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철의 사물함] 총 맞아도 끄떡없는 사물 좀비, 한국 최초의 좀비영화 '괴시'(1981)

나는 영화 속 물건에 꽂힌다. 감독, 촬영감독, 미술감독, 아니면 배우 등 대체 왜 저 물건을 카메라 앞에 두었을까 깊은 고민에 빠진다. ‘주성철의 사물함’은 내 눈에 사뿐히 지르밟힌 영화 속 물건에 대한 기록이다.

〈군체〉
〈군체〉

〈군체〉가 열흘만에 3백만 관객을 돌파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1,600만 관객을 동원한 〈왕과 사는 남자〉보다 4일 빨리, 개봉 10일째인 5월 30일에 300만 관객 고지에 올랐다. 벌써 ‘천만각’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군체〉는 무엇보다 ‘집단감염’이라는 모티브 위에서 ‘군체’(群體, Colony)라는 제목부터 흥미로웠다. 어느덧 하나의 거대한 장르가 되어버린 좀비(zombie)라는 존재 혹은 생명 없는 사물을 다룰 때, 그 명칭을 달리 부르고자 하는 욕망이 창작자 누구에게나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세상 모든 좀비 영화들이 영화에서 좀비가 등장할 때 주로 ‘감염자’라 부르지, 좀비라고 지칭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괴상한 행동을 하는, 듣도 보도 못한 정체불명의 존재가 모든 좀비 콘텐츠에서 ‘세상에서 처음 마주친 존재’이기 때문이다. 가령 2010년부터 시작해 무려 11시즌까지 이어진 좀비 미드 〈워킹 데드〉에서는 좀비가 아닌 ‘워커’(Walker)라 불린다. 관객 모두 좀비를 좀비로 알고 있는데, 영화 속에서는 좀비를 좀비라 부르지 못하는 아이러니랄까. 말하자면, 좀비 영화에서 좀비는 언제나 ‘초면’이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일반적으로 좀비는 아이티 부두교 전설에서 ‘가사 상태에 빠졌다가 조종당하는 존재’로 설명된다. 구체적으로는 죽음에서 되살아나 움직이는 시체 형태의 괴물로, 바이러스 감염처럼 다른 사람을 공격해 물어뜯어서 자신과 같은 흉측한 좀비로 만든다. 처음 좀비라는 표현을 쓴 건 이탈리아 감독 루치오 풀치의 〈좀비 2〉(1979)다. 조지 로메로의 〈시체들의 새벽〉을 재편집해 개봉한 영화가 이탈리아에서 크게 성공하자, 마치 그 속편인 것처럼 속여서 개봉한 것. 즉, 그 원조는 ‘좀비’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지만 조지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이다. 영어 제목 〈Night of the Living Dead〉에서 확인할 수 있듯 ‘리빙 데드’라 불렸고, 조지 로메로는 아랍이나 이슬람권의 요괴로 흔히 좀비와 비슷한 존재로 묘사되는 식인 요괴 ‘구울’로 부르고 싶어 했다. 하지만 결국 좀 더 익숙하게 관객 모두의 대세 표현이 되어버린 좀비로 굳어지게 됐다. 어쩌면 ‘좀비 영화’가 아니라 ‘구울 영화’라 불리게 됐을지도 모른다.

〈렛 슬리핑 콥시즈 라이〉
〈렛 슬리핑 콥시즈 라이〉
〈강시선생2〉
〈강시선생2〉

〈군체〉라는 표현을 보면서 떠오른 영화는 바로 명실상부 ‘한국 최초의 좀비 영화’로 기록된 〈괴시〉(怪屍, 1981)다. ‘쓰러질 강’, ‘빳빳할 강’이라는 표현을 써서 ‘죽어 쓰러졌지만 빳빳하게 서 있는 시체’인 ‘중국판 좀비’라 할 수 있는 ‘강시’(僵尸)와 비슷한 표현이기도 하다. 즉, 좀비를 좀비라 부르지 못하는 좀비영화 장르 안에서 강시, 괴시, 군체 등 어떻게든 독자적인 표현을 만들어내고자 했던 동아시아 감독들의 강렬한 현지화 욕망이랄까.

