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이런 사람을 데려왔을까. 정말로 친구 집에 얹혀사는 동네 무직 백수를 데려온 건 아닐까. 〈짱구〉에서 조범규가 경박하게 다리를 떨며 등장하자마자 생각했다. 영화 〈짱구〉의 ‘깡냉이’(조범규)는 술을 진탕 먹고 들어와 친구 커플이 자고 있는 침대 밑 방바닥에 아무렇지 않게 드러눕기도 하고, 얹혀사는 주제에 전기세도 내지 않으면서 적반하장으로 뻔뻔하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너구리 한 마리 몰고 갈리~”라는 그들만의 유행어를 능청스럽게 내뱉으며 ‘짱구’(정우)와의 우정만큼은 끈끈하게 지켜내는, 극도로 현실적인 인물이다.
영화 〈짱구〉는 여러모로 비현실적이다. 영화는 ‘배우 지망생의 109번의 오디션 도전기’를 내걸었지만, 사실 영화에서는 배우 지망생 ‘짱구’가, 그야말로 남성들의 판타지를 집약한 것만 같은 도도한 여성 ‘민희’(정수정)와 데이트하는 플롯이 주가 된다. 주인공과 또래 친구들을 맡은 배우들의 나이 차는 또 어떤가. 하여간, 판타지에 가까운 이 영화에서, 조범규가 등장하는 순간만큼은 〈짱구〉가 다큐멘터리였나 싶었다. 이 비현실적이고도 아이러니한 영화에서, 유일하게 가장 현실적인 것은 바로 조범규의 연기였으니 말이다.

그가 등장하는 순간 허무맹랑했던 영화가 설득력 있어 보였다. 그래서 〈짱구〉는 사실 〈깡냉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현실의 벽 앞에 놓인 청춘’은 깡냉이의 서사를 통해 더욱 명확히 드러나니 말이다.
깡냉이는 그저 꿈도 계획도 없는, 철없는 청춘인 것만 같아 보인다. 허세 가득한 듯 껄렁껄렁한 말투, 부산에서 갓 상경한 듯한 리얼한 사투리,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줄곧 경박하게 떠는 다리, 짱구가 “너구리 한 마리 몰고 갈리~”라고 물으면 “햄 많이 처무라”라고 천연덕스럽게 답하는 찰떡같은 호흡까지. 조범규의 깡냉이는 그야말로 현실 어디 한구석에 존재할 법한, 방구석 백수다. 깡냉이는 짱구와 함께 살며 일자리를 구하는데, 웨이터를 구한다고 해서 간 곳은 다름 아닌 ‘호빠’(호스트바). “청춘을 팔아 돈을 번다”라며 그를 냉소적으로 대하는 시선에도 무심한 듯 보이지만, 깡냉이의 사투는 사실 ‘할매’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한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이었다. 극 후반부, 그저 껄렁하게만 보였던 깡냉이의 진심이 선명하게 드러나며 영화는 그제야 비로소 관객에게 묵직함을 안겼다.

진짜 ‘현실 짱구’는 조범규일지도 모른다. 조범규는 약 4000:1의 경쟁률을 뚫고 〈짱구〉의 ‘깡냉이’ 역에 낙점됐다. 〈짱구〉의 감독과 주연을 겸한 정우는 〈짱구〉의 단역 한 명 한 명까지도 인지도와 스타성을 배제하고 오디션으로만 캐스팅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 그중에서도 정우가 가장 공들여 캐스팅한 롤이 바로 ‘깡냉이’였다. 정우는 4차에 걸친 오디션 끝에 조범규를 발탁했고, 그와 함께 3~4시간 동안 등에 땀이 흠뻑 젖을 정도로 연기 호흡을 맞추며 카메라 테스트를 거쳤다. 사실 정우는 ‘깡냉이’ 역에 더욱 센 이미지의 배우를 원했으나, 조범규가 마음에 들어 ‘깡냉이’의 설정을 ‘짱구’의 친구가 아닌 친한 동생으로 변경하면서까지 그를 최종 낙점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그는 신인답지 않은 ‘생활 연기’로 작품의 리얼리티를 견인했으니, 정우의 선택은 신의 한 수였던 셈이다.

조범규는 2024년 tvN 드라마 〈사랑은 외나무다리에서〉로 데뷔한, 그야말로 ‘갓 등장한’ 신인이다. 조범규는 2023년 BH엔터테인먼트가 주최한 공개 오디션에서 선발된 배우이기도 하다. 〈마녀〉의 최우식 연기와 창작 독백 연기를 하며 BH엔터에 최종 합격한 배우 조범규는 단숨에 이병헌, 박해수, 김고은 등과 함께 한솥밥을 먹게 됐다. 유수의 명배우가 속한 소속사가 일찌감치 ‘보석함’에 담은 배우였던 셈이다. 그 후 조범규는 〈사랑은 외나무다리에서〉에서 솔직하고도 거침없는 고등학생 엄기석 역을 맡아 배우 최윤지와의 풋풋한 케미스트리를 선보였고, tvN 드라마 〈서초동〉의 5화에서는 절도 사건에 휘말리는 취업준비생 역할을 맡아 안정적인 연기력을 선보이며 짧은 출연임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유명 기획사가 일찌감치 점찍은 이유를 데뷔와 동시에 증명해 나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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