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행히, 그는 인터뷰 현장에서도 유쾌했다. 원래 유쾌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지만, 이 현장에서도 기분 좋을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자신의 신작 〈왕과 사는 남자〉가 시사회 직후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리라. 영화감독이자 방송인으로 활동 중인 장항준 감독은 2월 4일 개봉한 〈왕과 사는 남자〉로 생애 첫 '장항준표 사극'을 선보인다. 그동안 비운의 왕으로, 야심의 희생자로 그려졌던 ‘단종’ 이홍위를 그의 시신을 수습한 것으로 역사에 남은 엄흥도라는 인물을 통해 들여다봤다. 모두가 신뢰하는 배우 유해진이 엄흥도를, 모두가 빠져들 수밖에 없는 눈빛의 박지훈이 이홍위를 맡아 시사회장을 웃음과 눈물로 채운 이틀 뒤,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장항준 감독과 〈왕과 사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리 조언(?)하자면 위의 장항준 감독 사진을 자세히 보고 인터뷰를 읽는다면 자체 음성 지원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 〈왕과 사는 남자〉의 클라이맥스 관련한 묘사가 서술됐음을 명시한다.
또한 극중 이홍위는 군호인 ‘노산군’으로 불리나 인터뷰 편의상 사후 받은 묘호 ‘단종’으로 표기를 통일한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속 한 장면 [쇼박스 제공]](https://cdn.www.cineplay.co.kr/w900/q75/article-images/2026-01-29/2a51503b-6956-4059-9d81-f7c16d440a56.jpg)
아침에 일어나서 이름을 검색해본다고 하셨잖아요. 〈왕과 사는 남자〉도 매일 검색해보고 있으신가요?
그럼요. (반응이 좋아서) 기분 정말 좋아요.(웃음) 너무 다행이고. 그래서 진짜 저뿐만 아니고 우리 배우, 스태프들, 모든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면 〈왕과 사는 남자〉를 검색하고 막 그래요. 즐겁고 설레는 시간이죠. 아직 (개봉 전이라) 뚜껑이 안 열린 상황이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반응이 제일 좋았어요. “나 시사회에서 울고 웃고 하면서 봤다”, “개봉하면 꼭 우리 가족들하고 티켓 끊어서 같이 보겠다”. 우리가 밖에서 맛있는 거 먹어도 가족들하고 먹고 싶잖아요. '이거 엄마랑 먹고 싶다' 뭐 그런 느낌을 갖고 계신 것 같아서 되게 기분이 좋았습니다.
계유정난 후를 그린 영화인데, 의외로 수양대군이 등장하지 않더라고요. 처음부터 그렇게 의도하신 건가요?
그렇죠. 영화에서 한명회(유지태)가 수양대군의 기능을 다 하고 있어서요. 그리고 실제로도 수양은 전면에 나선 적이 없거든요. 아마 나서야 될 상황에서도 수양은 안 나섰을 거예요. 본인의 정치적 입지나 이미지 때문에 안 나섰을 테니까요. 그래서 한명회가 수양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어찌 보면 수양이 왕이 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한명회잖아요. 한명회가 있으니 우리 영화에선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역할이 돼버린 거죠. 그리고 진짜 악의 축은 안 보여야 더 겁나는 거잖아요. 또 수양이 나오면 오히려 관객들의 몰입을 깰 것 같았어요. 배우로 보이니까. 그 잠깐의 등장에 배우로 보여서... 수양은 아예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그런 생각을 잠깐 한 적은 있어요. '카메오로 누구 쓸까?' 그런데 누군가를 카메오로 쓰면 거기서 확 몰입이 깨지는 게 제일 싫거든요. 영화 보셔서 아시겠지만 앞에 보통 '촬영 누구', '배우 누구누구' 나오는 것도 안 넣었잖아요. 그거예요. '이거 만든 얘기구나'라고 느끼는 게 싫었어요. 이 강원도 두메산골, 그리고 몇백 년 전 조선으로 돌아가기에는 그런 것이 몰입을 깬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오프닝 크레딧도 따로 안 넣었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다 빼야 된다고 생각해서, 뭔가 몰입을 깰 만한 모든 것들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양뿐만 아니라요.