〈괴시〉
〈괴시〉

저작권 개념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던 시절의 〈괴시〉는 사실상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합작영화인 〈렛 슬리핑 콥시즈 라이〉(Let Sleeping Corpses Lie, 1974)의 표절작인데, 여러 한국적 상황과 변주가 더해져 한국 최초의 좀비 영화로 인정받고 있다. 대만에서 온 강명은 강원도 백담사로 가던 길에 수지의 차를 얻어타고 가게 된다. 미국에서 살던 수지는 5년 만에 한국을 찾아 언니를 만나기 위해 수리마을에 있는 별장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언니는 건강 문제로 요양차 남편과 함께 강원도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차가 낯선 곳에 이르러, 강명이 길을 살펴보려고 떠난 사이 수지는 계곡에서 첫 번째 좀비, 아니 ‘괴시’와 마주친다.

〈괴시〉
〈괴시〉

이후 그의 정체가 마을 사람들의 얘기와 경찰의 수사를 통해 3일 전 죽은 용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왔다는 수지의 얘기를 그 누구도 믿지 않는다. 결국 강명과 수지는 공동묘지 안치실에 찾아갔다가 용돌의 시체가 없음은 물론, 그 안에서 부활한 시체들에게 공격당한다. 그런 사이 강명과 수지의 뒤를 쫓던 형사와 집을 나간 수지의 형부도 좀비로 변하고 만다. 그렇게 마을 전체가 괴시로 인해 공포에 떨게 된다.

〈괴시〉
〈괴시〉

영화는 무엇보다 좀비나 강시에 비해 괴시(怪屍)라는 제목 자체가 기괴하고도 독특한 아우라를 풍긴다. 게다가 영화사적으로 완전한 영화적 피조물이라 할 수 있는 좀비라는 존재에 어떤 흥미로운 상상력을 불어넣었느냐가 중요한데, 〈괴시〉는 단순히 ‘느리게 걸어 다니는 옛날 좀비’라고 치부하기에는, 좀비 장르의 상업 블록버스터화를 이끌었던 〈월드워Z〉(2013)나 스티븐 연을 일약 스타로 만든 TV 시리즈 〈워킹 데드〉와 비교해도, 영화역사상 아마도 가장 내구성이 강한 괴력의 좀비를 등장시켰다. 좀비로 변한 수지의 형부를 차로 치어도 끄떡없이 일어난다. 심지어 경찰이 좀비에게 〈올드보이〉의 오대수처럼 “누구냐 넌!” 하고 외치며 총을 쏴도 끄떡없다. 좀비 영화에서 언제나 ‘가장 확실한 제거 방법’으로서 좀비의 머리통을 권총으로 날려버리는 일이 〈괴시〉에는 불가능한 것인데, 지금껏 총을 쏴도 소용없는 좀비가 있었던가. 어쩌면 지금의 관객, 혹은 좀비 영화의 팬들이 매력을 느낄만한 지점이 바로 거기 있다.

〈괴시〉
〈괴시〉

그런데 시체를 다시 깨어나게 만든 것은 과학 실험 때문이다. 해충을 퇴치하는 초음파를 연구 중인 실험실에서 발생시킨 초음파가 시체의 신경을 건드려 부활시킨 것이다. 게다가 그 이전부터 수리마을에는 기형아가 태어난다는 보고도 있었지만, 과학자들은 이를 묵살해왔다. 좀비 창궐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된 주인공이 실험실을 찾아가 “사람 잡는 기계를 당장 꺼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그를 그저 미친 사람취급하며 외치는 “우리는 과학자에요!”라는 말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보통 좀비 영화에는 그 발생 원인에 대해 탐색하는 경우는 드문데, 신종 바이러스 문제와 결합하여 백신까지 만들어낸 〈월드워Z〉처럼 〈괴시〉 역시 원작의 설정처럼 환경파괴 문제로 나아간다. 좀비를 향한 독자적 호칭에 대한 집착뿐만 아니라, 과학과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괴시〉와 〈군체〉의 공통점도 찾을 수 있다. “시체들이 살아났어요!”라는 수지의 외침처럼 그렇게 한국판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만들어졌다.

※ 영화 속 물건들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 ‘주성철의 사물함’을 시작으로 떡상을 기대하는 배우 사용 설명서 ‘김지연의 보석함’, 내 마음을 움직인 영화음악 감상실 ‘추아영의 오르골’, 서브컬처 잡상인의 구매일지 ‘성찬얼의 만화책’까지 씨네플레이 기자들이 저마다의 취향과 시선으로 격주 연재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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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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