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민트〉 배우 조인성 인터뷰는 1부에서 이어집니다.

〈모가디슈〉 그리고 〈무빙〉에 이어 세 번째로 국정원 요원 역할을 맡으셨어요. 이전의 국정원 요원 역할과, 이번 조 과장의 차별점은 무엇이었나요.
국정원이라는 건 CIA처럼 신비 속에 묻혀 있는 조직이잖아요. 무지에서부터 신비감이 나오고, 환상이 있는 직업이고요. 또 한편으로는 선입견도 있고요. 이번 〈휴민트〉에서의 조 과장은 〈무빙〉과는 다르게 현실적이죠. 물론 이 영화에서 공작 활동 등이 세세하게 나오지는 않아요. 최근에 〈휴민트〉를 찍기 위해 국정원에서 총기 훈련을 받을 때, 농담으로 국정원 직원분한테 “〈무빙〉 김두식 같은 블랙 요원은 있습니까?” 여쭤봤더니 “국가 비밀이라 말씀드릴 수 없다”고 하셔서.(웃음) 그런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하여튼 국정원 요원을 직장인처럼 보여드리려고 노력했고, 말씀드렸다시피 휴민트에게 다정하게 접근하려고 노력했고요.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여백의 미를 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 느끼는 건, 그런 여백이 있어야 관객들이 자기의 감정을 수용할 수 있겠다는 거예요. 내가 무엇을 뚜렷하게 보여주면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싶어서, 힘을 빼고 지켜보는 연기를 하려고 노력했어요. 또 제가 표현하려고 했던 건, 조 과장의 첫 시퀀스에서 드러나는 직장인의 모습이에요. 무슨 일을 하든 아침에 뻑뻑하게 피곤하게 일어나서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장비를 챙기는 느낌이라고 생각했고, 물먹을 때도 전날 갈증이 심하게 느껴지는 듯한 직장인의 모습. 제가 촬영장에 나가기 전에 일어나서 너무 피곤함을 느끼면서 ‘오늘은 나가기 싫다, 오늘은 어떤 하루가 벌어질까’라는 마음으로 현장을 나갈 때도 있는 것처럼, 그렇게 조 과장을 국정원 요원이기에 앞서 직장인이라는 마음으로 접근했던 것도 있어요.

조 과장의 액션은 초반부, 그리고 후반부에 집중돼 있습니다. 초반부와 후반부 액션의 색채는 확연히 다른데요. 각 액션 시퀀스를 어떻게 다르게 접근하셨나요.
초반부는 조 과장의 감정이 많이 보이는 액션이라면, 후반부에는 서늘해져요. 어떻게 보면 조 과장의 변화를 보여주는 과정이기도 하죠. 휴민트를 잃고, 후반부에서는 감정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힘을 뺀 채로 임하죠. 액션 장면에서는 휴민트를 잃은 상처를 휴민트로 극복하려 하는 조 과장의 캐릭터도 엿볼 수 있거든요. 따라서 후반부 액션은 초반보다 차분하게 진행됐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보실지는 모르겠네요.
〈휴민트〉 속 조 과장은 관찰자와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조 과장은 박건과 채선화의 관계성을 멀리서 지켜보는 제3자의 입장이기도 하고요. 기자간담회에서 말하셨다시피, 튀기보다는 절제하는 인물이라 더욱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박건과 채선화의 명분은 정확해요. 그런데 조 과장은 그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게 저에게는 굉장한 숙제였어요. 그래서 저는 조 과장에게 관객들이 마치 자신의 감정이 투영된 듯한 느낌을 줘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또한 〈휴민트〉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클로즈업 샷이 굉장히 많다는 점인데요. 조인성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그동안 배역의 생각과 감정을 이렇게나 많은 클로즈업 샷으로 쌓아간 작품은 없었던 것 같아요. 고민스러운 지점이 있었나요.
맞아요. 클로즈업이 많으면 감정이 노출되기가 되게 쉽거든요. 클로즈업이 굉장히 무서운 샷이거든요. 절대적인 각도 등을 다 계산해서 카메라 앵글이 들어오니까, 클로즈업 샷에서는 자신에게 도취될 때가 많아요. 그래서 오히려 아무것도 안 하려고 했어요. 그냥 ‘바라본다’ 그 자체로, ‘내가 지금 힘을 주고 있나, 눈에 힘을 빼고 있나, 나한테 도취되고 있나’ 등의 생각으로 저를 검열하려고 했어요.

