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보석함] 액션배우로의 확장, '휴민트' 임 대리 역 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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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민트〉
〈휴민트〉

액션 연기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배우. 11년 차, 필모그래피 약 22편을 보유한 베테랑 배우에게 ‘가능성’을 언급하는 건 다소 조심스러운 일이기도 하겠으나, 정유진은 분명 확장성을 품은 배우다. 〈휴민트〉는 바로 그 정유진의 확장성과 가능성을 단적으로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정유진은 모델에서 배우로 전향했듯, 로맨스에 최적화된 배우에서 액션 배우로 변신하며 다시 한번 커리어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2월 11일 개봉하는 〈휴민트〉는 그야말로 류승완의 모든 로망이 집약된 영화다. 진한 멜로와 창의적인 액션, 그리고 차가운 첩보 스릴러까지. 〈휴민트〉에서는 조인성과 박정민, 신세경, 박해준의 관계성이 끈적하게 섞이고 뒤얽히며 다양한 동적 장면을 연출한다. 특히나 다트를 활용한 박건(박정민)의 등장 씬이나 박건과 임 대리(정유진)의 계단 액션, 경마장 앞에서의 드리프트 액션 등 개성 가득한 장면들은 충분히 ‘볼 맛’을 선사한다. 다만 아쉬운 점을 꼽자면 〈휴민트〉의 ‘휴민트’이자, 영화 속 모든 사건의 기폭제가 된 채선화(신세경)의 액션 장면이 없다시피 하다는 것인데, 이로써 〈휴민트〉 속 액션을 하는 여성은 정유진의 임 대리가 됐다.

〈휴민트〉
〈휴민트〉

임 대리는 조 과장(조인성)과 함께 일하는 국정원 요원으로, 날카로운 분석력과 업무 수행 능력을 갖춘 브레인이다. 조인성의 말을 빌리자면 조 과장은 “F인 사람이 T인 조직에 속한” 인물이라면, 임 대리는 아마도 T인 사람이 T인 조직에 속한 인물일 터다. 임 대리는 조 과장을 제지하기도 하고 서포트하기도, 또 몸으로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하며 〈휴민트〉의 차가운 잿빛 무드 속에서 조용하게, 또 강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정유진은 드라마 〈설강화 : snowdrop〉으로 액션에 입문한 이후로 〈휴민트〉에서 액션 배우로의 전환을 본격화했다. 정유진은 본인의 유튜브 ‘유진정’에서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에 대한 질문에 “나는 총을 잘 다룬다. 그리고 운전을 잘한다”라고 답한 바 있다. 자신이 뽑은 자신의 장점 두 가지가 합쳐져 본인의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작품이 〈휴민트〉였던 셈이다.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경매장 앞에서의 ‘드리프트 액션 씬’에 바로 그가 연기한 임 대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박정민과 1:1로 붙는 계단 액션 씬에서는 함께 합을 맞춘 박정민 배우의 말에 따르면 “유진 배우가 모두가 걱정할 만큼 몸을 아끼지 않고 썼다”라고 알려졌는데, 아무래도 정유진은 그의 천직을 찾아가는 중이 아닐까.

〈보스〉
〈보스〉
〈보스〉
〈보스〉

사실 정유진은 모델 출신답게 몸을 잘 쓰는 배우이기도 하다. 작년 추석 개봉해 극장가에서 성공을 거둔 영화 〈보스〉에서 정유진은 춤바람난 정경호의 탱고 선생님 역을 맡았다. 동강표(정경호)는 수감 시절, 우연히 길연임(정유진)이 추는 탱고를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된다. 물론 길연임이 아니라 탱고에. 단 한 순간에 탱고로 인물을 사로잡는 역할인 만큼, 정유진이 연기한 길연임은 실제 탱고 댄서와 같은 능숙함은 물론, 거부할 수 없는 매혹적인 눈빛과 매력으로 무장했다. 놀랍게도, 정유진은 〈보스〉를 통해 탱고를 처음 접했고, 3-4개월간 일주일에 3번 이상 연습하며 길연임 역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는 기본 동작과 걷기, 호흡부터 익히며 치명적인 길연임을 만들어갔다.

〈로맨스는 별책부록〉
〈로맨스는 별책부록〉

한때 정유진은 ‘짝사랑 전문 배우’였다. 그것도, 이종석은 두 번이나 짝사랑했다. 드라마 〈W〉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로맨스는 별책부록〉 등에 이르기까지, 정유진은 유난히도 ‘일잘러’ 커리어우먼을 다수 연기해왔다. 아마도 그 이유에는 정유진의 도시적이고 세련된 마스크가 한몫 할 테지만, 정유진이 연기한 인물들은 ‘커리어우먼’이라는 표현으로만 갈음하기에는 너무나 다채롭다. 이를테면 〈로맨스는 별책부록〉에서 그가 연기한 송해린은 소위 'T형 커리어우먼', 그리고 삼각관계의 전형을 깼다. 칼 같아서 '각해린'이라 불리는 그는 신입사원 오지율(박규영)을 따끔하게 혼내기도 하지만, 내면에는 다양한 사랑의 감정을 품고 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던 송 대리는 차은호(이종석)의 책장에 고백의 편지를 끼워 넣는다. 그리고 돌아온 거절의 편지를 마주하던 장면은 ‘한드사상 최고의 고백 거절 씬'이기도 하다. 차이고 나서도 상대의 연인을 시기하기보다, 거절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자신의 사랑을 건강하게 매듭짓는 모습은 기존 로맨스물 속 삼각관계의 문법, 그리고 커리어우먼의 전형적인 모습을 사랑스럽게 파괴했다. 정유진은 그렇게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새로운 인물 지서준(위하준)을 맞이하며 자신만의 사랑을 찾아가는 서사로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샀다.

정유진이 본인의 유튜브에 공개한 액션 연습 장면
정유진이 본인의 유튜브에 공개한 액션 연습 장면

이종석을 짝사랑하던 순애보 송 대리에서 냉철한 국정원 요원 임 대리가 되기까지. 파스텔처럼 톡톡 튀는 다채로운 색깔에서 블라디보스토크의 잿빛까지, 정유진은 도무지 같은 배우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극과 극을 오간다. 11년 차 베테랑이지만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배우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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