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얼의 만화책] 서커스 귀염둥이 도나츠의 ‘행복’한 모험, ‘도나츠와 서커스’

나는 서브컬처라면 환장한다. 영화뿐만 아니라 웹툰,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등 참신한 이야기나 소재, 캐릭터를 다루는 건 일단 살펴본다. 만화책으로 '덕'의 세계를 연 나는 e북으로 만화책을 보고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읽는 ‘애어른’이 됐다. 그치만 혼자 보면 재미가 덜하다. 같이 보면 더 재밌을 것들을 잡덕인의 시선으로 담아 [성찬얼의 만화책]을 그린다.

영화 기자라는 직업에 맞지 않는 소신발언을 하나 하자면, 영화나 드라마보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딱 보자마자 ‘내 스타일’이라고 확신이 들 때가 있다. 무슨 의미냐면, 실재를 담는 영화나 드라마에 비해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작가 혹은 작품이 그릴 세계의 이미지가 작화를 통해 더 강렬하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네이버 웹툰 ‘도나츠와 서커스’도 그래서 보자마자 ‘이거 내 취향일 것 같은데?‘하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직접 본 ‘도나츠와 서커스’는 다른 의미에서 필자의 취향을 저격했지만.

‘도나츠와 서커스’
‘도나츠와 서커스’

2025년 11월부터 연재를 시작해 2026년 3월 완결한 ‘도나츠와 서커스’는 오븐 작가의 데뷔작으로, 케이크 서커스의 일원 도나츠를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주인님', 애플 이모, 파이 삼촌, 소다 언니, 모카 삼촌, 찐빵이와 함께 유랑 서커스 단원으로 살고 있는 도나츠는 아직 재주를 배우지 못해 티켓팔이로 일하고 있다. 매일 재주를 배우고 싶다고 떼를 쓰지만, 다른 일원들은 영 가르쳐 줄 생각이 없다. 그러다 도나츠는 서커스 밖의 세상에 눈을 돌리게 된다.

‘도나츠와 서커스’ 등장인물
‘도나츠와 서커스’ 등장인물

‘도나츠와 서커스’를 보자마자 봐야겠다 싶었던 건 너무나도 귀여운 작화 때문이다. 망충미가 넘치는 강아지 도나츠의 모습은 물론이고 언제나 싱글벙글 웃고 있는 소다, 고양이답게 맨날 틱틱거리면서도 은근 따뜻한 모카, 세상 제일 무서운 야수의 모습을 했지만 소심하기 이를 데 없는 파이, 곰처럼 둔하지 않고 단원들을 통제하며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는 애플까지. 단원들의 캐릭터성과 서커스라는 배경을 은은한 색감으로 한층 더 ‘뽀짝’하게 만든 감각까지. ‘도나츠와 서커스’는 그렇게 서툰 아이의 그림체 같은 동화풍으로 독자의 눈에 콕 들어온다.

그렇지만, 물론 이 글이 소개하는 글이지만, 이쯤에서 바로 웹툰으로 뛰어들어보길 내심 바란다. ‘도나츠와 서커스’는 모를수록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서두에 언급한 작화는, 이 작품에서 반전 포인트다. 작품 속 세계와 도나츠가 바라보는 세계의 간극이 작품 내 작풍의 변화로 일순간 드러날 때, 상상도 못한 충격이 독자의 머리를 내려친다. 사실 서커스 단원들은 동물이 아니다. 동물이 사람처럼 사는 환상적인 세계가 아니다. 극초반부에 드러나는 내용이지만 이들은 모두 ‘주인님’이란 존재에게 통제당하고 있는 인간이다.

‘도나츠와 서커스’ 사실은 소개글부터 비밀이 있다 (왜 갈이 가ㄹ일까)
‘도나츠와 서커스’ 사실은 소개글부터 비밀이 있다 (왜 갈이 가ㄹ일까)

그렇다, ‘도나츠와 서커스’는 이렇게 귀염뽀짝한 작화를 했지만 실상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차용하고 있다. 귀여운 혹은 순수한 인상의 작화와 이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세계의 간극, ‘도나츠와 서커스’는 어쩌면 뻔할지도 모르는 클리셰를 작화로 파훼한 후, 잔혹동화로 완성한다. 동물의 탈을 쓴 주인공들 또한 이런 반전의 장치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인외 존재에게 통제당하며 탈을 쓰고 사는 주인공 일행은 곧 피지배에 놓인 순간의 공포를 한층 더 강화한다. 한편으론 인류가 수많은 동물을 이기적인 이유로 소비하는 자태를 풍자하는 모습으로 읽히기도 한다.

이런 저런 웹툰을 챙겨보는 입장에서 ‘도나츠와 서커스’는 오랜만에 웹툰이 아닌 만화의 본질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인기작 스타일에 답습하지 않고, 그렇다고 빼어난 작화나 서사에만 몰두하지 않았다. 세계의 이미지를 담는 작화를 통해 반전 서사와 작품을 본질을 전하는 ‘도나츠와 서커스’는 만화 역시 작가의 것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이런 스타일이 오히려 산만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강렬한 이미지를 제시한 후 더 설명해야 할 무언가를 뒤로 미루는 방식은 즉각적인 전개를 바라는 독자에겐 장벽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건 적어도 완결난 지금, 몰아보기가 가능한 지금 시점에선 ‘도나츠와 서커스’의 스타일은 다음 편을 무조건 볼 수밖에 없는 최고의 장치라고 생각한다.

‘도나츠와 서커스’ 이렇게 귀여운 도나츠의 모험이 궁금하지 않으신지.
‘도나츠와 서커스’ 이렇게 귀여운 도나츠의 모험이 궁금하지 않으신지.

‘도나츠와 서커스’는 현재 22화로 막을 내렸다. 하루도 아니고 반나절 정도의 시간만 들이면 희망과 체념이 뒤섞인 눅진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동화를 만날 수 있다. 부디 이 귀여운 도나츠가 묘기를 배우게 될지, 이 말도 안 되는 세상에서 단원들과 어떻게 살아날지 함께 지켜보고 응원해주길. (그리고 부디 오븐 작가가 빠른 시일 내에 새로운 이야기로 돌아오길 함께 응원하자)

영화 속 물건들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 ‘주성철의 사물함’을 시작으로 떡상을 기대하는 배우 사용 설명서 ‘김지연의 보석함’, 내 마음을 움직인 영화음악 감상실 ‘추아영의 오르골’, 서브컬처 잡상인의 구매일지 ‘성찬얼의 만화책’까지 씨네플레이 기자들이 저마다의 취향과 시선으로 격주 연재를 시작합니다.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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