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장항준 감독 ② “박지훈, 인간적으로도 독특한 매력…유해진, 국민배우 송강호급 원맨쇼 연기력”

▶ 〈왕과 사는 남자〉 장항준 감독 인터뷰는 1부에서 이어집니다.

※ 〈왕과 사는 남자〉의 클라이맥스 관련한 묘사가 서술됐음을 명시한다.

또한 극중 이홍위는 군호인 ‘노산군’으로 불리나 인터뷰 편의상 사후 받은 묘호 ‘단종’으로 표기를 통일한다.


〈왕과 사는 남자〉
〈왕과 사는 남자〉
〈왕과 사는 남자〉 왼쪽이 극중 엄흥도가 묘사한 청령포

청령포 촬영지는 실제로 어땠나요?

청령포는 지금 관광지가 돼버려가지고 저희가 찍을 수가 없었고요. 그래서 영월에 있는 다른 동강 지류의 하나를 저희가 찾아냈어요. 제작진들이 되게 오랫동안 고생해서 찾아냈는데, 후보지도 열몇 군데였어요. 근데 진짜 산세가 좋은데 찻길이 없어요. 패딩 입고 산에 들어갔는데 한두 달 있다가 나와보면 주머니에 풀이랑 나뭇잎이 들어가 있고 그런 곳이에요.(웃음) 일단은 강원도가 중요했어요. 기왕이면 또 영월이어야 된다고 생각했고요. 왜냐하면 영월에서 벌어진 일이니까. 그리고 강원도에 딱 들어가는 순간 산세가 달라요. 전라도 산세 다르고 경상도 산세가 또 다르고 그런데 특히 강원도의 산세가 달라요. 제가 좋아하는 강원도 산세가 있고 다듬어지지 않은 산세들이 있는데 영월의 산세는 이 동강이 산 사이로 흘러요. 이렇게 쉽게 말하면 동그랗게 흐르다 이쪽으로 다시 빠져나가고 동그랗게... 그런 강이 잘 없잖아요. 영산강이면 그냥 쭉 휘어지는, 아니면 한강이면 스트레이트 뻗어있고. 이건 여기에서밖에 나올 수가 없는 강의 형태거든요. 그래서 웬만하면 우리 영월에서 찾자 했고. 그래서 그 동강 지류에서 찾았는데, 실제 청령포와는 그렇게 멀지 않아요. 길도 없는 곳이라서 저희가 길을 만들고 촬영할 수 있게 토목 공사를 했죠. 왜냐하면 거기 사람이 서 있을 수가 없는 데였으니까. 주차장도 있어야 되는데, 주차장도 없었어요. 주민분이 경작을 하려고 일궈놓으신 밭인데 농사를 안 짓는 밭에 허락을 구해서 평탄화 작업을 해서 주차장으로 쓰고. 물론 올 때 돈도 드리고 원상 복구를 해 놓고 왔어요. 영월 군수님이 촬영할 때 잠깐 오셨었어요. 너무 좋다고, 고맙다고. 그런데 “군수님 저희가 원상복구 해놓고 나가야 됩니다” 그랬더니 너무 아깝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그렇지만 원상복구를 안 하면 문제가 생기는 게 유지하는 비용이 꾸준히 들어가야 하니까… 저희가 봐도 거기가 진짜 풍광이 좋았고 그 배소도 너무 튼튼하게 잘 지어놨거든요. 그렇지만 그대로 두면 안전사고가 벌어진다고, 주차장을 해놨으니 분명히 여기 사람들 엄청나게 올 거라고 안전사고 때문이라도 이건 원상복구돼야 된다고 해서 원상복구를 했습니다. 군수님도 철거하는 거에 대해서 되게 아쉬워하셨어요.

실제 기록에 남은 유배지도 영화에서 나온 그 모습인가요?

예, 청룡포가 딱 그런 지형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거기에 기념관도 있고 하니까, 지금 가보면 그때하고 많이 달라졌죠. 수백 년이란 시간이 지나기도 했고. 다만 배소 바로 앞에 강이 흘렀다, 그런 건 아니에요. 강을 그렇게 배치한 건 일단 첫 번째는 감금의 의미가 가장 컸고요. 두 번째로는 이 왕은 다시 살아서 저 강을 건너는 게 목표잖아요. 그래서 다시 한양으로 가는 게 목표가 되어 버리잖아요. 그런데 결국에는 영혼은 죽어서 강을 건너갔고, 육체는 그 강을 못 벗어나고 떠내려가게 되잖아요. 야사의 기록에 보면은 세조(수양대군)가 이홍위의 시신을 수습하면 삼족을 멸한다고 그래가지고 동강에 십 며칠을 부패한 채로 계속 떠다녔대요. 그때 엄흥도라는 분이 들어가서 목숨을 걸고 시신을 수습해 장사를 지내고 평생 숨어 산 거죠. 죽을 때까지 어디서 돌아가셨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죽었는지도 아무도 몰라요. 그냥 숨어 지냈다고만 남아있어요.