처음 신하들이 고문을 받는 장면에서 바로 광천골의 노루 사냥 장면으로 분위기가 확 바뀌잖아요. 그렇게 오프닝을 구상한 이유가 있을까요?
일단 그 노루 사냥은 상당히 중요했어요. 왜냐하면 ‘여기(광천골)는 한양이 아니다. 여기는 권력의 중심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도 먹고사는 문제와 뭔가를 죽이거나 쫓겨가야 하는 사슬은 존재한다. 그러나 다른 형태의 사슬이 존재하는 삶의 현장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려고요. 한양에서는 사람을 죽이는 현장, 권력들이 치열하게 부딪히는 현장... 뭐 그런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광천골은 이런 삶의 현장이 중요했죠. 호랑이라는 이미지 또한 되게 중요했어요. 우리가 호랑이를 흔히 산중의 왕이라고 많이 표현하는데, ‘그렇다면 진짜 왕이 누구냐’라는 은유랄까? 진짜 왕은 수양이냐 아니면 물러난 단종이냐, 그런 거죠.
호랑이 CG 퀄리티가 아쉽다는 반응도 있었어요.
그게 시간적인 문제예요. 사실은 뭐 한두 달 정도 더 작업을 해야 되는데… CG 팀 얘기를 들어보니까 그 호랑이 털 있잖아요. 털을 하나하나 작업을 하고 렌더링 다운을 받는데 한 프레임, 그러니까 24분의 1초에 16시간이 걸린대요. 그러니 사실 훨씬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거고. 장면의 광원에서 호랑이가 어떻게 보일지 계속 오류를 수정하면서 했어야 했는데 시간이 충분치 않았죠.
유해진이 연기한 엄흥도는 유배지를 자처해 마을을 부흥시키려는 굉장히 자본주의적인 인물이잖아요. 그렇지만 막판에 가서는 그 모든 걸 포기하는 비합리적 선택을 하기도 하고요.
극에서 주요 인물이라면 어떤 인물이든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홍위(박지훈)도 마찬가지고 엄흥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관객들은 주요 인물들의 감정을 따라가니까요. 그 성장을 그리는 것에 있어서 말씀하신대로 비합리적인 부분이 돋보이려면 어찌 보면 우리와 좀 닮아 있기도 한 세속적인 인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우리에게 익숙한 세속적인 성격, 그러면서도 속이 빤히 들여다보여서 좀 귀엽기도 한 그런 인물을 보면서 관객이 웃고 공감할 수 있으면 좋겠더라고요. 동질감을 느끼는 인물을 통해 홍위를 만났을 때, 이 영화는 결국 흥도가 바라본 홍위라고 생각했어요. 그냥 힘없이 나약한 왕인 줄 알았던 홍위가 이 유배지에 와서 조금씩 자기 모습을 찾아가는 것들, 그리고 그런 홍위에게서 다른 양반들이나 왕족들에게 느끼지 못했던 그런 따스한 면과 군주로서의 어떤 면을 보면서 흥도가 ‘아, 이 사람은 진짜 따르고 싶다. 그리고 이 사람이 제자리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느끼는 마음을 관객들도 느끼게 하려면 그 인물과 관객의 감정이 같이 갔으면 좋겠다 싶어서 이런 인물로 만들게 됐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단순히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우정 같기도, 부자 관계 같기도 한데요. 그렇게 묘사한 연출적인 포인트가 있을까요?
