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철의 사물함] '오디세이'의 외눈 거인 사이클롭스와 레이 해리하우젠의 '신밧드의 일곱 번째 모험'

나는 영화 속 물건에 꽂힌다. 감독, 촬영감독, 미술감독, 아니면 배우 등 대체 왜 저 물건을 카메라 앞에 두었을까 깊은 고민에 빠진다. ‘주성철의 사물함’은 내 눈에 사뿐히 지르밟힌 영화 속 물건에 대한 기록이다.

〈오디세이〉의 사이클롭스와 프란시스코 고야의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오디세이〉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오디세우스(맷 데이먼) 일행이 양 한 마리를 좇다가 들어가게 된 동굴에서 맞닥뜨린 외눈 거인 사이클롭스다. 거대한 몸집으로 동굴을 큰 바위로 막고서는 동굴 속 인간들을 하루에 두 명씩 먹어 치우고 잠든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여러 인터뷰에서 외눈 거인 캐릭터에 대해 프란시스코 고야의 그림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와, 역시 그를 모티브로 삼아 얼굴은 있으나 눈이 없는 괴물을 만든 기예르모 델 토로의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2006)에서 영향받았음을 이야기한 바 있다. 아무튼 놀라운 점은 영화 속 트로이의 목마처럼 외눈 거인 사이클롭스 역시 직접 만든 ‘사물’이라는 것. 제작진은 실제 그리스에 있는 네스토르 동굴에 가서 촬영했을 뿐만 아니라, 60피트(약 18m) 높이의 움직일 수 있는 애니매트로닉스(실물 모형 로봇)를 손수 만들었다.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사이클롭스를 보며 떠오른 또 다른 사물은, 국내에 〈신밧드의 항해〉로 개봉하고 TV에서도 방영된 바 있는 〈신밧드의 7번째 모험〉(1958)에 등장한 외눈 거인 사이클롭스다. 서로 다른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작자 미상의 중동 설화 「천일야화」에 어떻게 같은 이름으로 등장하는지 의아할 수도 있는데, 실제로 둘은 같은 캐릭터다. 사이클롭스(Cyclops)는 일반적으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외눈박이 거인족을 가리키는데, 그리스어 ‘kyklos’(둥근)과 ‘ops’(눈)에서 유래해 ‘둥근 눈을 가진 자’를 뜻한다.

그리스 신화의 사이클롭스 전통을 재해석해 「천일야화」의 세계에도 접목한 창작이라고 보면 된다. 외눈 거인으로 인간을 잡아먹고, 동굴이나 외딴 섬에 거주한다는 특징이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외눈 거인 사이클롭스 종족 중 폴리페모스(Polyphemus)와 거의 같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오디세이아」의 폴리페모스가 말도 할 줄 알고 양을 치는 목동으로 오디세우스 일행을 동굴에 가두고 잡아 먹는 반면, 〈신밧드의 7번째 모험〉에 등장하는 사이클롭스는 목동이라기보다는 그저 식인 괴물에 가깝다.

펠레그리노 티발디의 ‘눈이 먼 폴리페모스’
펠레그리노 티발디의 ‘눈이 먼 폴리페모스’

〈오디세이〉의 폴리페모스는 「오디세이아」와 〈신밧드의 7번째 모험〉의 중간 형태에 가깝다. 원작 「오디세이아」에서는 오디세우스가 그의 존재를 알고 손님으로 대접해주길 바라며 동굴에 찾아가는 것이라면, 영화 〈오디세이〉에서는 〈신밧드의 7번째 모험〉처럼 우연히 맞닥뜨린 정체불명의 괴물에 가깝다. 그래서 하나의 캐릭터라 할 수 있는 폴리페모스라 부르기도 애매하다. 원작에서는 일행을 처음 만나 “나그네들아, 너희는 누구냐?”라고 묻는데, 영화에서는 탈출을 시도하며 한참 시간이 흘러 눈에 상처를 입은 뒤 ‘아버지 포세이돈’에 대해 언급하며 울부짖자 “어, 말을 할 줄 아네?”라며 뒤늦게 알게 된다. 또한 아놀드 뵈클린의 ‘오디세우스와 폴리페모스’나 펠레그리노 티발디의 ‘눈이 먼 폴리페모스’ 등 오디세우스와 폴리페모스에 대해 그린 세계미술사상 엄청나게 많은 회화에서 폴리페모스는 대부분 머리카락이 있으며, 오디세우스가 건넨 포도주를 마시는 대화도 나눌 정도로 사실상 인간의 모습에 가깝다.

