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분사회에서 귀한 자와 천한 것의 만남, 이런 소재는 언제나 흥미를 끈다. 그것은 코미디가 될 수도 있고, 휴먼드라마가 될 수도 있으며, 처연한 비극이 될 수도 있다. 그 관계에서 발산할 수 있는 무궁무진함을, 〈왕과 사는 남자〉는 최대한 담아내려고 부단히 고군분투한다. 2월 4일 개봉을 앞둔 〈왕과 사는 남자〉는 유배지를 자처한 마을의 촌장과 왕위에서 쫓겨난 단종의 만남을 담았다. 유해진과 박지훈의 만남으로도 화제를 모은 이 영화를 1월 21일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진행한 언론시사회로 미리 만났다. 〈왕과 사는 남자〉가 어떤 작품인지 미리 만나보자.

산골짜기 광천골의 촌장 엄흥도는 이웃골에서 한 가지 소식을 전해 듣는다. 어떤 양반의 유배지로 지정된 후로 마을에 재물이 흘러들어오는 등 마을이 술술 풀렸다는 것. 이에 엄흥도는 광천골의 청령포를 새로운 유배지로 삼아달라 자처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번에 유배 오는 인물은 왕위에서 쫓겨난 어린 왕, ‘노산군’ 이홍위. 부흥을 꿈꾸며 유배지를 자처한 엄흥도는 실망하지만 이홍위의 곁을 지키면서 이홍위와 조금씩 가까워진다.
실제 사료에 두어 줄만 이름이 남아있는 ‘엄흥도’라는 인물을 바탕으로 〈왕과 사는 남자〉는 단종과 그의 숨겨진 충신 엄흥도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연출을 맡은 장항준 감독의 이름, 그리고 유해진과 박지훈이란 조합에서 예상하듯 코미디와 드라마가 적절하게 섞여있는 휴머니즘적 이야기다. 그러나 예상한 것 이상으로 감정적인 진폭이 무척이나 커서 예상보다 더욱 큰 여운을 남기는 데 성공한다. 〈왕과 사는 남자〉는 ‘왕’이란 비범한 혈통을 타고난 인물이 그 누구도 가벼이 여기지 않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지닌 것을 묘사함으로써 역사적 현장을 당장 우리 현실에 어울리는 문제로까지 확장한다. 동시에 역사적 대격변의 한가운데 있는 ‘왕’ 또한 놓치지 않고 담아내 인간 이홍위와 왕족 노상군 두 얼굴을 하나의 인물로 포착한다. 그 곁에서 평범하기에 강력한 힘을 가진 인물 엄흥도를 배치해 휴먼코미디의 강점을 사로잡는데도 성공한다.


〈왕과 사는 남자〉가 이 같은 지향점으로 가는 데는 배우들의 케미스트리가 가장 큰 힘을 한다. 이제는 무슨 역할을 맡아서 의구심보다 기대감이 앞서는 배우 유해진은 다소 무리하다 싶은 코미디까지 캐릭터에 녹여내 초반의 에너지를 견인한다. 특히 이번 작품은 유해진의 가장 유명한 고래 묘사 못지않은 ‘밥상 묘사’를 보여주며 특유의 만담꾼스러운 웃음을 전한다. 특별출연으로 함께 한 박지환과의 코믹 연기 또한 일품이다. 반면 후반부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인간에서 결단을 내리는 왕까지 이홍위의 광범위한 변화를 담아낸 박지훈의 존재감이 상당하다. 이미 여러 작품에서 ‘빠지지 않을 수 없는 눈빛’을 보여준 박지훈은 이번 작품에서 연민하지 않을 수 없는 소년과 날 때부터 지도자의 혈통을 타고난 왕의 위엄을 완전히 결합시킨다. 이전엔 본 적 없는 우직한 스타일의 한명회를 해낸 유지태, 한결같이 이홍위를 지킨 또 한 명의 충신 명화 역의 전미도, 환경과 혈통의 한계로 가능성마저 박탈당한 당시 평민을 함축적으로 보여준 태산 역 김민까지. 모든 배우가 제자리에서 완벽하게 작동하며 〈왕과 사는 남자〉를 굴러가게 한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닌데, 다소 욕심이 과한 부분이 도드라진다. 요컨대 상업영화로서 ‘더 보여주기 위해’ 구성된 장면이 영화의 흐름을 다소 산만하게 한다. 한 번쯤 여유를 줬으면 하는 코미디가 결국 한 발 더 나아간다거나 규모를 보여주기 위해 삽입한 장면이 별다른 효용 없이 소비되기도 한다. 치명적인 단점은 아니나 전반적으로 매끈하게 세공된 이야기가 무게감을 잃는 것 같아 아쉬움이 배가된다. 또 분명 반복적으로 묘사되는 오브제가 있지만 그것이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는 것도 흠이라 할 수 있다.

2월 4일 개봉하는 〈왕과 사는 남자〉는 설 연휴 대목을 겨냥하고 개봉 시기를 잡았다. 영화를 본 후 ‘대목을 노릴 만하구나’로 확신할 수 있었다. 배우들의 앙상블, 코미디와 휴먼드라마를 결합한 이야기, 표면에 드러나지 않으나 훌륭한 지도자의 자격과 따르는 이에 대한 고찰까지. 〈왕과 사는 남자〉는 누가 보더라도 무리가 없고, 또 적당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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