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브컬처라면 환장한다. 영화뿐만 아니라 웹툰,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등 참신한 이야기나 소재, 캐릭터를 다루는 건 일단 살펴본다. 만화책으로 '덕'의 세계를 연 나는 e북으로 만화책을 보고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읽는 ‘애어른’이 됐다. 그치만 혼자 보면 재미가 덜하다. 같이 보면 더 재밌을 것들을 잡덕인의 시선으로 담아 [성찬얼의 만화책]을 그린다.
시간은 인간에게 상상력의 보물창고다. 인류의 기나긴 역사와 고도화된 현대 과학에서도 시간은 여전히 정복 불가능의 영역이기에, 시간에 관한 창작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전히 쏟아지고 있다. 미래로 가거나 과거로 가는 ‘타임 슬립’이 가장 전통적인 소재였다면, 지금은 등장인물이 특정 시간대에 갇히게 된 ‘타임 루프’가 가장 인상적인 작품을 남기곤 한다. 영화로 치면 〈사랑의 블랙홀〉(1993), 〈엣지 오브 투모로우〉(2014) 등이 있다. 이번에 소개할 웹툰 ‘오늘만 사는 기사’ 역시 이 타임 루프물을 획기적으로 사용한 사례이다.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 중인 ‘오늘만 사는 기사’는 소울풍 작가의 동명 웹소설을 이현민(~88화)·가나라 작가가 각색하고 이안 작가가 그림을 맡아 옮겼다. 이야기는 다소 심플하다. ‘미치광이 분대’의 분대장 엔크리드가 전쟁의 한복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그날을 반복하며 산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꿈인 줄만 알았던 엔크리드는 전장에 나서지만 상대의 실력을 뛰어넘지 못하고 다시 죽음을 맞이한다. 거듭되는 죽음 끝에 그는 이 ‘벽’을 뛰어넘기 위해 하루를 정확하게 준비해간다.


‘오늘만 사는 기사’는 이 구성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하나의 위기를 봉착한 엔크리드가 같은 날을 반복하는 ‘저주’ 속에서 어떻게든 온몸 비틀기로 위기를 극복한다. 그럼에도 강자들이 널리고 널린 세상, 평생을 노력했지만 평범한 실력의 엔크리드는 다른 전장에서 또 죽음을 수십 번 감당하며 하루를 살아내야만 한다. 그렇게 거듭 위기에 마주하는 엔크리드가 한때 꿈이었으나 포기했던 ‘기사’로 나아가는 과정이 이 웹툰의 핵심이다.
이 세계에서 기사는 단순히 가문이나 품행으로 부여되는 호칭이 아니다. 웬만한 실력자를 뛰어넘는, 일당만의 고수만이 갖는 명예이자 호칭이다. 그런데 엔크리드는 자타 공인 재능이 없다. 스스로도 재능이 없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고, 작중 그의 분대원들 모두 그가 재능이라곤 바닥 수준인 것을 알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엔크리드이기에, 죽음의 공포에 굴복하지 않고 위기를 헤쳐간다. 이미 재능이 없기에 엔크리드는 꾸준한 노력으로 살아왔고, 그것이 죽는 날의 반복에서도 실력이 아니라 꾸준함으로 극복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한다. 이 지점이 ‘오늘만 사는 기사’의 맛이다.



요즘 판타지물을 대표하는 단어를 고르라면 아마도 이세계, 먼치킨, ‘힘숨찐’(힘을 숨긴 찐따)일 것이다. 주인공의 존재감이나 실력으로 초반에 강력한 임팩트를 남겨 독자들을 잡아두는 것이 흥행에 도움이 되니까. 그런 면에서 프롤로그부터 냅다 죽고, 또 죽고, 또 죽는 엔크리드는 오히려 근래 볼 수 없는 근성형 주인공을 연상시켜 눈길을 끈다. 그렇다고 엔크리드가 마냥 모범적인 주인공은 아니다. 어떻게 일반적인 사람이 수십 번의 죽음 앞에서도 “다시”를 외칠 수 있겠는가. 재능 없이도 전장에 설 수 있었던 엔크리드의 노력은 사실상 광기에 가까워서 위기를 만날 때마다 강해질 수 있는 기회라며 눈이 은은하게 돌아버린다. 단순한 노력파, 실력파의 구분을 넘어선 엔크리드의 존재감은 이 웹툰의 핵심 재미, ‘둔재가 어떻게 수많은 천재를 넘어설 것인가’에 흥미를 잃지 않도록 한다.
결과적으로 ‘오늘만 사는 기사’는 웹툰이지만 현재 게임계에서 마니악한 팬덤이 있는 ‘소울라이크’를 닮아있다. 소울라이크는 프롬 소프트웨어에서 발매한 ‘데몬즈 소울’과 ‘다크 소울’ 시리즈를 중심으로 확산된 장르인데, 수많은 적과 함정을 숨겨진 레벨을 클리어해가는 것이 포인트이다. 때문에 맨몸 박치기로 흔히 ‘억까’ 당하며 수십 회 죽어가면서 클리어하는 장르인데,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 본인이 체득하고 성장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높은 난도와 파악하기 어려운 위기를 간신히 돌파했을 때 오는 쾌감으로 게이머들 중 특히 고인물이 많은 장르로도 유명한데, ‘오늘만 사는 기사’의 엔크리드가 겪는 일련의 과정은 소울라이크 플레이어가 겪는 것과 유사하다 볼 수 있다. 반면 플레이어가 게임을 하며 받는 스트레스가 없이 등장인물이 그 과정을 진행하는 방식이기에 소울라이크의 단점을 줄이고 쾌감의 결정체를 남겨놓은 개량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고 ‘오늘만 사는 기사’가 매번 죽을 위기에서 오는 긴장감만 있는 건 아니다. 엔크리드가 이끄는 ‘미치광이 분대’의 분대원들은 제각각 주특기가 있는 최고의 군인들인데, 그 강한 실력과 에고 덕분에 서로 매번 티격거린다. 그런 미치광이들이 엔크리드를 신뢰하고 육성(?) 하는 과정에서 온갖 코미디와 개그가 작품의 분위기를 환기한다. 뿐만 아니라 미남인 엔크리드가 실력자가 돼가면서 주변의 여성 캐릭터와 엮이는 과정은 (엔크리드가 이성에게 전혀 관심이 없으므로) 러브 없는 러브코미디의 재미까지 안겨준다.
‘오늘만 사는 기사’는 7월 3일 기준 시즌 1의 마침표를 찍고 휴재에 들어갔다. 총 112화로 구성된 이야기는 분명 1회를 보기 시작하면 금방 끝까지 달릴 수 있을 정도도 흡입력이 있다. 특히 이안 작가의 작화가 근래 상향 평준화된 웹툰 시장 기준으로도 무척 깔끔하고 묘사력이 좋기 때문에 작화 보는 맛에라도 스크롤이 휙휙 내려갈 것이다. 중세 판타지 장르이지만 양산형 판타지 세계관에 머무르지 않고 독자적인 세계관 설정도 꽤 매력적이니 그 부분도 감상 포인트 중 하나. 시즌 2가 시작되기 전에 정주행한다면, 인생에 기다리는 즐거움이 하나 더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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