말씀을 들어보면, 몇십 년 동안 영화를 하시면서 연기를 대하는 태도가 변화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연기관이 변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주인공을 하다 보니까 제가 너무 많이 나오는 거예요. 최근의 〈밀수〉나 〈무빙〉은 제가 짧게 나오죠. 그런데 〈더 킹〉에서는 제가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다 나오는데, 그때도 힘을 뺀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더라고요. 〈그 겨울, 바람이 분다〉와 〈괜찮아, 사랑이야〉, 〈디어 마이 프렌즈〉의 노희경 작가님이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어요. “이미 글이 다 너를 따라가고 있다.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겹겹이 벽돌 쌓듯이 구축을 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버리는 것에 집중을 하는 게 좋다”라고요. 예를 들면, 대사가 이만큼 있다면, 저는 앞에서부터 힘을 주고 대사를 쳐야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노 작가님은 “이거 다 버리는 대사야. 다 버리고 마지막에 내가 이 한 줄 쓰려고 깔아 놓은 건데, 넌 거기서부터 힘을 주니까 과잉이 되는 거다”라고 하셨어요. 저는 그때 어렸으니까, 대사가 좋으니까, 다 표현해야 되는 줄 알았어요. 근데 다 버리는 거래요. 노 작가님은 “마지막 대사 쓰기 위해서 내가 앞 줄을 다 써놓은 것이기 때문에 그냥 버려라. 방점만 찍어주면 된다”라고 하셨어요. 물론 그게 노 작가님의 스타일일 수도 있어요. 그것이 반드시 옳다는 게 아니라. 지금의 저는 버리는 것에 가치를 두고 있는 것뿐이고요. 그래서 점점 ‘뭘 하지 말아야겠다’는 쪽으로 가게 됐죠. 안 그래도 (제가) 진하게 생겼잖아요. 거기다 뭘 하려고 하면 정말 부담스럽고.(웃음) 특히 최근에 이창동 감독님과 작품 하면서 ‘내가 이런 방향으로 가는 게 맞구나’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요. 그래서 연기를 덜 하는 것, 마음은 가지고 있되 굳이 표현하지 않으려는, 절제하는 연기를 배우고 있어요.

이전 류승완 감독님 작품에 출연했을 때와 비교했을 때, 이번 작품에서는 류승완 감독이 조인성 배우를 쓰는 방식, 쓰임새가 변화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밀수〉 때는 짧은 분량이지만 그 신에서만큼은 주인공으로 나오는 장면을 연기하셨다면, 여기서는 관찰자처럼 박건과 최선아의 사랑을 바라보는 인물을 연기하셨는데요. 왜 쓰임새가 바뀌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주인공은 가장 믿음이 가는 배우가 포진이 되어 있는 게 감독님이 편해요. 〈호프〉의 (황)정민이 형이 그랬듯이, 안전하게 극을 받쳐주는 존재는 소위 말하면 음식에서 베이스 같은 건데, 이 베이스가 없으면 양념을 아무리 때려 부어도 안 되는 거거든요. 그런 면에서 류승완 감독님이 이번에는 저를 베이스로 놓고, 다른 캐릭터를 운영하면서 양념을 잘 쳐서 맛있는 음식을 낸 게 아닌가 싶어요. 베이스의 중요성이 덜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공기가 없어지면 그 중요성을 나중에 알듯이, 베이스는 공기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있으면 잘 몰라요. 항상 숨을 쉬고 있으니까. 그런데 공기가 떨어지면 원동력도 사라지는 거예요. 안정감은 잘 눈에 띄지 않죠. 그런데 제가 이제 그런 ‘베이스’와 같은 쓰임새를 찾기 위해 이 작품을 하게 됐죠.
실제로 해보니까 한 걸음 물러나서 지켜보는 관찰자와 같은 역할, 베이스와 같은 역할이 이전에 비해 더 어려우셨나요?
더 어렵고, 더 많은 고민을 해야 되기도 했고, 또 재미도 있었어요. 관찰자라는 입장이, 남의 일 보듯이 상황을 볼 때도 있거든요. 자기 집에 불나면 허둥지둥하잖아요. 근데 남의 집에 불났을 때 보면, ‘저거 이렇게 움직여도 되는데, 저렇게 움직여도 되는데’ 하는 큰 그림이 보일 때도 있거든요. 제가 프로듀서까지는 아니지만, 감독님 입장에서는 든든해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의 의견을 들어주신 것 같고요.

