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아영의 오르골] 종말 앞 인간의 떨림을 전한 '프로젝트 헤일메리'와 ‘Sign of the Times’

〈프로젝트 헤일메리〉 스트라트
〈프로젝트 헤일메리〉 스트라트

전 세계가 직면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지휘하는 총괄 책임자 에바 스트라트(산드라 휠러). 그녀는 광막한 우주로 팀원을 떠나보내기 전 마지막 파티에서 노래를 부르며 작별을 고한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항상 냉철한 태도를 유지했던 스트라트는 작별의 순간만큼은 진심을 내보인다. 하지만 그녀가 부른 해리 스타일스의 노래 ‘Sign of the Times’는 극 중에서 작별 이상의 의미로 작용한다. 본래 앤디 위어의 원작에는 없었던 이 장면은 영화 속에서 에바 스트라트의 숨겨진 인간적 고뇌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동시에 서로 닫힌 마음을 열어야만 종말을 피할 수 있다는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철학적 핵심을 압축하고 있다.


절망과 희망의 공존

‘Sign of the Times’

'Sign of the Times' 앨범 커버, 해리 스타일스


해리 스타일스의 솔로 데뷔 싱글 ‘Sign of the Times’는 원 디렉션 시절의 밝고 경쾌한 팝 사운드와 완전히 다른 느낌의 장중한 록 발라드로 그의 새로운 얼굴을 드러낸다. 해리 스타일스는 2010년대 중반 유럽을 뒤덮은 테러와 2016년 브렉시트와 같은 일련의 사건을 겪은 후 이 곡을 구상했다. 정치적 테러와 ‘하나의 유럽’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가 무너지는 사태를 직접 목도한 그는 혼란과 갈등을 반복하는 인류에게 필요한 말을 떠올린다. 이미 발사되어 돌이킬 수 없는 총알처럼 예정된 종말로부터 “우린 벗어나야 한다”는 말을. 스타일스는 인터뷰에서 “‘Sign of the Times’는 우리가 힘든 시기를 겪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며, 마지막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고 밝혔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는 종말을 피할 길이 없다는 경고에 가까운 이 곡은 사실 그의 양가감정을 담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그의 양가감정은 종말론적인 태도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부정을 딛고 긍정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는 무너지는 시대를 통과하는 자신의 불안과 체념을 말하면서 동시에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은 위로를 전한다. ‘Sign of the Times’는 서로를 이해하지 않는 시대의 절망 속에서 기대할 수 없는 미래의 희망을 그럼에도 애써 붙잡아 보려는 선각자의 마지막 외침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 〉 스트라트
〈프로젝트 헤일메리 〉 스트라트
〈프로젝트 헤일메리〉 스틸컷
〈프로젝트 헤일메리〉 스틸컷

극 중에서 산드라 휠러에 의해 다시 불린 ‘Sign of the Times’는 인물 스트라트의 냉정을 잠시나마 허물고, 서로를 향한 연민을 끌어올려 감정을 절정으로 향하게 하는 통로가 된다. 동시에 이 장면은 영화가 끝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동독 청소년 합창단 출신인 스트라트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고 독일이 통일되는 시대의 거대한 변화를 마주한 인물이다. 시대의 조류에 휩쓸려 운명이 뒤바뀐 한 명의 개인인 스트라트는 이후 평화로워진 세계를 꿈꿨을 테지만, 그 꿈이 좌절당한 개인이다. 국경, 인종, 종교, 이념 등에 의해 사람들이 갈라지는 갈등은 이후에도 반복되었고, 이를 숱하게 목격해 온 그녀는 ‘Sign of the Times’의 화자와 비슷한 시선을 공유한다. 스트라트는 이해와 소통에 기반한 근본적인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또다시 시대를 무너트리는 갈등은 일어날 거라는 걸 그녀는 이미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놓지 않는다.

〈프로젝트 헤일메리〉 스틸컷
〈프로젝트 헤일메리〉 스틸컷


극중 야오 선장이 부른 노래에 주목하면, 스트라트의 진의를 더 알 수 있다. 스트라트가 노래를 부르기 직전, 야오 선장은 스콜피온의 ‘Wind of Change’를 부른다. 야오 선장과 ‘Wind of Change’의 화자, 그리고 스트라트와 ‘Sign of the Times’의 화자는 같은 상황을 바라보지만, 상반된 시선을 갖는다. 냉전 시대의 종식과 더불어 독일 통일의 상징 곡이 된 ‘Wind of Change’는 평화를 노래하지만, 시대의 변화 자체를 긍정하는 낙관주의적인 곡이기도 하다. 야오 선장 또한 인간의 발전된 과학 기술로 범우주적 재난의 상황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 낙관주의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영화는 광막한 우주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야오를 보여줌으로써, 종말을 앞둔 상황에서 인간의 과학 기술만으로는 긍정적인 변화를 이룰 수 있을 거라는 섣부른 낙관을 허락하지 않는다. 스트라트의 ‘Sign of the Times’는 야오의 낙관적인 긍정이 아닌 부정을 딛고 일어선 긍정으로 절망 속에서 희망을 말한다. 단순한 작별 인사처럼 보였던 스트라트의 노래는 사실 끝을 말하는 것이 아닌 끝 앞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그녀의 외로운 의지였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 ‘Sign of the Times’는 범우주적 재난의 상황, 누군가의 생존과 희생이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이 세계에서 거대한 사건을 설명하기보다, 그 한가운데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선 인간의 떨림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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