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은 3월이 설렘 혹은 불안의 시기였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학창시절, 새로운 학기가 시작될 때면 어떤 친구들과 같은 반이 될지, 그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을지 미지의 영역으로 걸어가야만 했다. 특히 그런 시기에 누군가의 옆자리에 앉는다는 건 어쩌면 세상을 바뀌는 경험이 되기도 한다. 후지치카 코우메의 「좋아하는 애가 안경을 깜박했다」가 바로 그런 순간을 맞이한 중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좋아하는 애가 안경을 깜박했다」, 일명 ‘안경깜빡’이라고 불리는 이 만화는 2018년부터 2024년까지 연재했다. 장르를 따지면 로맨스이자 코미디인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전자에 무게가 실린다. 평범한 중학생 코무라 카에데는 2학년이 되면서 미에 아이의 옆자리에 앉게 된다. 미에 아이는 지극히 시력이 좋지 않아 안경을 쓴 여학생인데, 잠이 많고 덤벙대는 성격 탓에 자주 안경을 놓고 온다. 코무라는 안경을 놓고 와 당황하는 미에를 도와주며, 미에에 대한 마음을 커져만 간다.
수많은 청춘로맨스에서 ‘안경깜빡’의 묘미는 너무나도 순수하다는 점에 있다. 「장난을 잘 치는 타카기 양」을 필두로 시작된 ‘요망물’ 사이에서 ‘안경깜빡’은 두 사람이 우연치 않게 가까워지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감정을 깨닫는 과정을 첫사랑이란 테마에 맞춰 섬세하게 그려낸다. 연재 초반만 해도 ‘안경을 놓고 온 미에를 코무라가 돕는다‘는 패턴이 반복돼 금방이라도 조기 완결이 될까 걱정까지 들었는데, 미에가 코무라에 대한 마음을 깨닫는 순간부터 작품은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는 되는 중학생 두 사람의 심리를 조심스럽고 세심하게 담아내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자극적인 전개나 복잡한 인물 구성을 거듭하는 여타 청춘물과 달리 ‘안경깜빡’은 코무라와 미에 두 사람의 관계에만 집중하며 첫사랑의 감수성을 담아내는 데 집중한다.


그런 ‘안경깜빡’의 달달함에 한몫하는 건 후지치카 코우메의 작화다. 그의 작화 스타일은 인물을 둥글게 그리는 편인데, 그것이 ‘안경깜빡’의 장르와 잘 맞아 떨어진다. 이런 동글동글한 그림체에 놓치기 쉽지만 주변 배경의 공간감이나 인물의 의상 등을 보면 묘사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실력자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유독 인물만큼은 사실적인 표현이 아니라 특유의 스타일로 그려내면서 현실적인 감각과 이 작품만의 몽글몽글한 감성이 공존하게 된다. 슥슥 그려냈을 것 같은 느낌과 달리 인물의 표정 묘사가 뛰어나고, 특히 눈을 굉장히 세심하게 그려내 감정선을 파악하는 것이 쉬울 정도.

또 대부분의 로맨틱코미디와 다르게 불균형의 로맨스가 아니란 것도 이 만화의 특징이다. 인싸/아싸, 미남미녀/평범남, 모범생/불량아 등 대비되는 요소를 강조해 서로가 이어지는 과정의 묘미를 전하는 방식이 일반적인데 ‘안경깜빡’은 두 주인공 모두 성심성의껏 학교생활을 하는 평범한 학생들이란 것에서 독자에게 안정감을 준다. 물론 그만큼 다른 작품과 비교하면 도파민은 부족하지만, 반대로 몰입력이나 공감대는 그보다 훨씬 뛰어나다. 미에을 좋아하는 만큼 스스로 부족한 면만 보는 코무라의 모습이나 처음엔 그저 좋은 친구였지만 점차 자신의 마음을 깨닫는 미에의 심리는 모두 두 사람의 일상에서 묘사되기에, 중학생의 첫사랑이란 풋풋한 매력을 더욱 배가한다.


2024년에 완결한 「좋아하는 애가 안경을 깜박했다」는 우리나라에서 대원씨아이를 통해 총 12권으로 발간됐다. 코무라와 미에의 소박한 장난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로맨스는 단언컨대 당이 떨어진다 싶을 때 봐도 좋을 정도로 달달하고 또 순수하다. 도파민 팡팡 터지는 수많은 콘텐츠에서 잠시 눈을 돌려 이처럼 풋풋한 소년소녀의 첫사랑으로 은은한 미소를 띠는 것, 봄에 알맞은 즐거움일 것이다. 아참, 참고로 2023년에 애니메이션화돼 방영한 바 있다. 그러나 후지치카 코우메의 작화 스타일과 완전히 다른 날카로운 화풍을 채택해 팬들에게 아쉬운 반응을 샀다. 필자 또한 안 봤으니 속단할 수 없지만, 후지치카 코우메의 작화가 매력적인 만큼 가급적이면 원작 만화로 봐주길 추천한다.

영화 속 물건들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 ‘주성철의 사물함’을 시작으로 떡상을 기대하는 배우 사용 설명서 ‘김지연의 보석함’, 내 마음을 움직인 영화음악 감상실 ‘추아영의 오르골’, 서브컬처 잡상인의 구매일지 ‘성찬얼의 만화책’까지 씨네플레이 기자들이 저마다의 취향과 시선으로 격주 연재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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