제일 중요했죠. 그게 안 살면 이 영화는 실패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홍위와 흥도의 지금 말씀하신 그런 감정. 정(情)이라고 할 수 있을지, 충(忠)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義)라고 할 수 있을지 그런 모호한 감정들이 살지 않으면 이 영화가 큰 기능을 하기 힘들다 싶었어요. 그리고 서로가 서로한테 배우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흥도는 홍위를 보면서 배우고, 홍위 역시 진짜 백성들의 삶을 본 거죠. 만일 단종이 재위 기간이 길어서, 혹은 폐위되지 않아서 궁궐에서 쭉 살았다면 (백성의 삶을) 못 보셨을 거예요. 왜냐면 홍위는 조선의 왕들 중에 궁궐에서 태어난 몇 안 되는 왕이거든요. 진짜 궁궐에서 태어나서 궁궐에서 쭉 살았는데, 그게 길지 않았던 게 문제죠. 그렇게 궁궐에서 살았던 이 소년 왕이 유배지에서 전에 알지 못했을 백성의 삶을 보고 그들의 소망, 그들이 무엇을 즐기고 어떤 것을 원하는지를 보았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이기도 하지만 ‘백성이 근간’이라는 「서경」의 문장을 세종대왕이 자주 인용했거든요. 그렇게 선조들이 말하는 것들의 의미를 이 어린 소년이 알지 않았을까요. ‘진짜 왕은 어떤 일을 해야 되는 것인가’, 그래서 ‘그렇기에 내가 저 자리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구나’ (결심하고요). 조선 초기만 해도 힘 있는 권력과 신분이 주도하는 조선이 아녔어요. 신분 상관없이 등용이 되고 그랬는데 그게 중기로 가면서 변질이 되거든요. 그래서 신분제가 완전히 고착화되는 순간이 오고 마는데, 거기에 대한 가정인 거죠. 단종이 여기 유배 왔다가 다시 왕의 자리에 올라갔으면 평등의 시대가 이어지지 않았을까? 그럼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조선, 사대부들이 권력을 독식하는 조선이 아니지 않았을까 상상했고요.

엄흥도가 기록상으론 충인으로 돼있지만 영화를 보면 정 때문이라고 보이기도 합니다.
맞아요. 정이 맞는 것 같아요. 사실 정이 충보다 더 큰 범주 아닌가요? 그리고 어찌 보면 흥도와 홍위는 처음에 만났을 때는 쉽게 말하면 주인과 객으로 만났잖아요. 귀한 손님과 주인으로 만났고, 만나서는 상전과 하인이에요. 그러고 있다가 그 관계들이 조금씩 수정이 되면서 어른이 바뀌어요. 홍위가 어른이 되고 흥도가 손 아랫사람이 되거든요. 그러다가 뒤에 가서 다시 바뀌었죠. 흥도가 아버지가 되고... 그러니까 부자 관계로까지 가게 되죠. 왕조의 기록으로 봤을 때는 충이죠. 그러나 인간적으로 봤을 때 진짜 정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단종을 나약한 왕이 아니라 주체적인 인물로 그리셨는데, 감독님이 이 단종이란 인물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셨을지 궁금해요.
일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고 생각했어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영화 보면 그 부대가 라이언 가족의 마지막 아들을 구하러 가면서 하나둘씩 죽잖아요. 그때 부대원들이 말해요. “제발 얘가 가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마찬가지죠. 저도 단종이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정말 알 길은 없으나,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한 대가의 저 인물이 성군의 자질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힘없이 나약한 인물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실제로 역사를 보면 단종이 나약하고 힘이 없었던 기록은 하나도 없어요. 오히려 굉장히 총명했고 학문적인 습득도 빨랐고, 사리 분별이 명확하고 활쏘기를 잘해서 세종대왕이 상당히 총애했던 손자고, 그리고 아버지 문종도 진짜 끔찍하게 아끼던 아들이었는데 비극은 그거죠. 단종이 12살에 집권할 때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엄마가 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던 것.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거죠. 세종대왕이 서거 전 문종과 그 형제들한테 “홍위를 부탁한다” 했대요. 수양 또한 그걸 들었죠. 그리고 문종이 나중에 다른 대신들과 마찬가지로 수양에게도 “얘를 잘 부탁한다” 그런 얘기를 했답니다. 왕실에서 아끼는 혈육이었을 정도로 그만큼 총명했던 거죠. 그런데 저는 그런 상상도 해봤어요. 왜 수양에게도 부탁했을까? 혹시 문종은 수양의 그 기질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나의 이 말 때문이라도 마지막 순간에 (왕권 찬탈을) 실행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을지 않을까? 그런 말이 있잖아요. ‘악당은 몸 어딘가에 씨앗이 있다’. (문종이 수양의) 그 씨앗을 본 건 아닐까?
