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아영의 오르골] 비애와 희망의 공존 '슈퍼 해피 포에버'와 ‘Beyond The Sea’

나는 영화 속 음악에 꽂힌다. 음악은 때때로 보이는 이미지와 들리는 대사만으로는 다 전할 수 없는 인물의 내밀한 감정을 들려준다. 창작자의 숨은 의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구가 되기도 한다. 내게 영화 음악을 이해하는 것은 영화에 가닿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추아영의 오르골’은 음악을 경유해 영화의 목소리를 더 가까이에서 들어본다. (P.S. 음악을 들으며, 글을 읽어 주기를 바란다.)

〈슈퍼 해피 포에버〉 사노와 나기
〈슈퍼 해피 포에버〉 사노와 나기

사노(사노 히로키)는 자연스레 대화를 주고받는 사람들 속에서 홀로 있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고, 대화의 흐름을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가거나 제멋대로 중단하기도 한다. 그렇게 시큰둥한 태도로 일관하던 그는 얼마 전 아내를 잃은 사실을 덜컥 털어놓는다. 아내의 죽음을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슬픔이 맺혀 있지 않다. 그는 그저 과거에 일어난 하나의 사건을 열거하듯 무덤덤하게 말한다. 그리고 이내 돌아온 위로의 말마저 부인한 채 자리에서 빠져나오고, 사람들 앞에 서서 바비 다린(Bobby Darin)의 재즈 팝 ‘Beyond The Sea’를 부른다. 음악의 밝은 멜로디는 불통의 상황, 인물의 감정 어느 것에도 들어맞지 않고, 영화에 이질적인 순간을 만들어낸다. 〈슈퍼 해피 포에버〉는 이 아이러니한 감각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 노래는 감정적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또 하나의 말이다. 좀처럼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려 하지 않았던 사노는 이 노래로 어떤 마음을 열어 보이고 싶었을까.

〈슈퍼 해피 포에버〉
〈슈퍼 해피 포에버〉

〈슈퍼 해피 포에버〉는 아내를 잃은 남자가 서로 함께했던 눈부신 여름과 사랑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다. 사노는 아내 나기(야마모토 나이루)를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던 해안 휴양지의 호텔로 다시 돌아온다. 그곳에서 그는 나기가 5년 전에 잃어버린 빨간 모자를 찾기 위해 호텔과 주변을 배회하지만, 이미 많은 시간이 흐른 탓에 찾을 수 없다. 사람들의 발길로 붐볐던 호텔도 곧 문을 닫는다. 그렇게 사라져 버린 상실의 흔적을 따라가던 영화는 나기가 살아 숨 쉬던 5년 전의 과거로 이어진다.

〈슈퍼 해피 포에버〉 나기와 안(뒤편)
〈슈퍼 해피 포에버〉 나기와 안(뒤편)

이가라시 고헤이 감독은 여타의 영화와 달리 과거와 현재를 플래시백 없이 잇는다. 베트남 여성 안(호앙 느 꾸잉)이 호텔 객실을 청소하며 ‘Beyond The Sea’를 흥얼거린다. 안의 노래는 사노에게 즉각적으로 프루스트 효과를 일으키며 나기와 함께했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나기와의 추억이 얽혀 있는 담뱃갑을 객실의 문틈에 끼워 둔 채 그녀의 노래를 듣는다. 이때 카메라가 천천히 옆으로 패닝하고, 나기가 체크인하는 5년 전 과거의 순간이 되살아난다. 이가라시는 과거와 현재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플래시백을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과거와 현재의 구분을 무화한다. 여기서 바비 다린의 음악 ‘Beyond The Sea’는 소품인 담뱃갑과 함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역할을 한다.

바비 다린
바비 다린

바비 다린이 부른 ‘Beyond The Sea’는 로큰롤 시대에 스윙 재즈의 본질을 되살린 1959년의 기념비적인 곡이다. 샤를 트르네(Charles Trenet)의 샹송 ‘La Mer’(바다)을 번안한 곡으로 4,000여 버전으로 녹음된 커버 곡 중 가장 유명한 베스트셀러다. 이가라시는 끊임없이 불려 온 이 곡을 영화의 핵심적인 음악으로 사용하면서 곡의 역사성과 과거의 잔향을 영화에 덧입힌다. ‘Beyond The Sea’는 본래 원곡에서는 바다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관조적인 곡이었으나 잭 로렌스(Jack Lawrence)의 가사가 새롭게 붙으면서 멀리 떨어진 연인을 향한 그리움, 연인과의 재회를 소망하는 곡으로 재탄생했다. “바다 너머 어딘가 나를 기다리는 그곳에 내 사랑이 황금빛 모래 위에 서 있어요. 그리곤 항해하는 배들을 바라보죠. 바다 너머 어딘가에서 그녀는 거기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요. 높은 하늘의 새들처럼 날 수만 있다면 곧장 그녀의 품으로 항해하리라”. 곡의 애달픈 가사는 사랑하는 아내 나기를 잃은 사노의 비애를 대신 전달한다. 또한 이가라시는 노래의 가사에서 전해져 오는 추상적인 감정을 영화의 이미지로 형상화해서 전달한다.

〈슈퍼 해피 포에버〉
〈슈퍼 해피 포에버〉

바비 다린의 ‘Beyond The Sea’는 우아한 샹송을 빅밴드로 편곡해 스윙 재즈의 느낌을 물씬 풍긴다. 바다와 시간, 운명이 두 연인 사이를 갈라놓는 것을 전제로 한 슬픈 가사와 달리 스윙 댄스를 부추기는 스윙 멜로디의 대비가 두드러진다. 이러한 대비는 슬픔을 슬프지 않게 노래하는 아이러니를 자아내며, 이 아이러니 속에서 화자의 슬픔과 그리움은 경쾌한 춤으로 승화된다. 비애와 희망적인 낙관이 공존하는 ‘Beyond The Sea’의 독특한 정조는 상충하는 것이 공존하는 〈슈퍼 해피 포에버〉의 세계와 닮아 있다.

〈슈퍼 해피 포에버〉
〈슈퍼 해피 포에버〉

이가라시 고헤이는 영화의 초반부에 카모노 초메이의 「호조키」(방장기)를 인용하면서 영화의 주제 의식을 드러낸다. “흘러가는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하물며 원래의 그 물이 아니다. 웅덩이의 물거품은 사라지고 또 맺히니 오래 그대로인 법이 없다. 세상의 사람들과 그들의 거처 또한 그와 같다”. 카모노 초메이의 철학적 인식은 고정된 영원성이 아닌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존재의 본질을 탐구한다. 〈슈퍼 해피 포에버〉의 세계도 이와 공명한다. 아내 나기를 상실한 사노의 현재와 나기가 살아 있는 과거를 구분하지 않는 영화의 구성은 비애와 사랑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또한 나기의 모자가 안에게 주어지는 영화의 결말도 소멸된 나기의 삶이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안에게 전이됨으로써 순환되는 삶을 드러낸다. 이처럼 〈슈퍼 해피 포에버〉는 상충하는 것의 공존으로 ‘영원한 행복’이라는 허상을 무너트리는 아이러니의 예술이다. ‘Beyond the Sea’와 〈슈퍼 해피 포에버〉의 아이러니는 삶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 바다 너머 어딘가에서 우리와 공존하고 있으리라는 믿음을 여운으로 남겨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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