〈왕과 사는 남자〉
〈왕과 사는 남자〉

마지막 흥도가 떠올리는 홍위의 모습은 일반적인 회상과 달라서 인상적이었어요. 마치 물장난을 하는 듯한 그 장면은 그때 처음 나오잖아요. 그 장면을 사용한 이유가 있을까요?

원래 그 신은 시나리오에 없었던 신이에요. 현장 진입로가 좁아가지고 분장차가 들어올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한 2km 정도 떨어진 데다가 분장차를 주차하고 배우들은 분장 받으면 작은 차를 타고 오거나 걸어오거나 했어요. 거의 대부분 걸어오더라고요. 산세가 좋으니까. 그 분장차 앞에도 동강이 흐르거든요. 박지훈 씨가 분장 받기 전에 이렇게 물장난 비슷하게 하는 거를 우리 분장 팀에서 찍은 거예요. 우연히 그 사진을 찍었는데, 그게 또 어떻게 퍼졌더라고요. 누군지 언급 안 했는데, “이거 박지훈 아니야?” 하면서 퍼지니까 그걸 유해진 씨가 본 거예요. 그래서 저한테 보여주고 저도 보고 ‘야, 이게 또 묘하네’ 생각했어요. 유해진 씨가 “감독님, 이 사진 보니까 너무 가슴이 미어지는데 이걸 우리가 찍으면 어떨까?” 이렇게 되는 거예요. “어 찍어!”.(일동 웃음) 카메라 있고 사람 있는데 못 찍을 게 뭐 있나, 그래 가지고 빨리 촬영감독님하고 얘기해서 콘티 짜고 해서 찍었죠. 그때만 해도 어디 넣을 거라고는 생각 안 했어요.

그 장면은 과거의 어느 장면일 수도 있고 판타지일 수도 있어요. 그 점이 그 장면에서 되게 좋은 거죠. ‘얘, 애였지, 소년이었지’ 이런 거요. 나중에 박지훈 씨하고 얘기하니까 그날 자기가 분장차 앞에서 물장난한 게 아니고 손에 뭐 묻어서 씻는 중이었대요.(웃음) 뭐로 가도 서울 가면 되니까. 마지막까지 이 장면을 빼야 할 것인가 넣을 것인가, 넣는다면 어디에 넣을 것인가 고민했는데 박윤호 PD님이 “감독님 여기 어때요?” 해가지고 거기다 넣어서 편집을 해 본 거예요. 그건 진짜 유해진 씨의 제안이 아니었으면은 아마 못 찍었을 거예요.

단종과 엄흥도 두 사람의 이야기가 재미도 있지만, 다시 이 시점에서 꺼내신 이유가 있으실까요?

엄흥도라는 인물이 신분과는 상관없이 지켜야 할 걸 지키는, 신념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신념이나 그런 부분에서 역사에서 특히 강조하는 게 있잖아요. ‘성공한 불의는 인정받고 박수받아야 하는가?’ 우리 역사에 너무 많을 거예요. 성공한 불의의 역사가. 그렇다면 ‘실현되지 못한 정의는 잊혀도 되는가?’ 하면, 그게 역사라는 것들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고 생각해요. 실현되지 못한 정의를 기억하는 거,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성공의 이면에 있는 불의를 잊지 않는 것. 그런 면에서 이 시대(계유정난)가 영화로 많이 만들어지고 드라마로 많이 만들어졌던 이유가 아닐까...

〈왕과 사는 남자〉 촬영 현장의 장항준 감독(오른쪽), 박지훈
〈왕과 사는 남자〉 촬영 현장의 장항준 감독(오른쪽), 박지훈

같이 작업해본 박지훈 배우는 어땠나요?

영화 시점에서 이홍위가 17살 때인가 그렇고 박지훈 씨가 당시 27살이었을 겁니다. 한 10살 정도 차이 나을 건데 사실 17살이라는 게 되게 애매한 나이예요. 어른도 아니고 애도 아니고. 우리가 아는 17살은 고등학생인데 요즘 애들 생각해 보면 그것도 아니고 했거든요. 박지훈 씨가 또래에 비해서 굉장히 동안이고 피부도 좋으니까. 사실은 경연 프로그램을 별로 안 봐서 〈프로듀스 101〉에 지훈이가 나온 지도 몰랐어요. 프로그램이 인기 있다는 건 알았지만요. 그리고 〈약한영웅 Class 1〉을 먼저 봤기 때문에 저한테 ‘배우인데 과거에 아이돌을 했던’ 이런 느낌이었어요. 나중에 프로그램을 봤는데 “내 마음속에 저장~”. 그걸 보고 좀 놀랐어요. 현장에서는 스태프들 보고 수줍게 “안녕하세요” 이렇게 하다 보니까. 현장에서도 ‘아이돌’ 박지훈이다 뭐 이런 건 아니었고 ‘이홍위, 홍위다’ 이랬고요.

