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장 스탠리 큐브릭의 호러 명작 〈샤이닝〉이 올겨울 다시 돌아왔다. 〈샤이닝〉은 겨울철 외딴 호텔에서 욕망과 광기에 휩싸인 남성 잭이 점점 미쳐가다 가족을 위협하면서 엄습해오는 공포를 그린다. 이 〈샤이닝〉의 공포는 스탠리 큐브릭의 정교한 연출과 시종 불쾌함을 자아내는 영화의 음악이 함께 빚어낸다. 〈샤이닝〉의 음악은 한 명의 음악 감독이 오리지널 스코어를 만드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작업하지 않았다. 큐브릭이 기존의 클래식 곡을 대다수 선곡했고, 웬디 카를로스가 일부 음악을 편곡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그중 폴란드 작곡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의 음악은 큐브릭이 의도한 미지의 공포를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한다. 멜로디가 아니라 음향 자체의 파괴력에 주목한 그의 음악은 관객이 멜로디를 통해서 감정 이입에 빠지게 하는 것이 아닌 소리의 덩어리로 공포 그 자체를 느끼게 한다. 또 특정 인물의 테마를 들려주는 대신 오버룩 호텔이라는 영화의 공간 자체를 살아 있는 존재처럼 묘사하면서 영화의 정치성을 함께 끌어올린다. 영화 속 펜데레츠키의 곡을 따라가다 보면 스탠리 큐브릭이 의도한 주제인 백인 남성 예술가의 모순과 미국의 인종·가부장·식민주의의 폭력을 마주할 수 있다.
폴란드 아방가르드 대표 작곡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

펜데레츠키는 1960년대 폴란드 아방가르드의 대표 작곡가로 떠올랐다. ‘히로시마 희생자에게 바치는 애가’(Threnody to the Victims of Hiroshima), ‘성 루카 수난곡’(St Luke's Passion)처럼 전쟁과 수난, 종교를 다루는 거대한 작품들로 유명하다. 이를 주로 멜로디가 아니라 음향 덩어리로 표현하는데, ‘음괴’(Cluster, 반음 간격으로 빽빽이 겹친 음들을 여러 음으로 동시에 내서 만든 ‘소리 덩어리’. 피아노 건반 여러 개를 한꺼번에 치거나, 여러 현악기가 서로 아주 가까운 음을 동시에 연주할 때 나는 두꺼운 소리를 말한다), 글리산도(음이 미끄러지듯 위아래로 이동하는 주법), 스크래치(현을 문질러 잡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는 연주법)와 같은 요소들을 거듭 사용하면서 폭발, 비명, 거대한 울림에 가까운 음악을 만든다. 이런 펜데레츠키의 음악은 유럽과 미국에서 홀로코스트와 전쟁 트라우마를 다루는 작품들과 연결되어 논의됐다. 큐브릭은 이 점을 활용해 미국의 폭력적인 역사를 드러낸다.
폭력성의 음향화

펜데레츠키의 곡 ‘소리의 본질에 관하여 1’(‘De Natura Sonoris No. 1’)은 대니가 트라이시클을 타고 호텔을 탐험할 때 나온다. 음악은 현·금관·타악·피아노·하모니움 등의 대규모 편성 오케스트라를 동원해 폭발적 음괴와 타악 충돌을 그린다. 곡의 불규칙한 타악과 음괴는 휙휙 바뀌는 카메라 구도, 추상적인 카펫 패턴과 어우러져 호텔 복도를 출구를 알 수 없는 미로처럼 보이게 한다. 펜데레츠키의 음악 ‘소리의 본질에 관하여 1’은 그 미로를 소리로 형상화한다.

웬디와 잭의 대립이 극에 달하는 시퀀스는 펜데레츠키의 대표곡 ‘다형성’(‘Polymorphia’)이 어우러져 극도의 서스펜스를 자아낸다. 이 곡은 웬디가 야구 배트를 들고 계단을 오르며 잭과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에서 등장하는데, 버르토크의 ‘현악, 타악기와 첼레스타를 위한 음악 3악장’과 곡 ‘다형성’의 조각들이 교차해서 들어간다. 겁에 질린 웬디가 한 계단씩 뒤로 물러날 때마다 현악 클러스터가 조금씩 솟구치고 다시 가라앉는다. 계단의 높이와 인물의 호흡, 음악의 크레셴도가 한 몸처럼 맞물리며 심리적 공포감을 조성한다.


바로 다음 식료품 실 대치 장면에서도 ‘다형성’이 이어진다. 웬디는 잠시 정신을 잃은 잭이 다시 깨어나 광기에 휩싸이기 전에 식료품 실에 그를 가둔다. 정신을 차린 잭은 식료품 실의 문을 열기 위해 웬디를 회유하고, 동정을 구한다. 그리고 이내 그녀를 협박하고, 조롱하면서 심리적으로 압박한다. 이때, ‘다형성’의 중반부 현악 클러스터가 밀도를 높이며 장면에 깔린다. 잭의 가부장적인 언어폭력과 현의 소리가 결합하며 비명을 내지른다. 본래 ‘다형성’은 특별한 조성이 없는 무조 음악으로 여러 음들이 마찰하며 거친 질감을 만들어내다가 끝부분에 갑자기 C장조 화음을 등장시켜 끝내는 구조로 악명이 높다. 큐브릭은 이 해소의 구간을 덜어냄으로써 가부장적인 사회 아래에서 여성이 느끼는 공포를 해소 없는 불안으로 남겨둔다. 이후 ‘다형성’은 잭이 할로랜을 도끼로 찍어 살해하는 장면 직후에 다시 등장해 미국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백인이 흑인에게 행사한 폭력을 연상시킨다.

영화가 끝나도 펜데레츠키의 음악은 잭의 광기 어린 얼굴과 함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오버룩 호텔의 복도와 미로를 떠돌던 소리는 계속해서 잔향을 남긴다. 그리고 그 잔향에서 떠나지 못하는 우리는 묻게 된다. 잭을 삼켜버린 호텔의 유령은 초자연적인 존재일까, 아니면 미국이 되풀이해 온 역사와 폭력일까. 펜데레츠키의 음악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설명하지 않고 청각적 불편함으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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