아놀드 뵈클린의 ‘오디세우스와 폴리페모스’
아놀드 뵈클린의 ‘오디세우스와 폴리페모스’

크리스토퍼 놀란의 사이클롭스는 〈신밧드의 7번째 모험〉에 등장하는 괴물을 그대로 가져온 것에 가깝다. 여기서 등장해야 할 인물이 바로 ‘특수효과의 아버지’, 아니 ‘특수효과의 호메로스’ 레이 해리하우젠이다. 컴퓨터 그래픽이 없던 시절, 움직이지 않는 사물을 한 장면씩 촬영해 연속으로 움직이는 듯한 착시효과를 내는 ‘스톱 모션’ 특수효과의 대가였던 그는 〈심해에서 온 괴물〉(1953), 〈놈은 바닷속으로부터 왔다〉(1955), 〈지구에서 2천만 마일〉(1957), 〈신밧드의 7번째 모험〉을 시작으로 〈신밧드의 대모험〉(1973)과 〈신밧드와 마법사의 눈〉(1977)로 이어진 〈신밧드〉 시리즈, 그리고 스톱 모션 기술의 정점이었던 〈제이슨과 아르고넛〉(1963) 등에 참여했다. 특히 〈아르고 황금 대탐험〉이라는 제목으로 국내 개봉한 〈제이슨과 아르고넛〉의 해골 병사 전투 장면은 지금 봐도 딱히 이상하지 않은 영화역사상 가장 기념비적인 스톱 모션 장면이다.

〈신밧드의 7번째 모험〉
〈신밧드의 7번째 모험〉
〈신밧드의 7번째 모험〉
〈신밧드의 7번째 모험〉

레이 해리하우젠의 영화를 보고 자란 후배 영화인들인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 피터 잭슨, 팀 버튼, 존 라세터, 기예르모 델 토로 등이 바친 헌사는 끝도 없다. 크리스토퍼 놀란 역시 그의 영화에 매혹됐음을 고백한 ‘할리우드 키드’ 중 한 명이었다. 199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레이 해리하우젠을 소개하기 위해 나온 톰 행크스는 “어떤 사람들은 〈시민 케인〉이나 〈카사블랑카〉를 영화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꼽지만, 나에게 있어 최고의 영화는 바로 〈제이슨과 아르고넛〉이다”라고 찬사를 바쳤다. 그로부터 20여년 뒤인 2013년 레이 해리하우젠이 세상을 떠났을 때, 절친이었던 SF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는 “해리하우젠은 기술자, 예술가, 몽상가로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는 자신이 만든 상상물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고 추모했다.

촬영현장의 레이 해리하우젠
촬영현장의 레이 해리하우젠
촬영현장의 크리스토퍼 놀란
촬영현장의 크리스토퍼 놀란

〈신밧드의 일곱 번째 모험〉에 등장하는 사이클롭스가 놀라운 것은, 레이 해리하우젠이 수많은 회화 속에 등장하는 사이클롭스의 모습과는 무관하게 자기만의 디자인을 적용했다는 사실이다. 놀랍게도 익숙한 외눈 거인 사이클롭스 종족 이미지와 그리스 신화의 또 다른 ‘반인반수’ 종족 사티로스 이미지를 결합한 것. 사티로스 특유의 뿔과 염소 다리 형상을 더하여 완전히 새로운 외눈 거인, 아니 외눈 괴물 디자인을 완성했다. 「오디세우스」와 달리 말 못하는 괴물인 「천일야화」의 사이클롭스는 동굴에 갇힌 사람들을 꼬치에 끼워 불에 구워먹다가 달아나는 인간들을 해변까지 쫓아갔다. 레이 해리하우젠의 인형 사이클롭스를 대규모 아이맥스 영화의 애니매트로닉스로 만드는 것, 바로 그의 영화를 보며 자란 크리스토퍼 놀란이 언젠가 〈오디세이〉로 이루고픈 꿈이었다.

영화 속 물건들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 ‘주성철의 사물함’을 시작으로 떡상을 기대하는 배우 사용 설명서 ‘김지연의 보석함’, 내 마음을 움직인 영화음악 감상실 ‘추아영의 오르골’, 서브컬처 잡상인의 구매일지 ‘성찬얼의 만화책’까지 씨네플레이 기자들이 저마다의 취향과 시선으로 격주 연재를 시작합니다.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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