박지훈 씨는 이렇게 막 들뜨거나 이런 게 없어요. 오늘 박지훈이 기분이 좋은지 우울한지 배가 부른지 웃긴지 그걸 모르겠는 거예요. 되게 진중하고. 그래서 “예, 예, 알겠습니다. 예, 예” 뭐 항상 이런 정도고요. 그래서 그런 생각을 했죠. ‘아, 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스타가 돼도 변하지 않겠구나’. 왜냐하면 그 진폭이 큰 사람들이 잘 변하잖아요. 그래서 박지훈 씨는 좀 단단한 20대라고 느껴졌어요.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것들이 배우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장점이라고 생각했고, 아마 그 유해진 씨도 (박지훈 씨의) 그런 부분이 제일 마음에 드셨을 것 같아요. 유해진 씨는 “아이고, 선배님” “선배님, 뭐 드셨어요?” 이런 거 딱 싫어하거든요.(웃음) 지훈이는 전혀 그런 스타일이 아니어서... 예를 들면 제가 "야, 지훈아, 저녁에 술 한 잔 먹을래?” 이러면 보통 배우는 “가야죠!” 몸이 좀 안 좋아도 “감독님 저 괜찮아요, 가요, 좋아요!”. 그런데 얘는 예, 씩 웃고는 안 와요.(웃음) 저나 해진 씨가 “너 뭐 할래? 어때?” 하면 지훈이가 (부끄러운 듯 웃는 박지훈을 흉내 내며) 이러면 안 하는 거예요. 그게 기분 나쁘고 그렇지도 않아요, 모두가 지훈이를 아니까 그냥 안 오겠구나 생각하고 말죠. 이렇게 20대의 남자 배우치고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어요. 인간적으로도.

〈왕과 사는 남자〉 장항준 감독(왼), 유해진
〈왕과 사는 남자〉 장항준 감독(왼), 유해진

엄흥도 역은 유해진 배우를 염두에 두고 썼다던데, 아무래도 두 분이 가까운 사이여서 그렇게 상상하신 걸까요?

친구예요. 저랑 〈라이터를 켜라〉에서 만나서 친구가 돼 가지고 20 몇 년째 친구죠. 그렇지만 친분 때문에 (엄흥도로) 염두에 둔 건 아니고요. 그냥 이 시나리오의 초고를 받고 수정하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유해진 씨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대사도 막 이렇게 쓰면서 유해진 씨가 되고... 그런 다음에 시나리오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왔을 때 유해진 씨한테 보여줬는데, 유해진 씨도 되게 좋아하는 시나리오였어요.

그런 걸 느낀 적은 있죠. 초기의 흥도를 보니까 어느 순간에 ‘나랑 말투가 좀 비슷하지?’ 이런 생각을 했는데 우리 스태프들이 “모르셨어요?” 그래서 저도 “그런가?” 했죠. 근데 엄흥도가 유해진 씨의 실제 성격하고도 되게 다르죠. 유해진 씨는 이렇게 막 까부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캐스팅 제안할 때만 해도 이렇게 잘할 거라고 생각 못 했어요. 유해진이니까 어느 정도는 되게 잘 해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온탕 냉탕을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섞이게 하는 배우의 연기력을 보여줄 거라고 생각 못 했어요.

저는 송강호 선배님이 한국 영화사에서 되게 진짜 엄청난 배우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한 작품 안에서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해도 관객이 낯설게 안 느껴져서라고 보거든요. 근데 유해진 씨가 그런 걸 (해냈죠). 그리고 그걸 온전히 이 영화에서 거의 원맨쇼를 하다시피 하잖아요. 그거를 그렇게 끌고 갈 수 있는 배우는 진짜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것 같아요.

홍위의 죽음을 직접 묘사하지 않고 은유적으로 처리한 이유는?

일단은 아무도 그 안을 소상히 안 들여다봤으면 좋겠더라고요. 홍위의 최후를 아무도 안 들여다봤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슬픔은 바깥에 있다. 문 너머에, 창호지 문 너머에 있다고 생각했고. 그리고 우리 관객들도 문 너머에 있는 것이고. 그 안에 홍위의 모습은 최소한으로 보이게 절제했어요. 보이면 보일수록 저는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애초에 다른 사이즈의 샷도 없었어요. 처음에 시나리오도 그렇고 콘티도 그렇게 돼 있었기 때문에.

