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성철의 사물함 원고도 건물함으로 바꿔봤다. 25번째 천만 한국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지난 주말 〈왕과 사는 남자〉가 누적 관객 1천 117만 명을 넘었다. 속도도 빠르다. 삼일절인 3월 1일 일일 관객수가 무려 81만 7,000명이었고 개봉 27일만인 3월 2일 9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그사이 ‘단종’을 키워드로 한 조선왕실사 관련 역사 도서 판매량이 전년 대비 무려 2,565% 상승했고, 단종의 유배지인 강원도 영월 청령포 관광객 수는 5배 이상 폭증했다. 이후 개봉 33일째 1천 100만을 넘기며 〈파묘〉의 40일, 〈서울의 봄〉의 36일 기록도 넘었다. 최종적으로 〈파묘〉가 1,191만 명, 〈서울의 봄〉이 1,312만 명을 동원했기에 〈왕과 사는 남자〉도 이 속도라면 1,300만 관객을 무난히 돌파하지 않을까 예측해볼 수 있다. 이른바 ‘단종 열풍’이라 해도 좋을 현상이다.

〈왕과 사는 남자〉는 폐위된 단종 이홍위(박지훈)가 강원도 영월의 유배지에서 촌장 엄흥도(유해진)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며 인생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는 내용을 그린다. 영화에서 단종과 엄흥도 못지않게 주목받은 인물은 바로 한명회(유지태)와 금성대군(이준혁)이다. 한명회가 주연급 분량으로 빌런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면, 금성대군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영화 내내 정의로운 모습으로 깊이 각인된다. 역사에 기록된 것처럼 실패할 것을 알고 있으나 〈서울의 봄〉에서 계엄군을 막으려는 이태신 장군(정우성)이 승리하길 응원하는 마음처럼, 금성대군의 단종복위운동도 마찬가지 마음으로 응원하게 되는 것.

금성대군은 세종대왕의 여섯째 아들이자 단종의 숙부로,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1457년(세조 3년) 단종복위운동이 실패한 후 32세에 비운의 죽음을 당했다. 실제 역사에서 순흥부사 이보흠과 함께 단종 복위를 모의하다 실패한 것을, 영화에서는 군대를 일으켜 한양으로 출병 준비까지 마친 상태에서 실패하는 것으로 규모를 키워 각색했다. 그는 수양대군이 정권 탈취의 야심을 가지고 한명회, 신숙주 등과 결탁하여 안평대군을 숙청하고 단종의 보필 대신인 김종서 등을 제거하자, 형의 행위를 반대해 조카를 보호하기로 결심했다. 조카인 단종을 너무나도 아꼈기에 왕의 자리를 찬탈한 친형 수양대군이 얼마나 밉고 가증스러웠을까. 앞서 세조 즉위 후인 1455년(세조 1년)에 단종이 경상도 순흥(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의 금성대군 집에 있었던 적도 있는데, 그로 인해 재산과 노비를 모두 몰수당하기도 했다. 세종의 여러 아들 중에서 다른 대군들과 다른 서자 군들은 세조의 편에 가담하여 현실의 권세를 누렸으나, 홀로 성품이 강직하고 충성심이 커서 위로는 아버지 되는 세종과 맏형인 문종의 뜻을 받들어 그들이 사랑한 영특하고 어린 단종을 끝까지 보호하려 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 것.


〈왕과 사는 남자〉 투어를 위해 당장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향하고 싶지만, 멀기도 하고 나룻배 대기시간도 길다고 하여 망설이는 분들을 위해 추천하고 싶은 곳이 바로 서울 은평구 진관동의 금성당(錦城堂)이다. 금성대군의 비참하고도 정의로운 죽음은 무속 특유의 인격신(초인간적 존재이면서도 인간의 의식·형태를 가진 신) 문화에 힘입어 신격화됐는데, 그 신격화된 금성대군을 모시는 신전 중 하나가 바로 서울 금성당이다. 금성대군을 주신(主神)으로 모신 굿당인 금성당은 19세기 후반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258호이기도 하다. 금성당에서는 상설 체험 및 금성당 원 소장품 무신도가 전시되어 있는데,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서는 금성당 기획 특별전시도 열리고 있다. 2019년 방문 당시 샤머니즘 박물관으로도 운영되고 있었는데, 2024년에 은평구와 샤머니즘 박물관의 업무협약이 종료되어 현재 금성당은 금성당 자체로 운영되고 있다. 이후 샤머니즘 박물관은 국민대(정릉로6가길 47) 앞으로 옮겨갔다.




