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도 가끔 재떨이를 든다. 허우샤오시엔 감독과 배우 양조위의 〈비정성시〉(1989)에 이은 두 번째 만남 〈해상화〉(1998)에는, 양조위가 느닷없이 ‘행패’를 부리는 장면이 있다. 언뜻 그에게 잘 어울리지 않는 단어처럼 느껴지지만, 어쨌건 그가 최선을 다해 롱테이크로 소리치고 물건을 집어 던지며 행패 연기를 펼친다. 중국 현대소설의 효시 중 하나로 꼽히는 소설가 한방경의 1894년작 「해상화열전」을 영화화한 〈해상화〉는, 1880년대 상하이 유곽을 배경으로 왕 나리(양조위)와 심소홍(하다 미치코)의 어긋나는 관계를 그리고 있다.

왕 나리와 소홍은 몇 년째 정분을 나누는 사이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관계가 원만하지 않다. 소홍의 쌀쌀맞은 태도에 기분이 상한 왕은 다른 기녀 장혜정(위조혜)과 밤을 보내고, 소홍은 질투심에 혜정을 찾아가 때리는 일이 발생한다. 왕 나리는 소홍을 첩으로 삼으려 하지만, 이후 그들의 관계가 지금처럼 유지될 수 있을지 불안하기에 소홍의 태도가 명확하지 않다. 어쨌건 그런 일을 겪으며 다시 소홍과의 관계 회복을 꿈꾸지만, 어느 날 그녀의 방으로 들어간 경극 배우를 발견하고는 화를 참지 못하고 그런 행패를 부리게 된다.

상하이의 한 기루를 배경으로, 경제적인 이유로 첩으로 들어가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기녀와 그보다는 사랑 그 자체가 우선이라 견딜 수 없는 주쌍옥(방선)도 있고, 나이 든 나리의 오랜 후원을 받으며 아무 말 없이 유곽에서 평생 살아갈 것 같은 주쌍주(유가령)와 하루 빨리 독립하고자 애쓰는 황취봉(이가흔)도 있다. 그들이 ‘엄마’라 부르는 기루의 주인 황(반적화)도 젊은 남자들에게 휘둘리며 조금씩 재산을 잃어가는 중이다. 그렇게 근대와 현대 사이 상하이의 돈의 흐름도, 사람들의 정서도 변하고 있는 중이다.

관계의 어긋남이라는 정서, 그리고 촬영과 프로덕션 디자인의 밀도라는 측면에서 〈화양연화〉(2000)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해상화〉는 양조위라는 절대적인 교집합이 있다. 심지어 〈해상화〉의 촬영감독이자 허우샤오시엔의 단짝 촬영감독인 마크 리핑빙을 데려와 촬영한 영화가 바로 〈화양연화〉다. 어쨌거나 양조위는 〈동사서독〉(1994)에서도 아내(유가령)가 황약사(양갸휘)와 바람피우는 것을 겪은 사람이지만, 아무런 화도 내지 않고 언제나 아내가 있는 고향에 돌아가길 원했다. 그랬던 그가 〈해상화〉에서는 온몸을 내던져 있는 힘껏 화를 낸다.

〈해상화〉에서 양조위가 악역을 연기한 것은 아니지만, 돌이켜보면 그에게는 악역을 연기한 경우도 드물고 폭력적인 모습을 드러낸 장면도 드물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암화〉(1998)나 〈무간도3: 종극무간〉(2003) 등 ‘양조위의 악역 연기’가 거론되는 영화들에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가 집어 든 병으로 사람을 내리치는 장면이 삽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무간도3: 종극무간〉에서는 병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아 재떨이에까지 손을 댄다. 그리고 유리병은 아니지만, 〈첩혈속집〉(1992)에서도 언더커버로 출연한 양조위가 경찰인 주윤발의 뒤통수를 총으로 후려치는 장면이 나온다. 양조위라는 배우의 마스크에 악마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그런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타격 행위’가 필수적이라는 듯이 말이다.