엄흥도가 홍위의 죽음에 관여하는 듯한 묘사는 어떤 부분에서 차용한 걸까요?

그거는 팩트가 아니에요. 「연려실기술」이란 책에 기록된 내용이에요. 통인(관아 심부름꾼)이 스스로 자처했다… 이게 단종의 죽음에 관한 7가지인가 8가지 썰 중에 하나예요. 이 영화는 만약 이 둘, 유배지의 주인과 통인이 동일인이었다면이라는 상상에서 출발한 거죠. 동일인이었다면은 둘 사이에 엄청난 정이 존재했어야 되고, 그렇다면 이 둘은 이 통인으로서 보수주인(유배지를 제공하고 감시하는 자)으로서 굉장히 가까운 사이였어야 하고 마지막까지 그 길을 같이 가는 사이여야겠다. 어찌 보면 그 역사의 간극, 역사의 지워진 부분, 그 부분에 채워 넣고 그걸 채워 넣음과 동시에 극성을 올리는 것이 저희한테는 되게 중요했던 거죠.

마지막 장면에서 강물에 떠내려오는 시신은 소품을 제작한 걸까요?

더미인데, 실제 박지훈 씨의 몸무게랑 똑같은 더미를 제작했어요. 그게 참 희한하더만요. 물에 안 가라앉더라고요. 그 몸무게에 맞는 더미를 했는데도 물에 안 가라앉더라고요. "더 가라앉아야 되는 거 아니야?" 싶어서 무게를 더 추가했는데도 안 가라앉더라고요. 스릴러 영화 보면은 시신에다가 돌을 매달잖아요. 안 그럼 뜨니까. 근데 또 생각해보면 단종의 시신을 동강에 버렸는데, 그 십 며칠 동안 모든 사람이 봤을 거잖아요. 근데 또 건지면 안 된다고 했으니 가라앉지 않았을 거고.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장항준 감독 (제공=쇼박스)
장항준 감독 (제공=쇼박스)

영화를 보면서 많은 분들이 많이 우시더라고요. 감독님은 관객들이 누구를 위해 울어주길 바라는 마음이셨나요?

처음엔 몰랐는데 알고 보니까 너무 좋은 사람이야, 이 사람은 살아야 되는 사람이야.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는데 너무 좋은 사람인 거예요. 내가 만난 어떠한 선인보다 선하고 어떠한 사람보다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마지막 순간에 알게 됐다면... 어찌 보면 이 영화는 흥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홍위를 보여주는 측면이 커요. 지켜주지 못한 정의에 대한, 실현되지 못한 정의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그 장면에서) 문밖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쉽게 말하면 그 추모, 슬픔을 나눈다. 그게 제일 중요하고 잊지 않는다는 의미인 거죠.

결말이 정해진 실화라 시나리오 작업 단계에서부터 안타까운 마음이 컸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그래서 이 작품을 안 하려고 그랬어요. 이야기의 끝이 정해져있는데 심지어 밝지도 않아요. 바꿀 수 있나, 제발 바꿨으면 좋겠는데. 이대로 서울 한양에 올라가서 수양을 끌어내리고 다시 단종을 위에 앉히고 광천골에 진짜 당나귀가 들어왔으면 좋겠는데.(웃음) 한명회를 효수하고 그런 생각도 잠깐 한 적은 있었어요. 그런데 그러려면 한 100억 정도 더 필요해 가지고.(웃음) 물론 그런 걸 실현한 사람도 있죠. 쿠엔틴 타란티노,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히틀러를 죽이잖아요. 그 정도의 똘기는 있어야 되는데... 어찌 됐든 역사의 정체성, 우리가 이 역사 속에서 우리가 느껴야 되고 잊지 말아야 될 것이 있어서 엔딩을 바꾸진 못했죠. 사실은 그 '이 영화는 투자가 안 될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한 건 비극적인 엔딩이 딱 정해져 있기 때문이었어요. 어떻게 흘러가는지 다 아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에 생각이 바뀌었죠. 될 수도 있겠다. 〈서울의 봄〉이었어요. 쿠데타를 막지 못했던 걸 모두가 알고 비극적으로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두가 아는데 (흥행했으니까요)... 얼마 전에 (〈서울의 봄〉을 연출한) 김성수 감독님하고 술을 마실 기회가 있었는데 그랬어요. “형님, 진짜 〈서울의 봄〉 때문에 이거 그냥 밀어붙인 거야”. 되게 좋아하셨죠.(일동 웃음) 후배 배우나 후배 감독이나 후배 작품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거니까 안 좋으실 수가 없으셨을 거예요.

최종 목표 관객 수는 어느 정도로 생각하시나요?

손익분기점을 넘어서 모두가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영월로 가서 우리 파티해야지, 파티.(웃음)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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