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브컬처라면 환장한다. 영화뿐만 아니라 웹툰,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등 참신한 이야기나 소재, 캐릭터를 다루는 건 일단 살펴본다. 만화책으로 '덕'의 세계를 연 나는 e북으로 만화책을 보고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읽는 ‘애어른’이 됐다. 그치만 혼자 보면 재미가 덜하다. 같이 보면 더 재밌을 것들을 잡덕인의 시선으로 담아 [성찬얼의 만화책]을 그린다.
※ 본문의 이미지는 「여고생 드래곤」 연재 전 공개한 단편에서 가져왔다.
인터넷 커뮤니티가 활성화된 요즘 출판사나 만화사를 통한 정식 등용보다 작가가 직접 웹에 투고를 하다가 데뷔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웹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작가 중 일부는 뭔가 더 연재할 수 있을 내용을 단편으로 만들거나 극초반만 공개함으로써 독자의 기대감과 좌절감을 같이 안겨준다. 독자들은 그런 이들을 ‘1화 빌런’이라고 부른다.
네이버 웹툰에서 땅콩 작가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연재한 「여고생 드래곤」 또한 대표적인 ‘1화 빌런’ 만화였다. 3화까지 공개한 후 긴 시간 연재가 없었는데, 알고 보니 그때부터 이미 박태준 만화회사의 도움으로 연재를 준비하게 됐던 것. 그렇게 웹 커뮤니티에서 네이버 웹툰으로 둥지 튼 〈여고생 드래곤〉은 ‘드래곤’이 된‘여고생’ 김민지의 이야기를 120화로 들려주었다.

내용은 이렇다. 대한민국 여고생 김민지는 어느 날 눈을 떠보니 골드드래곤이 돼있었다. 김민지는 진짜 골드드래곤에게 황금을 바치던 마을의 스미스와 함께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모험을 떠난다. 이렇게 스토리를 요약하면 알 수 있듯 현대 사회의 인물이 중세 판타지로 간다는 '이세계물' 장르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이세계물과 달리 용사도, 마왕도, 병사도, 그냥 인간이 아닌 드래곤이 주인공인 점과 그 내면은 천진난만하기 짝이 없는 여고생이란 점이 「여고생 드래곤」 만의 특색이다.


「여고생 드래곤」은 그 제목에서 주는 느낌처럼 전체적으로 코믹한 감성으로 이야기를 이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보면서 감탄한 부분은 각양각색의 코미디를 적재적소에서 써먹는다는 점이다. 제4의 벽을 허무는 메타 유머, 일반적인 장르의 클리셰를 꼬집는 패러디, 같은 방식을 반복해서 웃음을 유발하는 러닝 개그, 일본식 코미디 만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보케와 츳코미’(바보처럼 행동하는 보케와 이를 지적하는 츳코미를 통한 만담 양식) 등 코미디의 다양한 양식을 활용해 매번 다른 웃음을 유발한다. 여기엔 땅콩 작가의 간결한 표현이 화룡점정인데, 코미디의 이해도만큼 액션과 리액션의 표현이 맛깔나고 컷 곳곳에 숨은 디테일이 돋보인다. 웹툰 하면 떠오르는 총천연색의 화려함이나 스크롤을 이용한 형식미는 없지만 컷과 대사 배치에 능통해 전체적인 내용이 금방 눈에 들어오고 가독성이 좋아 술술 읽힌다. 취향만 맞다면 120화 내내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작품인데, 코미디를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이 현재 필자가 느끼는 가장 큰 아쉬움이다.

그러나 단순히 웃기기만 하다면 「여고생 드래곤」을 이렇게 애호하진 않았을 것이다. 「여고생 드래곤」은 이야기를 쌓아가는 방식이 굉장히 정석적이다. 코믹한 이세계물인 만큼 세계관이 완벽하게 구비돼있진 않다. 그러나 흔히 판타지물에서 통용되는 요소들을 활용하거나 비틀어 독자들이 작품에 쉽게 빠질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중세 판타지 속 모험하면 떠오르는 여러 위기와 다채로운 풍경, 개성 있는 조역들이 에피소드마다 배치해 민지와 그를 ‘뒤앙민크 소울’(대한민국 서울)로 돌려보내려는 일행의 여정에서 새로운 코미디나 향후 스토리로 발전하는 과정은 땅콩 작가가 이 작품을 얼마나 공들였는지 엿보이는 부분이다. 실제로 클라이맥스 연재 당시 많은 독자들이 ‘웃기기만 할 줄 알았는데 이걸 말이 되게 푸는구나’라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여고생 드래곤」엔 심지어 로맨스까지 있다. 매회 보너스컷으로 대한민국 여고생 ‘김민지’가 된 ‘골드드래곤’의 서울 적응기가 1~4컷 정도 그려지는데, 이 부분이 별미다. 본편이 코미디를 이어가며 섬세한 스토리텔링을 선보일 때, 이 보너스 만화는 독자들을 상상하게 하며 웃음을 채운다. 김민지가 인간을 만나며 나름의 생활을 이어가는 과정이 코믹하면서도 은근히 감성적인 부분을 채워준다.

꽤 많은 웹툰을 읽었다고 자부하는 편이지만, 「여고생 드래곤」만큼 본인의 장르를 끝까지 유지하면서 알차게 끝나는 경우는 많지 않아 이렇게 추천작으로 꺼내들게 된다. 단 하나의 흠이라면 누구에게 추천하든지 “네? 제목이 뭐라고요?”라는 반응을 살 수밖에 없는 제목뿐이리라. 아무튼 짧고 굵은 코미디를 원한다면 꼭 한 번 「여고생 드래곤」의 세계에 도전해보시라 강력하게 추천한다. 제목에서 차마 예상하지 못한 판타지 여정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말. 현재 「여고생 드래곤」은 연재를 마치고 10화까지만 무료이고 유료로 서비스 중이다.(매일 1화씩 무료이긴 하다) 혹시 그 때문에 당장 도전하기 어렵다면 지금 연재 중인 땅콩 작가의 신작 「용사생활기록부」를 찍먹해보자. 이번엔 별 볼 일 없는 한 고등학생이 알고 보니 전생에 용사였다는 설정의 성장물(을 빙자한 코미디)이다.
***** 영화 속 물건들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 ‘주성철의 사물함’을 시작으로 떡상을 기대하는 배우 사용 설명서 ‘김지연의 보석함’, 내 마음을 움직인 영화음악 감상실 ‘추아영의 오르골’, 서브컬처 잡상인의 구매일지 ‘성찬얼의 만화책’까지 씨네플레이 기자들이 저마다의 취향과 시선으로 격주 연재를 시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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