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 그대로 ‘티비만 틀면 나오는’ 배우를 쓰려니 퍽 민망하지만, 지금이 그의 또 다른 전성기가 아닌가 싶기에, 그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윤병희는 근래에만 〈멋진 신세계〉 〈오늘도 매진했습니다〉 〈21세기 대군부인〉까지, 비슷한 시기에 방영한 세 편의 드라마에서 모두 활약한 것은 물론, 올 초에는 영화 〈메소드연기〉(2026)로 극장가까지 찾으며 지치지 않는 ‘상한가’ 릴레이를 펼치고 있다.

누군가는 윤병희를 〈범죄도시〉(2017), 드라마 〈스토브리그〉, 〈빈센조〉의 ‘씬스틸러’ 혹은 ‘명품 조연’으로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그가 본격적으로 관객들에게 잊을 수 없는 인상을 선사한 것은, 단연 영화 〈범죄도시〉 속 공안 행세를 하는 조선족 ‘휘발유’ 역으로부터였기 때문이다. 〈황해〉(2010)에서의 조선족 웨이터 역할, 〈서부전선〉(2015)에서의 중공군 역할을 맡아 중국어와 조선족 억양을 두루 익혀온 그는 오랜 무명 시절에 쌓아온 내공을 바탕으로 〈범죄도시〉의 배역을 따냈다. 현지인을 방불케 하는 연기로 장첸(윤계상) 일당을 완벽히 속인 그는, 강한 임팩트를 남긴 나머지 진짜 조선족 배우가 아니냐는 유쾌한 오해를 사기도 했다.

〈범죄도시〉 속 윤병희의 강한 임팩트는 이후 그를 수많은 작품의 ‘신스틸러’로 이끌었다. 〈범죄도시〉의 PD가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그를 추천했고, 윤병희는 속편 〈범죄도시2〉(2022)까지 출연하기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2019년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는 또 어땠는가. 괴짜처럼 보일지언정, 원석 같은 유망주를 발굴하기 위해 말 그대로 전국 팔도를 발로 뛰는 스카우트 팀장 역을 맡은 그는 여관방을 전전하며 유망주를 발굴하고, 선수 혹사가 보이면 감독과의 마찰도 불사하는 등, 남다른 뚝심으로 사람 냄새를 진하게 풍기는 휴머니스트의 면모를 보여주며 〈스토브리그〉라는 휴먼 드라마의 색채를 더욱 짙게 덧칠했다.

그러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윤병희의 얼굴을 딱 하나만 꼽자면, 단연 2024년 JTBC 드라마 〈낮과 밤이 다른 그녀〉의 주병덕 수사관을 언급하겠다. 계지웅 검사(최진혁)와 임순(이정은) 사이에서 찰진 삼인조 호흡을 맞추며 ‘짤’로 소장하고픈 코믹 명장면을 무수히 양산해 낸 이 드라마는, 윤병희의 매력 쇼케이스라고 해도 될 정도로 독보적이었다. 특유의 맛깔스러운 대사 처리와, 삼인조 사이의 찰진 ‘핑퐁’으로 극의 활력을 책임진 그의 연기는 단순히 기능적인 조연을 넘어, 극의 온도를 시종일관 유쾌하게 책임지는 치트키와 같은 역할을 해냈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SBS 드라마 〈멋진 신세계〉에서도 어김없이 윤병희의 차진 말맛과 캐릭터 소화력이 빛난다. 차세계(허남준)의 든든한 오른팔이지만, ‘자낳괴’(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에게도 지지 않는 말빨로 그와의 충신 혹은 앙숙 케미를 보여주는 윤병희의 손실장은 극의 재미를 든든하게 책임지고 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돈지랄입니다”라고 당당히 말하는 윤병희의 손실장은 차세계를 밉지 않은 악질 재벌로 만드는 데에 큰 기여를 한다.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오늘도 매진했습니다〉에서는 또 어떤가. 이 작품에서 역시나 윤병희는 ‘케미 장인’임을 증명했다. 그가 연기하는 강무원은 매튜 리(안효섭)를 짝사랑(?) 하는 인물로, 힐링 로코의 무해한 재미를 더했다. 툭하면 “우리 다시 시작하자”라며 매튜 리에게 고백을 날리는 그의 직진은 극의 확실한 웃음 포인트였다.


그러나 윤병희는 맛깔스러운 연기에만 특화된 것은 아니다. 윤병희는 언제든 차가운 얼굴을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다. 가령 영화 〈그녀가 죽었다〉(2024)에서 그는 미스터리의 키와 같은 인물 ‘손종학’을 연기하며 소름 돋는 얼굴을 꺼내 보였다. 구정태 역의 변요한과 벌이는 처절한 육탄전은 그를 다른 의미의 ‘케미 장인’으로 각인시키기도 했다. 영화 〈사채소년〉(2023)에서의 누아르적 얼굴은 또 어떤가. 이강진(유선호)을 잔혹한 사채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그는, 무시무시한 아우라를 풍기며 새로운 장르에 대한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신스틸러에서 케미의 신으로, 조연에서 대체 불가능한 필수재로 자리매김한 그는, 더욱 다양한 장르의 포트폴리오를 채워갈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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