〈모가디슈〉부터 〈밀수〉, 그리고 〈휴민트〉까지, 세 작품을 류승완 감독님과 같이 하면서 느끼셨던 류승완 감독 현장만의 특징이 있을까요.
감독님 현장은 다 똑같고, 날카롭고, 집요해요. 그게 류승완 감독님이에요. 그리고 감독님은 진짜 영화밖에 몰라요. 사담도 영화 얘기밖에 안 해요.
〈휴민트〉의 후반부 액션 신은 감정도 액션도 불꽃놀이처럼 터지는 느낌이었어요. 액션 시퀀스는 길지만, 새로운 그림이 많았는데요. 실제로 〈휴민트〉의 액션을 본 소감은 어땠나요. 관객들에게 〈휴민트〉의 액션에 대해 홍보한 말씀해주신다면요.
요즘에는 영화관에 와야 할 이유가 필요한 것 같아요. OTT나 TV 화면으로 볼 수 없는 영화적인 체험을 제공해야 하는데요. 최근에 〈F1: 더 무비〉도 그렇고, 도파민이 터져야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만들어진 한국 영화에서는 그걸 〈휴민트〉가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고요. 특히 특수관에서 보면 더더욱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행히도 〈만약에 우리〉부터 최근 〈신의악단〉까지, 극장가에 봄이 오려는 듯한 기미가 보이잖아요. 봄에 새싹 돋듯이, 봄철 나물들이 땅을 뚫고 올라오는 기미가 보여요. 작년보다 얼마나 파이가 커지느냐가 문제일 것 같은데, 〈왕과 사는 남자〉, 그리고 〈넘버원〉도 봄을 맞이하는 신호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휴민트〉의 끝에는 속편을 암시하는 결말이 나와요. 속편이 제작된다면, 출연하실 의향이 있으실까요.
그러게요. 저도 댓글에서 봤는데, “국정원과 조 과장만 살아 있으면 속편도 가능한 거 아니냐” 하면서요. 그런데 제가 늙어가는 건 왜 계산을 안 하시는지 모르겠어요.(웃음) 이런 것들은 바로바로 찍어야 하는데, 제 나이 아시죠? 50살이 될 수도 있어요.

조인성 배우는 40대가 되어 감독들이 더욱 많이 찾는 배우가 되신 것 같아요. 디즈니+ 시리즈 〈무빙〉부터 올해 개봉을 앞둔 〈호프〉(나홍진 연출)와 〈가능한 사랑〉(이창동 연출)까지, 이렇게 다작하시게 된 이유가 있다면요.
다작이라기보다는, 아까 말한 ‘쓰임의 문제’에 따른 거예요. 스타의 개념도 이제 많이 바뀌어야 해요. 코로나19 이전에는 신비주의 스타 시스템이 있었다면, 코로나19 이후에는 얼마나 관객과 가까워지느냐, 그게 스타의 새로운 분위기인 것 같아요. 다가가지 못하면 잊힌다. 어떤 식으로든 가까이 가야 된다. 그렇다면 역할이 작더라도 잘 쓰이자, 내가 잘 쓰일 수 있으면 출연하자는 마음에서 최근에 작품 활동의 빈도가 높아졌던 거죠. 또 최근에 좋은 감독님들의 러브콜이 온 건, 작품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죠. 그래서 역할이 크든 작든 간에 잘 쓰일 수 있으면 하는 거였고요. 그래서 류 감독님 작품 역시 대본도 보지 않고, 역할이 작으면 작을수록 더 좋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에게 많은 부담과 스트레스를 줬던, 크레딧에서 가장 첫 번째로 오르는 역할에서 벗어나 보니, 오히려 도움이 되더라고요.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고, 그 모든 경험들이 저에게 큰 자산이 되더라고요. 작게라도 쓸모 있게 쓰이겠다는 마음에서 출발했던 게, 이렇게 많이 쓰이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조인성 배우의 근래의 행보를 보면 이번 작품을 포함해서 차기작 〈호프〉까지 글로벌 촬영, 글로벌 배우들과 연기 호흡을 맞추는 경험을 연달아 쌓으셨어요. 이런 작품을 소화하신 소감과, 배우로서 이번 글로벌 작업이 어떤 자극이 되셨는지 궁금했습니다.
잘 끝내서 다행이다.(웃음) 글로벌이라고 그렇게까지 글로벌 프로젝트인지는 모르고 그냥 한 거긴 한데, 어쨌든 〈호프〉는 외국 배우들도 나오고, 〈가능한 사랑〉 같은 경우에는 설경구, 전도연 선배님, (조)여정 씨 등 정말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랑 하게 됐어요. 사실 제가 특별히 달라질 건 없어요. 잘 해내야 하는 입장은 사실 똑같습니다. 돈이 많이 들어가면 잘 찍혀야 되니까, 그런 강박은 똑같고요. 제가 어떻게 글로벌 스타가 되겠어요. 그럴 가능성은… 단언컨대 정말 희박합니다.(웃음) 이번에도 배운다는 느낌으로 무작정 다 했어요. 류승완 감독님, 나홍진 감독님, 이창동 감독님과 작업하면 뭐라도 배울 거 아니에요. 그래서 이것도 기회다, 그런 마음으로 했습니다.
올해 류승완 감독의 〈휴민트〉부터 나홍진 감독의 〈호프〉, 그리고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까지, 가장 주목도 높은 세 영화의 주인공이 되셨는데요. 남다른 기분을 느끼실 것 같은데요.
나 혼자 한 게 아닌데, 저는 그것 또한 건방지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그것도 주목병이다. 그렇잖아요. (황)정민이 형도 있고, (설)경구 형도 있고, (전)도연이 누나도 있고. 또 〈휴민트〉 (박)정민이는 요즘 뭐 최고죠. 누가 정민이를 이길 수 있겠어요? 그래서 (주요한 영화의 주인공을 맡았다고 해서)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이것도 주목병이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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