이후 양조위의 필사의 질주 장면을 볼 수 있는 〈색, 계〉(2007)에서도 양조위와 탕웨이의 폭력적인 첫 정사 신에서 그가 허리띠를 풀며 채찍처럼 휘두르니, 역시 어떤 강렬한 ‘도구’와 ‘행위’가 필요한 셈이다. 〈상성: 상처받은 도시〉(2006)에 이르러서는 직접적인 폭력 대신 살짝 색깔이 들어간 선글래스를 활용해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는데, 이는 양조위 본인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무간도〉(2002)에서 역시 자기 아이디어로 콧수염을 길렀던 것처럼 말이다. 어쨌든 그는 무엇인가를 더해야만 했다. ‘생얼의 양조위’는 결코 ‘악인’이 될 수 없는 운명이다.

역시 또 흥미로운 사실은, 배우 양조위의 첫 번째 연기 작품이 바로 ‘악역’이었다는 점이다. 무슨 얘기냐면, 어려서부터 친구였던 주성치와 함께 포트폴리오용 영화를 찍을 때, 언제나 주인공을 연기한 주성치의 상대 악역은 양조위의 몫이었다. 1962년 6월 22일생으로 양조위보다 5일 먼저 태어난 주성치는 부모의 이혼과 힘든 가정형편 등 양조위와 공유하는 정서가 많았다. 어쩌면 각자의 상처를 한 명은 극단적인 코미디로 풀어내고, 다른 한 명은 침묵과 우수에 찬 눈빛으로 담아냈는지도 모른다.

당시 홍콩 배우 지망생들의 목표는 단연 TVB 방송국의 ‘예원(연예인)훈련반’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주성치 역시 오디션을 준비하며 양조위와 함께 8밀리 단편영화를 찍기도 했다. 이소룡 같은 액션스타를 꿈꾼 주성치가 연출과 주연을 맡고, 양조위는 상대 악역을 맡아 장난삼아 만든 습작이었다. 훗날 전형적인 무뢰한을 연기한 〈암화〉(1997) 정도를 제외하면 악역과 거리가 멀었던 양조위가, 생애 최초의 연기를 악역으로 시작한 것. 2023년 양조위가 데뷔 40주년을 기념해 개설한 더우인 SNS에 ‘양조위의 인생 역정’이라는 이름의 영상 시리즈를 올린 적 있는데, 거기에는 ‘주성치는 나의 가장 나쁜 친구이자 가장 좋은 친구’라는 제목의 영상도 있다. 당시 그 영화들에 대해서는 “매번 주성치가 주인공을 맡고 나는 대결에 져서 죽는 역할이었다”며 “언젠가 그 필름이 어디 있냐고 물은 적 있는데 모른다고 하더라. 아마도 이제 와 세상 빛을 보는 게 두려워 고이 간직하고 있을 것”이라 했다.

양조위가 할리우드로 건너가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의 빌런을 연기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2021) 이후, 공교롭게도 그는 〈풍재기시〉(2022), 〈무명〉(2023), 〈골드핑거〉(2023)에 이르기까지 연달아 악당을 연기했다. 자신의 연기 인생 후반부에 조연이 아닌 주연급으로 ‘악당 3부작’을 연기한 것은 꽤 의미심장하다. 2023년 제80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평생공로상을 받은 양조위는 리안 감독에게 트로피를 건네받으며 눈물을 쏟았다. ‘강한 것이 오래가는 것이 아니라, 오래가는 것이 진정 강한 것’이라는 진리를 그는 온몸으로 증명했다. 〈해상화〉의 28년 만의 최초 국내 개봉에 이어 〈비정성시〉 재개봉, 그리고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이었던 〈사일런트 프렌드〉도 개봉 대기 중이다. 이제 다시금 그에게서 새로운 모습을 볼 때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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