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철의 사물함] '마티 슈프림'을 보며 유남규의 펜홀더 탁구 라켓을 떠올리다

나는 영화 속 물건에 꽂힌다. 감독, 촬영감독, 미술감독, 아니면 배우 등 대체 왜 저 물건을 카메라 앞에 두었을까 깊은 고민에 빠진다. ‘주성철의 사물함’은 내 눈에 사뿐히 지르밟힌 영화 속 물건에 대한 기록이다.

〈마티 슈프림〉
〈마티 슈프림〉

〈마티 슈프림〉은 탁구 영화다. 한국 영화팬들에게 샤프디 형제는 〈헤븐 노우즈 왓〉(2014), 〈굿타임〉(2017), 〈언컷 젬스〉(2019) 등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마티 슈프림〉은 형 조쉬 샤프디가 거의 10년 만에 단독 연출한 장편영화다. 탁구로 인생 역전을 꿈꾸는 마티 마우저(티모시 샬라메)의 꿈과, 그를 위해 지옥까지 질주하는 고난의 행로를 그린다. 배우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동생 베니 샤프디는 지난해 역시 단독 연출한 〈스매싱 머신〉(2025)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전설적인 종합 격투기 선수 마크 커(드웨인 존슨)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제 조쉬와 베니 샤프디는 형제 감독이 아니라 향후 따로 연출할 계획이라 하는데, 공교롭게도 이른바 결별 이후 각자 만든 영화가 스포츠 영화라는 것이 흥미롭다.

펜홀더
펜홀더
셰이크핸드
셰이크핸드

〈마티 슈프림〉은 탁구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모를 수 없는 사물, 바로 탁구 라켓에 대한 흥미로운 설정으로부터 긴장감을 자아낸다. 탁구 라켓을 잡는 방법은 펜홀더(Penholder)와 셰이크핸드(Shakehand)로 구분된다. 펜홀더는 라켓을 볼펜 잡듯이, 셰이크핸드는 악수하듯이 잡는 것을 뜻한다. 펜홀더 라켓은 앞면에만 러버가 붙어 있고, 셰이크핸드는 양면에 러버가 있다. 보통 공격형 선수들은 펜홀더, 수비형은 셰이크핸드를 애용한다고 하는데 최근 국제대회에서는 펜홀더 선수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양면을 사용하는 셰이크핸드가 한 면만 쓰는 펜홀더보다 백핸드 스트로크 동작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현재 전세계 탁구 선수의 90%가 셰이크핸드라고 한다. 한편, 탁구에 관한 한 세계 최강 중국은 펜홀더의 스매싱 장점과 셰이크핸드의 안정적 백핸드를 조합한 중국식 펜홀더를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펜홀더 유남규
펜홀더 유남규
셰이크핸드 신유빈
셰이크핸드 신유빈

〈마티 슈프림〉에서 마티 마우저는 셰이크핸드, 경쟁자인 일본 선수 엔도(가와구치 고토)는 펜홀더다. 중국식 펜홀더와 구분하기 위해 엔도의 펜홀더는 일본식 펜홀더(J-Penholder)라고도 불리는데, 한국 역시 정통 펜홀더라 할 수 있는 후자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영화를 보면서 오히려 반가웠다면 반가웠다. 엔도를 보면서 한국 선수 유남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1980년대를 기억하는 한국인들이라면 민첩하기 그지없던, 왼손잡이 펜홀더 유남규를 모를 수 없을 것이다. 신화의 시작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탁구 단식 금메달이었다. 당시 그의 세계 랭킹은 50위였는데 8강 상대이자 세계 랭킹 1위였던 장자량을 꺾고 거침없이 질주해 금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당시 그의 나이 18살이었다. 5세트까지 이어진 8강전에서 결국 장자량이 승리하는 듯했으나 14:19로 지고 있던 점수차를 극복하고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을 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어쩌면 〈마티 슈프림〉에서 (물론 그립은 다르지만) 명승부를 펼치는 마티 마우저와도 닮았다. 2년 뒤 1988년 서울올림픽 탁구 단식에서도 금메달을 따내며, 대한민국 남자 올림픽 구기종목 사상 첫 번째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이후 무려 16년 만의 금메달인,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 단식 금메달을 딴 유승민도 펜홀더다.