어쨌든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단종의 나약함, 이미지 이런 것들은 다 후대에 만들어진 거예요. 정치적 결과의 산물일 뿐이죠. 어떤 강인한 인물도 정치적으로 제거되면, 우리가 그 사람의 비주얼이나 성정에 대한 기록이 없으면 우리는 그냥 나약해서 졌다라고 생각하죠. 실패한 운동선수가 정말 운동 못하는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경쟁에서 밀린 것일 뿐이지. 실제 홍위는 그렇지 않다는 가정에서 영화가 출발을 한 거죠. 홍위가 처음에 유배를 가면서 되게 슬프고 살고 싶지 않은 표정을 하잖아요. 저는 그때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홍위의 표정은) ‘나는 이제 어떡하지’가 아니에요. ‘나를 따르고 나를 좋아하고 나를 아끼던 사람들이 나 때문에 다 죽었어’, 그럴 때 표정이거든요. 이기적인 나만의 표정이 아니고... 그래서 마지막까지 여기 왔는데도 그런 위험이 다가오니까 ‘이제는 저렇게 당하고 있을 수 없다, (사람들을) 살리고 싶다’. 그런데 그 안에 흥도도 있었던... 그래서 그런 부분들이 좀 중요하게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밥을 거부하던 단종이 나중에 밥의 가치를 알게 되는 장면이 있고, 왕과 백성이 함께 밥을 먹는 장면도 있는데요, 관객들에게 어떻게 느껴지길 바라셨나요?
사실은 그 장면이 말이 안 돼요. 그 시대에 아무리 유배 왔다지만 왕족과 이 평민들, 산골의 무지렁이들이 그런 대화를…. 지금은 영월이 서울에서 한 2시간이지만 옛날에는 아마 짐작건대 우리가 아는 복식보다 훨씬 낡은 복식이었을 거예요. 밖에 나갔다 다시 들어올 때 산에서 어떤 짐승의 공격을 받을지, 어떤 절벽에서 미끄러져서 죽을지도 모르는 진짜 첩첩산중이거든요. 그런 곳에서 삶의 민중들과 왕이 같이 밥을 먹는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서, 사실은 저 장면을 조금 더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이들은 이제 같은 걸 먹고 있다. 같은 눈높이에서 이야기하고 같이 감정을 공유하면서 같은 걸 먹고 있다. 그리고 홍위가 그것을 내어주고 있다. 그래서 어찌 보면 홍위는 그 밥상에서 백성들과 접촉을 하면서 ‘만약에 또 기회가 오면 이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해야겠구나’ 그런 것을 느꼈을 테고. 그리고 사람들은 ‘아 저래서 왕이었구나’ 했을 거고요. 제 생각에 기본적으로 이런 두메산골의 백성들은 왕은 감히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입에 담아본 적도 없는 사람일 거예요. 폭정이 시작돼도 왕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별로 없었을 거예요. 간신들이 잘못해서 나라가 이렇지, 그 당시 인식으로 아마 그렇게 생각했겠죠. 그런 사람들하고 왕이 밥 먹는 신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 배소(配所)의 위치도 가장 아름답게 강가를 끼고 있는 곳으로 했어요. 이렇게 창을 최대한 넓게 해달라고 했어요. 창들이 확 열렸을 때 마치 풀밭에서 백성과 왕이 같이 밥 먹는 느낌이 나게요. 제가 되게 좋아하는 장면 중에 하나입니다.
영화에서 쌀밥이 되게 많이 나오잖아요. 밥을 나눠 먹잖아요. 사실은 조선시대 때에는 제가 풍속사를 보면서 느꼈던 건데, 아 진짜 쌀밥이 귀하더라고요. 쌀이라는 것 자체가 신분, 부유함의 상징, 출세와 계급의 상징이기도 한데... (영화에서) 그걸 나눈다는 거는 지금 밥 같이 먹는 의미랑 또 달라요. 다 주는 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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