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화 속 음악에 꽂힌다. 음악은 때때로 보이는 이미지와 들리는 대사만으로는 다 전할 수 없는 인물의 내밀한 감정을 들려준다. 창작자의 숨은 의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구가 되기도 한다. 내게 영화 음악을 이해하는 것은 영화에 가닿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추아영의 오르골’은 음악을 경유해 영화의 목소리를 더 가까이에서 들어본다. (P.S. 음악을 들으며, 글을 읽어 주기를 바란다.)

제인 숀브런 감독의 영화 〈빛나는 TV를 보았다〉는 90년대 미국 대중문화에 관한 향수와 성 정체성의 혼란을 기괴하면서도 아름답게 버무린 수작이다. 영화는 어린 시절 매료된 미디어 속 캐릭터를 통해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한 단서를 찾았던 때를 떠올리게 하며 향수를 자극한다. 동시에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자신과 현재의 나 사이의 불일치를 깨닫게 하며 그리움과 슬픔을 불러온다. 영화에 삽입된 음악 ‘17세 소녀를 위한 찬가’(Anthems for a Seventeen-Year-Old Girl)는 이러한 영화의 핵심 정서를 담고 있다. 숀브런의 〈빛나는 TV를 보았다〉와 음악 ‘17세 소녀를 위한 찬가’는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고통스러운 각성의 감각을 공유한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 오언(저스티스 스미스, 이언 포먼)은 우연히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TV 공포 드라마 ‘핑크 오페이크’의 예고편을 본다. 그는 단번에 핑크 오페이크에 빠져들지만, 아버지의 강한 통제로 인해 보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오언은 핑크 오페이크에 매료된 소녀 매디(잭 헤이븐)를 만나면서 부모의 통제에서 벗어난다. 매디의 집에서 처음으로 핑크 오페이크를 함께 시청한 이후 오언은 매디가 녹화해 준 테이프를 통해 핑크 오페이크를 계속 접하며 그 세계관에 깊이 빠져든다. 그는 핑크 오페이크를 통해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해 나간다.

싱가포르 아티스트 율(yeule)이 커버한 캐나다의 인디 록 밴드 브로큰 소셜 신(Broken Social Scene)의 음악 ‘17세 소녀를 위한 찬가’는 영화의 정서적 핵심을 관통한다. 곡은 원곡 가수인 브로큰 소셜 신의 앨범 ‘You Forgot It in People’(2002)에 수록된 곡으로 발표 직후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단숨에 인디 음악계의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17세 소녀를 위한 찬가'는 과거의 순수했던 자신을 그리워하는 동시에 사회적 기준에 맞춰 변해버린 현재의 모습에 대한 혐오와 슬픔을 담고 있다. 곡의 화자는 “나도 한때는 썩은 녀석들 중 하나였는데, 난 그런 네가 마음에 들었어”라고 말하며, 삶에 의해 깎이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그리워한다. 곡은 동시에 진정한 자아를 잃어버리고 가짜 페르소나를 연기한 채 살아가는 현대인의 비극을 은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특정 가사의 반복으로 고조되는 곡의 구조는 사춘기를 지나는 십 대 시절의 혼란스러운 경험과 기억이 잔상처럼 겹치는 효과를 낸다. ‘17세 소녀를 위한 찬가’는 성장이라는 과정이 청춘의 이상과 온전히 나라고 느낄 수 있게 했던 정체성의 조각들을 버리도록 강요하고, 순수했던 과거의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레퀴엠이다.

