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속 찍어요, 우리만 할 수 있으니까!” 〈누벨바그〉는 1959년 파리를 배경으로, 당시 프랑스 영화잡지 ‘까이에 뒤 시네마’의 혈기왕성한 젊은 영화평론가였던 장 뤽 고다르(기욤 마르벡)가 세기의 데뷔작이 될 〈네 멋대로 해라〉(1959)를 찍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비포 선라이즈〉(1995)부터 〈비포 선셋〉(2004), 〈비포 미드나잇〉(2013)에 이르기까지 무려 18년에 걸친 ‘비포 시리즈’를 비롯하여, 나이 들어가는 배우들과 함께 무려 12년을 시간을 기록한 전무후무한 프로젝트 〈보이후드〉(2014) 등 자신만의 독보적인 영화세계를 구축해온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아름다운 시간 여행 영화다. 영화는 우리를 단숨에 1959년 파리로 데려간다.

영화에서 눈길을 끄는 건,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각종 촬영 장비들이다. 비싸고 대단해 보여서 눈길을 끄는 게 아니라 ‘저게 가능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신기하게 보인 건, 마치 파리 시내의 쓰레기를 처리하는 소각용 깡통 수레처럼 보이는 장비였다. 1959년작 〈네 멋대로 해라〉에서 미셸(장 폴 벨몽도)과 파트리시아(진 세버그)를 따라 샹젤리제 거리를 좇던 카메라의 실체가 바로 그것이다. 휠체어를 변형한 박스형 카트에 커튼을 씌우고 밀폐한 뒤, 촬영감독 라울 꾸다르(마티외 팡시나)가 들어가 스태프가 밀면서 인물을 카메라에 담는다. 카페와 상점을 따라 줄곧 이어지던 화면은 자연스레 야외로도 이어지며 예술적인 자유와 실험을 가능하게 해줬다. 이처럼 간편하고 조작이 간편한 장비들을 요즘 시선으로 보자면, 일찌감치 스마트폰 촬영 방식을 시도했다고도 할 수 있다. 라울 꾸다르의 핸드헬드 카메라와 함께 프랑스 영화는 마침내 스튜디오에서 벗어나 열린 영화와 조우하게 된다.


〈누벨바그〉에는 당시 프랑스 누벨바그라는 사조를 둘러싼 수많은 실제 인물들이 등장한다. 고다르와 장 폴 벨몽도와 진 세버그는 물론, 고다르의 절친인 프랑스아 트뤼포, 아녜스 바르다. 끌로드 샤브롤을 비롯해 존경하는 선배 감독들인 장 폴 벨몽도와 로베르 브레송도 등장한다. 누벨바그를 추억하는 씨네필들이라면 영화 내내 끊임없이 등장하는 실제 인물들을 보면서 감격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중 가장 눈에 띈 인물은 바로 라울 꾸다르 촬영감독이었다. 그는 1946년부터 11년간 베트남에서 종군사진기자로 일했다. 프랑스가 베트남을 점령했을 때 군사 잡지의 프리랜서 사진작가 일도 하던 중, 프랑스로 돌아와 영화계로 한 발을 내딛게 된다. 사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애초에 염두에 둔 촬영감독이 있었던 고다르는 라울 꾸다르와 일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열렬한 좌파 평론가였던 고다르 입장에서는 프랑스 제국주의 전쟁에서 돌아온 종군사진기자와 일하고 싶지 않았던 것. 하지만 영화에도 나오는 것처럼, 라울에게 큰 빚을 진 제작자 보르가드(브루노 드라이퓌르스트)가 보답하는 차원에서 촬영감독으로 낙점한다.


그러다 보니 ‘도중에 촬영감독이 교체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고다르가 자신이 구상한 장면을 얻기 위해 거침없이 무리한 요구를 하기 시작했는데, 전쟁터에서 오랜 시간 산전수전 다 겪은 라울 입장에서는 그 요구를 거절하는 법 없이 완수해냈다. 당시 영화 촬영장에서는 연속 샷의 노출 차이를 대형 조명 장비 없이는 감당하는 것이 힘들어 보였지만, 라울은 스스로 초점을 맞추는 데 익숙하고 조명 상황이 변할 때 조리개를 조정하는 것 역시 능숙했다. 그래서 휠체어에 앉아 고다르와 단둘이 두꺼운 카메플렉스 35밀리 필름 카메라를 들고 오른손 한 손가락으로 초점을 맞추고, 왼손 검지로 노출을 바꾸며 빛과 어둠의 경계를 넘나드는 급진적인 기법이 가능했다. 이후 그것은 〈쥘 앤 짐〉(1962)의 거리 질주 장면으로도 이어졌다. 그처럼 〈네 멋대로 해라〉 이후 〈여자는 여자다〉(1961), 〈경멸〉(1963) 〈미치광이 피에로〉(1965), 〈주말〉(1967) 등 고다르의 걸작들을 함께 작업했고 〈피아니스트를 쏴라〉(1960), 〈쥘 앤 짐〉 등 프랑스아 트뤼포와도 함께 하며 ‘누벨바그의 심장’이 됐다.

〈누벨바그〉에서 가장 눈길을 끈 건, 라울 꾸다르의 큰 키와 건장한 체격이었다. 그를 사진으로만 접했었기에 정확한 키는 모르지만, 동료 감독들과 함께 있는 사진에서도 딱히 도드라진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그를 연기한 코미디언 겸 배우 마티외 팡시나는 무려 189 센티미터의 큰 키를 가지고 있다. 영화에서 가장 큰 배우라고 해도 된다. 큰 키를 활용한 고공 촬영 장면도 딱히 없는데,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왜 그를 캐스팅했을까. 어쩌면 앞서 얘기한, 카메라를 실은 휠체어 카트에 그가 거의 ‘통아저씨’나 ‘요기다니엘’처럼 구겨져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 장면만으로도 ‘엄청나게 힘들고 기발한 촬영’이라고 느꼈다. 그렇게 앞서 얘기한 ‘깡통 수레’로부터 영화사의 혁명이 시작됐다. 끝으로, 〈누벨바그〉의 결말과 연결지을 수 있는 얘기일 수도 있는데, 라울 꾸다르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네 멋대로 해라〉 촬영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고한 적 있다. “우리는 혁명적인 일을 하고 있다고 느꼈지만, 그 모든 것이 어디로 향하는지 몰랐습니다.”
영화 속 물건들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 ‘주성철의 사물함’을 시작으로 떡상을 기대하는 배우 사용 설명서 ‘김지연의 보석함’, 내 마음을 움직인 영화음악 감상실 ‘추아영의 오르골’, 서브컬처 잡상인의 구매일지 ‘성찬얼의 만화책’까지 씨네플레이 기자들이 저마다의 취향과 시선으로 격주 연재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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