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효제를 처음 본 건, 아니 처음 봤다고 ‘착각’한 건 어느 작은 극장에서였다. 올해 초, 이효제는 청년 극단 ‘부엉왈츠’의 연극 ‘현실도피자’에서 기호태 역을 맡아 무대에 올랐다. ‘기호태’라는 그의 배역명에서 알 수 있듯,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 연극에서 이효제는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광기를, 때로는 가슴 시린 묵직함을 오가며 극의 질문을 선명하게 건넸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진 무대 위에서, 이효제는 눈물을 뚝뚝 흘리다가도 순식간에 유쾌한 농담을 건네고, 아이처럼 무모한 듯하다가도 진솔한 독백으로 관객을 위로하며 극장 안을 팽팽한 긴장감과 해학으로 가득 채웠다. 거대한 부조리에 맞서는 그의 무모하고도 숭고한 에너지, 그리고 유머와 비극의 양극단을 오가는 연기에 감탄했더랬다. 저 배우는 도대체 누굴까, 하고 포스터를 뒤적여 이름을 기억해 냈다.

그런 이효제가 〈기리고〉의 형욱 역으로 등장했을 때, 나는 내적 반가움을 금치 못했다. 그때 눈앞에서 봤던, 연기를 정말 잘하던 배우가 이렇게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다니! 그렇지만 ‘나만 아는 배우’였다는 생각이 참으로 민망하고 머쓱하게도, 사실 이효제는 모두가 다 아는 배우였다. 그것도 연기 12년 차,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작품들에 다수 출연한 이효제는 모두가 한 번쯤은 봤을 법한 배우였다.
장담할 수 있다. 당신은 무조건 이효제를 〈기리고〉 이전에도 봤을 것이다. 이름을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지, 사실 이효제는 모두가 알고 있었을 배우다. 멀게는 〈사도〉 속 소지섭의 아역에서부터 가까이는 〈콘크리트 유토피아〉 속 부녀회장 김선영의 아들에 이르기까지. 2014년, 약 열 살이 됐을 무렵 연기를 시작한 이효제는 어느덧 연기 12년차 배우가 되었다.
〈검은 사제들〉 〈가려진 시간〉 〈사도〉 〈수리남〉 〈인간실격〉 등에서 누군가의 아역을 연기하며, 또 〈루프〉 〈좋은 사람〉 등의 독립영화에서 개성 있는 에너지를 발산하며 필모그래피를 채워온 이효제는 〈기리고〉로 본격적인 얼굴을 드러낸 모양새다. 전소영, 강미나, 백선호, 현우석 등 출연진이 모두 신인으로 구성되어 신선한 에너지를 내뿜는 영 어덜트 호러 〈기리고〉에서 저주의 서막을 알리는 형욱으로 분해, 이 패기 넘치는 시리즈의 탄생을 견인했다.

이효제는 〈기리고〉의 색채를 단 한 화 만에 단박에 전달해야 하는, 매우 막중한 미션을 성공적으로 완성해 냈다. 그는 저주의 서막을 알리는 인물로, 장난기 많은 학생의 모습에서 소원을 빌고 저주에 휘말리는 과정까지를 시청자들에게 짧고 강하게 설득해야 했다. 형욱은 그저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는 우연히 ‘기리고’ 앱을 발견해 ‘수학 만점’이라는 소원을 빈다. 소원은 거짓말처럼 이루어지지만, 형욱은 24시간 후,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빙의되어 스스로의 목을 커터칼로 긋는다.
형욱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체중을 20kg가량 증량하며 캐릭터를 준비한 이효제는, 서서히 공포에 잠식되어가는 형욱의 모습을 기괴하게, 그리고 정교하게 표현해냈다. 표정부터 안면 근육의 미세한 떨림까지, 그가 선보인 형욱의 모습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기리고〉의 기이한 세계관으로 금세 흠뻑 빠지게 만들었다.

〈기리고〉의 박윤석 감독은 〈콘크리트 유토피아〉 속 이효제의 눈빛을 보고 그를 형욱 역에 낙점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이효제는 재난 이후 무너진 세상에서 불안하게 흔들리는 듯하면서도, 얼떨결에 방범대에 합류하게 된 어리숙한 고등학생의 모습부터, 주변을 수색하다 외부인에게 공격을 당해 공포에 질린 얼굴까지, 장르물에 걸맞은 날것의 감정들을 훌륭하게 표현해냈다.
최저점에서 발굴한 줄 알았으나 이미 우량주였던 배우 이효제. 12년의 이력, 탄탄한 기업가치, 이미 여러 차례 증명된 실적 등. 내가 늦게 알아본 것일 뿐, 종목 자체는 오래전부터 건실한 거였다. 고점 경신은 이미 시작되었으니, 늦기 전에 이 우량주를 선점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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