이번 영화를 위해 제작된 율의 커버 버전은 원곡의 골격을 유지하면서도 훨씬 더 로파이(lo-fi)하고 글리치한 사운드(노이즈를 응용한 음악 스타일 혹은 그런 음악, 사운드)를 가미하여 영화의 기이한 미장센에 완벽하게 녹아든다. 원곡에서 느껴졌던 아날로그 악기의 온기는 율의 버전에서 신시사이저 사운드로 바뀌어 어둡고 쓸쓸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또 의도적인 디지털 처리와 왜곡을 통해 파편화된 율의 보컬은 환각적이면서 몽환적인 느낌을 더해준다. 이러한 율의 목소리는 영화 속에서 가상의 공간에 갇힌 채 일그러진 자아를 투영하는 듯한 위태로운 질감을 드러낸다. 또 율의 보컬은 곡의 글리치와 결합하여 영화의 현실과 허구,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는 임계 공간의 분위기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음악 ‘17세 소녀를 위한 찬가’는 영화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다. 먼저 영화의 초반부에서 어린 오언이 핑크 오페이크의 예고편을 보고 난 이후 등장하는 음악은 학교의 체육관에서 그가 낙하산 놀이를 하는 다음 장면에서도 이어진다. 두 장면은 앞으로 전개될 오언의 내면적 여정을 암시하는 복선으로 작용한다. 오언은 핑크 오페이크를 통해 자신을 억압하는 현실 세계의 규범에서 벗어나 온전한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내면적 도피처를 발견한다. 핑크 오페이크를 처음 마주한 이후에 그가 느낀 해방감과 그 탈출구를 마련해준 미디어에 대한 경외감은 낙하산 놀이를 하면서 느끼는 황홀한 감각과 이어진다. 이는 환상적인 허구의 세계가 오언에게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하는 임계점을 시각화한다.

또 음악은 영화의 마지막 직전에 다시 등장한다.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성인이 된 오언은 자신의 몸을 가른 틈새로 새어 나오는 빛을 거울에 비추어 본다. 가정을 꾸리고 사회의 어엿한 일원이 된 그는 어느새 가장 좋아했던 TV 드라마 핑크 오페이크를 보고도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는 무미건조한 어른이 되어버린다. 오언이 자신의 가슴을 가르고 그 속에서 빛나는 불빛을 마주하는 행위는 단조로운 삶에 매몰되어 오랫동안 억압되어 있던 자신의 본질적인 자아와 정체성을 열어 보이는 행위이다. 이 장면에서 율의 음악은 어린 시절 그가 경험한 원초적인 감각을 불러오며, 그의 본질적인 자아의 귀환을 알리는 장치다. 또 곡의 글리치와 로파이한 사운드는 현실과 허구가 충돌하는 비현실적인 순간의 분위기를 극대화하며, 오언이 겪는 고통스러운 자기 인식을 청각적으로 구현한다.

이처럼 영화에서 ‘17세 소녀를 위한 찬가’는 본질적인 자신의 자아를 상실한 오언의 고통을 표현한다. 하지만 제인 숀브런 감독은 곡을 통해 성장의 아픈 이면을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성소수자의 정체성을 지닌 이들이 겪는 젠더 디스포리아(성별 불쾌감)와 그들의 억압된 자아의 해방을 함께 드러낸다. ‘17세 소녀를 위한 찬가’는 오언의 삶에서 자아의 균열이 일어나는 지점들을 연결한다. 특히 낙하산 놀이 장면은 오언을 뒤덮은 낙하산 천의 색채로 트랜스 프라이드 플래그(성소수자의 정체성을 상징하고 서로 간의 연대를 보여주는 깃발)를 연상시키며, 핑크 오페이크와 같은 미디어가 그로 하여금 성소수자의 정체성을 찾게 하는 실마리를 제공한 것을 보여준다. 제인 숀브런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으로 성소수자 캐릭터를 등장시켰던 미국의 TV 드라마 〈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1997~2003)를 오마주해 핑크 오페이크를 만들었고, 오언은 핑크 오페이크 속 성소수자 캐릭터에 자신을 투사하고 동일시해 자신의 성 정체성에 다가간다. 율의 음악은 이러한 대사로 설명하기 어려운 오언의 내면적 공포와 갈망을 소리 그 자체로 전달한다. 숀브런의 영화에서 ‘17세 소녀를 위한 찬가’는 자신의 주체성을 되찾으려는 모든 아웃사이더들을 위한 찬가로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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