〈마티 슈프림〉
〈마티 슈프림〉

〈마티 슈프림〉은 티모시 샬라메가 촬영 전 수개월 동안 탁구 훈련만 했을 정도로 경기 장면 고증이 뛰어나다. 물론 탁구공의 움직임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었겠지만, 탁구 라켓과 탁구공 사이에 위화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훈련량을 스크린으로 느낄 수 있다. 더구나 역전과 재역전을 거듭하는 경기의 긴장감, 체력과 심리에 따라 흔들리는 선수들의 모습이 펜홀더와 셰이크핸드의 상반되는 특징을 그대로 반영하며 전개된다. 가령 펜홀더는 손목을 최대 180도까지 사용할 수 있어, 공격시 손목 힘을 이용하여 스핀을 걸 수 있으므로 보다 위력적인 타구를 구사할 수 있다. 라켓의 한 면에만 러버를 부착하므로 라켓의 무게가 가볍고, 셰이크핸드보다 다양한 서브 구질의 구사가 가능하며, 직선적이고 빠른 타구를 구사하기 쉬어 역시 셰이크핸드보다 상대 힘을 역이용하기에 좋다. 반면, 앞면만 사용하는 펜홀더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으로 백핸드 공격력이 부족하다. 백핸드 랠리에서 수비 일변도의 상황이 벌어지면서 점차 밀리게 되고, 그로 인해 셰이크핸드보다 체력소모가 심하다. 〈마티 슈프림〉에는 꽤 많은 탁구 장면이 등장하는데, 위와 같은 상대적 특성을 절묘하게 묘사하고 있어 지루할 틈이 없이 경기 장면을 즐길 수 있다. 이처럼 나라마다 저마다의 방식을 개발해 사용하고 있으니, 펜홀더 엔도(가와구치 고토)에게 고전하는 셰이크핸드 마티 마우저가 “저렇게 잡는 건 반칙 아니냐”며 심판에게 따져 묻는 게 이해될 법도 하다.

〈마티 슈프림〉
〈마티 슈프림〉

그런데 〈마티 슈프림〉에서 펜홀더와 셰이크핸드의 구분은 단지 탁구 장면 자체의 재미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마티 마우저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는 사업가이자 케이 스톤(기네스 팰트로)의 남편인 밀턴 록웰(케빈 오리어리)은, 자신의 아들이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아픈 기억이 있다. 하지만 볼펜을 일본에 팔아야 하는 사업가로서, 돈이 필요한 마티 마우저와 함께 ‘펜홀더’ 방식을 이용한 마케팅을 펼치려고 한다. 비록 2차 세계대전에서 이긴 건 미국이지만, 아들의 원수와도 같은 일본이 거대한 시장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 그렇게 그는 비록 탁구 선수는 아니지만 셰이크핸드가 아니라 ‘펜홀더 주의자’가 된다. 셰이크핸드 마티 마우저와 펜홀더 밀턴 록웰 사이의 건널 수 없는 강이 그렇게 만들어진다. 하지만 아무리 펜홀더 주의자라도 마티 마우저의 볼기짝을 탁구 라켓으로 후려칠 때는 때리기 쉽게 셰이크핸드로 잡는다. 결국 인간은 계산에 앞서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

촬영현장의 조쉬 샤프디(왼)와 티모시 샬라메
촬영현장의 조쉬 샤프디(왼)와 티모시 샬라메

〈마티 슈프림〉의 마티 마우저는 〈굿타임〉의 코니(로버트 패틴슨), 〈언컷 젬스〉의 하워드 래트너(아담 샌들러)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어린아이처럼 제멋대로이고,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궁극적으로 눈앞의 미래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이다. 셋 다 이리저리 쫓기는 신세라는 공통점도 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마티 마우저는 ‘백수’인 코니, ‘보석상’인 하워드 래트너와 달리 세상에 널리 알려진 유명 탁구 선수로서 이른바 ‘공인’이다. 이전 작품들처럼 거의 하룻밤에 벌어지는 일을 실시간으로 긴박하게 펼쳐내는 서사 안에서, 정해진 경기 스케줄도 있고 반드시 체크인해야 하는 비행기도 있다. 그처럼 정신없는 여정 속에서 알아보는 인간들도 왜 이리 많은가. 〈마티 슈프림〉이 〈굿타임〉이나 〈언컷 젬스〉와 비교해 더 숨 가쁘고 위험천만한 로드무비인 이유가 바로 거기 있다.


영화 속 물건들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 ‘주성철의 사물함’을 시작으로 떡상을 기대하는 배우 사용 설명서 ‘김지연의 보석함’, 내 마음을 움직인 영화음악 감상실 ‘추아영의 오르골’, 서브컬처 잡상인의 구매일지 ‘성찬얼의 만화책’까지 씨네플레이 기자들이 저마다의 취향과 시선으로 격주 연재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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