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2 〈뮤직뱅크〉의 ‘저점매수’ 역사는 유서가 깊다. 역대 〈뮤직뱅크〉의 남자 MC, 즉 ‘은행장’의 라인업을 보면 화려하다. 〈뮤직뱅크〉는 남자 배우가 소위 말하는 ‘스타’의 궤적에 오르기 전, 잽싸게 은행장 자리에 앉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뮤직뱅크의 보석함]을 오픈해야만 할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2009년에는 송중기, 2013년에는 박서준, 2015년에는 박보검을 은행장 자리에 앉혔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2000년대생 라이징 남자 배우들을 연이어 은행장으로 낙점하고 있는데, 〈폭군의 셰프〉로 얼굴을 알리기 전의 이채민은 2022년부터, 〈은애하는 도적님아〉 〈파반느〉로 근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문상민은 2024년부터 은행장 자리를 이어오다 최근 하차했다. 그리고 그들에 이어 남자 은행장 자리를 이어받을 배우는 김재원이다. 김재원은 이번 주 금요일인 27일 〈뮤직뱅크〉 방송에서 izna(이즈나) 방지민과 함께 은행장으로 ‘데뷔’하게 됐다.

김재원은 굳이 어려운 길을 가는 라이징 배우다. 2001년생, 이십 대 중반의 남자 배우가 연기할 만한 ‘청춘’은 흔히 눈부시거나, 약하거나, 치기 어리거나. 젊음에 대한 로망이 집약된 형태로 표현된다. 물론 김재원 역시, 그런 역할들을 쌓으며 기반을 다져왔다. 〈우리들의 블루스〉 속 차승원의 아역, 그리고 〈킹더랜드〉에서 선배 승무원을 짝사랑하는 후배 승무원, 〈하이라키〉 속 재벌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청춘의 얼굴을 하며 라이징 스타의 궤적을 정직하게 그려온 김재원은 〈옥씨부인전〉으로 첫 사극에 도전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추영우와의 끈끈한 형제 케미, 임지연과의 충직한 조력자 케미, 연우와의 로맨스 케미까지. 한 작품 속 다양한 관계의 변주를 보여준 김재원은 특유의 차분한 중저음의 목소리 톤과 단단한 눈빛으로 사극 도전 합격점을 받았다.

그가 최근 얼굴을 비춘 두 작품을 보면, 김재원의 연기적 갈증이 어느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를 단박에 확인할 수 있다. 〈옥씨부인전〉으로 본격적인 주연으로서의 행보를 걸을 줄만 알았던 김재원은 이후 파격적인 얼굴로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은중과 상연〉에서는 트랜스젠더, 〈레이디 두아〉에서는 호스트바 선수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김재원이 연기한 인물들은 단지 파격적인 성정체성이나 직업으로만 소비되는 평면적인 캐릭터가 아니었다. 〈은중과 상연〉의 천상학과 〈레이디 두아〉의 강지훤은 파격적인 외피 아래, 더욱 복잡다단한 내면을 품은 인물들이다. 김재원이 처음으로 회사에 ‘꼭 하고 싶다’라고 어필한 드라마 〈은중과 상연〉 속, 김재원은 상연(박지현)의 오빠이자 은중(김고은)의 잊히지 않는 첫사랑 천상학 역을 맡았다.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청년이었던 그는 동네 골목 곳곳을 카메라에 담으며 "예쁘다"라고 말하는 순간 하나로, 은중의 기억 속에 평생토록 남는다. 결국 천상학의 존재는 은중과 상연의 얽히고설킨 20년 서사를 견인하는, 키와 같은 인물이 되었다. 김재원은 말간 얼굴과 다정한 말투로 ‘만인의 첫사랑’스러운 모습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품은 위태로운 모습을 병치시키며, 극의 반전을 설계하는 데에 성공했다.

한때 “순하게 생겼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 역할 위주로 맡았다”라던 김재원은 자신의 이미지를 〈레이디 두아〉의 강지훤으로 완전히 뒤집어냈다. 극 중 김은재(신혜선)의 대사를 빌리자면 ‘싸 보이는’ 인물 역시, 김재원이 이토록 잘 해낼 줄은 몰랐다. 순하게 생긴 자신의 이미지에 갇히지 않고, “‘어둡고 관능적인 분위기’의 작품도 한번 만나보고 싶다”던 김재원이 만든 강지훤은 ‘싸 보이는’ 한편,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호스트바 선수인 강지훤은 가짜로 시작해 진짜가 된, 그래서 가장 비극적인 인물이기에 매력적이다. 강지훤은 ‘공사’(호스트바 선수가 손님에게 금전적 이득을 얻기 위해 환심을 사는 행위를 뜻하는 은어)를 치려고 김은재에게 접근했다가, 일에 진심을 섞기 시작하면서 김은재(혹은 사라킴)를 정말로 사랑하게 되어 파멸한다. 김재원은 진심으로 사랑하기 전의 ‘싸 보이는’ 연기, 그리고 사랑해서 파멸한 후의 불안을 극명하게 대비시키며 “진짜와 구별할 수 없는데, 가짜라고 볼 수 있나요?”라는 극의 질문을 선명하게 건넸다.

이미 너무나 상승세를 달리고 있는 배우이지만, 이 배우가 더욱 가파른 상승 곡선을 탈 것이라고 점치는 이유에는 그가 〈유미의 세포들〉 시즌3에서 신순록 역으로 등장할 것이라는 점 외에도 한 가지가 더 있다. 김재원은 넷플릭스 시리즈 〈중증외상센터〉 7, 8회에 짧게 출연한 바 있는데, 이때 마치 시즌2 합류를 암시하는 듯한 장면을 남겼기 때문이다. 김재원은 남수단 군의관 서동주로 등장해 백강혁의 “소질 있어”라는 평가를 받고, 후에 중증외상센터 합류를 자원하며 양재원(추영우)에게 “반갑다, 2호”라는 환영 인사를 받으며 ‘Team 중증’ 노예 2호가 되었다. 물론, 그가 정말로 〈중증외상센터〉 시즌2에 출연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이번 주 금요일, 그가 은행장으로 첫 인사를 건네는 날이 아마도 김재원의 가장 덜 유명한 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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