른 현장에서는 못 물어볼 것도 감독님에게는 쉽게 얘기할 수 있고. 그런 것들이 연기할 때 도움이 됐어요. 그리고 감독님이 자꾸 누구보다 저를 잘 안다고 얘기를 하고 다녀서, 그렇게 얘기하지 말라고 그랬는데.(웃음) 사실 맞는 것 같아요.
〈기생충〉의 장혜진 배우와도 재회하셨어요. 실제로 장혜진 배우의 아들이 최우식 배우를 닮았다고 들었는데요. 실제로 보신 적이 있나요. 그리고 장혜진 배우와의 호흡에 대해 말해주신다면요.
〈기생충〉 때부터 닮았다는 말을 계속하셨는데, 정말 닮았어요. 그리고 실제로 저희 어머님과 장혜진 선배님의 목소리 톤이 똑같으세요. 그래서 연기할 때 더욱 몰입할 수 있었어요. 〈기생충〉은 1대1이라기보다는 앙상블이 주였는데, 이번에는 단둘이 맛있게 감정과 대사를 오고 가다 보니 서로 더 많이 얘기를 나누고 친해지게 됐어요. 제가 인복이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면 항상 좋을 수만은 없는데, 이번에는 삼박자가 다 맞았어요. 감독님과 장혜진 선배님은 원래부터 친했고, 또 그 사이에 (공)승연이가 새로 들어오자마자 너무 잘 녹았고. 그래서 현장에서는 깔깔거리며 재밌게 찍었어요.
하민은 아이러니한 운명에 처했지만, 특유의 재치 있는 성격이 매력적인 인물이에요. 하민이의 특징, 연기 디테일을 어떻게 잡아가셨나요.
하민이의 연기 디테일로 잡은 건, ‘너무 어둡게 보이지 말자’라는 게 가장 컸어요. 어색한 상황을 능글능글하게 말로 풀어내려고 하는 게 하민이의 특징이에요. 제가 연기를 어떻게 하건 감독님이 옆에서 디테일을 잡아주니까, 현장에서 잘할 수 있었어요.
개인적으로는 김영민 배우와의 병원 장면이 재밌었는데요. 심각한 상황임에도, 유머가 나타나잖아요. 그 장면은 애드리브였나요, 아니면 대본에 있었나요.
네. 대본에 있었어요. 사실 그래서 제가 이 대본을 더욱 좋아했던 것 같아요. 심각한 장면을 말장난, 재미있는 행동으로 푸니까요.

말씀하신대로 〈넘버원〉의 하민은 심각한 상황을 재치 있게 풀어내는데요. 그러다가 하민이는 갑자기 진지해지기도 해요.
영화에 판타지적 요소가 많은데, 하민에게는 눈앞에 숫자가 보인다는 사실이 트라우마로 남아있어요. 그래서 여자친구가 자신의 비밀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장면에서는 정말 진지하게 연기하려고 했어요. 그래야만 이 스토리가 납득되니까요. 〈넘버원〉 예고 댓글에는 그런 게 되게 많았어요. 왜 엄마에게 밥을 안 해주고 자꾸 먹으려고만 하냐. 그런데 영화니까요. 엄마에게 밥을 먹이면 엄마가 영생도 할 수 있고 한데.(웃음) 그런데 〈넘버원〉의 인물들은 하민의 상황이 정말 현실이라고 느끼고 살고 있는 친구들이라고 납득시키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습니다.
심각한 상황을 그리는 영화다 보니, 폭발적인 감정 연기가 필요한 장면들이 있었어요. 감정 연기는 어떻게 준비했나요.
사실 저는 감정 연기에 대한 징크스가 있어요. 감정 연기를 정말 싫어하고, 겁이 많이 나고, 괜히 슬픈 것 찍었다가 내가 거기에 빠져서 불행해지고 우울해질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정말 많이 피했는데, 정말 이 영화의 모든 감정 신은 제가 정말 받기만 했어요. (공)승연이와의 신도, 엄마(장혜진)와의 신도, 두 분이 저를 다 끌고 가 주시니 감정은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원래는 중요한 감정 연기 전날에 잠도 못 자고, 새벽 내내 그걸 어떻게 해야 하나, 저렇게 해야 하나 그런 고민들에 컨디션이 좋지 못했을 텐데, 〈넘버원〉 촬영 초중반 이후로는 정말 연기를 받기만 해도 술술 나오겠다 싶었어요. 정말 술술술술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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