2010년대 들어 은평뉴타운이 건설되면서 공사 구역 내 위치한 금성당을 뉴타운 사업부지 밖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원래 있었던 자리에 보전해 새로 조성될 아파트 단지와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최종 결정됐다. 이 과정에서 민속학자 양종승이 평생 수집한 샤먼 유물 약 2만 여점으로 정릉에 문을 열었던 샤머니즘 전문 사립박물관인 ‘샤머니즘 박물관’이 2016년 이곳 금성당으로 옮겨왔던 것. 전국의 많은 굿당들이 사라진 현 상황에서 과거 굿당의 모습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금성당은 매우 중요한 건축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바야흐로 2019년의 일이다. 일본에 사는 친척들이 있는데, 짧게 설명하자면 할아버지의 형이 일본에 가서 형성된 가족을 2000년대 들어 한 일본인 사업가의 도움으로 마치 ‘한일 이산가족찾기’처럼 〈파친코〉스럽게 재회하게 된 경우다. 아무튼 일본 큰아버지, 일본 큰고모, 작은고모라 부르는 친척들이 있다. 살다가 누군가는 일본으로 귀화하고 누군가는 조총련계로 살지만 여전히 서로 잘 지내고 있는 그런 관계다. 이후 1년에 한두 번 정도 한국과 일본을 왕래하고 있는데, 2019년 어느 날 갑자기 한국 드라마에 푹 빠져 있는, 특히 MBC 〈조선왕조실록〉부터 최애 드라마 〈동이〉에 이르기까지 안 본 한국 사극 드라마가 없는 일본 작은고모가 갑자기 연락이 와 (어떤 드라마를 보다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단종이 너무 불쌍하고 특히 금성대군도 너무 멋지고 잘 생겨서(방점은 여기), 자료를 찾다 보니 금성대군을 모신 사당이 서울에 있다는데 데려다줄 수 있냐”는 거였다. 지도가 이상한 건지 모르겠는데, 금성당이라는 곳이 아파트 단지 한 가운데 있어서 찾아가기 힘든 곳 같다며 함께 동행하자고 한 것.

알고 보니 앞서 얘기한 것처럼, 과거 은평뉴타운이 건설되는 가운데 금성당을 보존하며 샤머니즘 박물관까지 더해 사진 속 모습처럼 남아 있었다. 금성당은 본채와 안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본채에서는 신을 모셨고, 안채에서는 굿당을 관리하는 시봉자가 생활했다. 전체가 마루로 이루어진 본채의 대청 뒤쪽에는 벽감을 두어 신을 모셨다. 안채는 중부지방 일반 민가와 같은 ‘ㄱ’자 형이지만 동쪽 방을 ‘전(田)’자 형태로 크게 지은 것이 금성당만의 특징이다. 금성대군을 추모하기 위해 저 멀리 일본에서 금성당까지 왔다는 얘기에, 당시 관장님께서 무척 뿌듯해하며 거의 일일 큐레이터처럼 상세하게 설명해주셨던 기억이 있다.


금성당 외에도 전국 팔도의 서로 다른 무속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는 여러 방과 각종 물건 등도 인상적이었다. 무신도류, 문서류, 부적류, 제기류, 악기로, 촛대향로류, 부채류, 창검류 등 우리나라 무속현장에서 쓰인 신물(神物) 그리고 다수의 히말라야, 몽골, 중국 샤먼 유물들도 볼 수 있다. 그처럼 그때 금성대군이라는 존재의 실체를 제대로 알게 됐는데, 〈왕과 사는 남자〉에서는 이준혁 배우가 금성대군을 연기했으니, 일본 작은고모도 매우 만족하시리라 생각하며, 조만간 금성당을 다시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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