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아영의 오르골] 오디세우스의 무너진 내면을 풍경화한 '오디세이'의 음악들

나는 영화 속 음악에 꽂힌다. 음악은 때때로 보이는 이미지와 들리는 대사만으로는 다 전할 수 없는 인물의 내밀한 감정을 들려준다. 창작자의 숨은 의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구가 되기도 한다. 내게 영화 음악을 이해하는 것은 영화에 가닿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추아영의 오르골’은 음악을 경유해 영화의 목소리를 더 가까이에서 들어본다. (P.S. 음악을 들으며, 글을 읽어 주기를 바란다.)

〈오디세이〉
〈오디세이〉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오디세이〉는 오디세우스의 신화적 모험담을 다룬 호메로스의 고전 서사시를 전쟁의 참상을 다룬 현대적 비극으로 재해석한다. 여기서 오디세우스(맷 데이먼)는 전쟁의 승리를 거둔 명예로운 영웅에서 비극을 일으킨 자신의 선택을 참회하는 성찰적 인간으로 거듭난다. 영화 속 오디세우스는 10년간 이어진 트로이 전쟁을 자신의 계략을 통해 승리로 이끌었지만, 그 결과로 전쟁의 끔찍한 참상을 목도하고 귀향의 어려움을 겪는다. 루드비히 고란손의 음악은 이러한 오디세우스의 윤리적 고뇌를 섬세하게 표현한다. 고란손은 놀란의 주문에 따라 청동기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오케스트라를 완전히 배제한 음악으로 고대 그리스의 시대적 질감을 청각적으로 구현한다. 주로 대담한 실험 정신으로 예상치 못한 장르를 결합하고 다양한 악기를 조합해 온 고란손은 이번 작품에서도 고대 악기와 신시사이저를 결합한 음악으로 고대 그리스의 낯선 세계를 그려낸다. 그중 트랙 ‘Odysseus’와 ‘Sirens’는 오디세우스의 심리적 궤적을 따라가며 그의 무너져버린 내면을 풍경화한다.


세이렌의 매혹적인 노래 ‘Sirens’

〈오디세이〉
〈오디세이〉

트랙 ‘Sirens’는 오디세우스가 귀향을 위한 항해 도중 매혹적인 목소리를 가진 세이렌들을 마주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의 귀는 밀랍으로 막지만, 자신의 몸은 돛대에 묶어둔 채 세이렌들의 노랫소리를 듣는다. 그는 욕망의 충족과 절망을 오가는 세이렌의 노래를 들으며 고통을 느낀다. 이 장면에서 곡 ‘Sirens’는 오디세우스의 공포와 매혹이라는 이중적인 정서를 담아낸다. 고란손은 이 곡을 위해 고대 그리스의 목관악기인 아울로스를 현대적으로 부활시켰다. 아울로스의 왜곡된 고음으로 만들어낸 날카롭고 울부짖는 듯한 소리는 세이렌의 영혼을 갉아먹는 듯한 고통스러운 부름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또 그는 알바니아의 전통 다성 합창인 아이소 폴리포니 창법을 차용하여 세이렌의 목소리를 기묘하게 그려내는데, 이는 오디세우스가 겪는 심리적 해체의 과정을 청각적으로 구현한다. 이내 곡은 이타카를 향한 오디세우스의 갈망을 담은 ‘Ithaca’의 4음절 하행 모티프(트랙 ‘Ithaca’에서 처음 제시된 테마로 ‘Sirens’와 ‘Odysseus’에서 반복되어 등장한다)를 신경을 긁는 듯한 고음의 전자음으로 변형해 오디세우스가 겪는 심리적 광기와 고통을 드러낸다.

〈오디세이〉
〈오디세이〉

붕괴한 영웅의 초상 ‘Odysseus’

〈오디세이〉
〈오디세이〉

〈오디세이〉의 테마곡 ‘Odysseus’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공성전에서 목격한 전쟁의 참상과 자신의 선택이 불러온 비극을 떠올리는 몽타주 시퀀스에서 등장한다. 오디세우스는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자신의 위대한 지략인 ‘트로이 목마’가 ‘제우스의 환대’를 저버린 신의의 배반이자 참혹한 학살을 가져온 기만적인 속임수였음을 깨닫는다. 곡 ‘Odysseus’는 이러한 오디세우스의 심리적 붕괴를 극대화하여 묘사한다. 초반부에는 목관 악기 아울로스의 사색적인 소리와 현악기 리라의 슬픈 선율 위에 ‘Odysseus’의 엄숙한 테마와 이타카 모티프가 집중적으로 흘러나온다. 이후 곡은 청동 징의 강력한 울림으로 인물의 내면적 파편화를 드러내는 황량하고 거친 사운드스케이프를 조성한다. 결국 곡 ‘Odysseus’는 단순한 배경 음악의 차원을 넘어 승리자라는 표식 뒤에 숨겨진 붕괴한 영웅의 초상을 청각적 차원에서 드러낸다.

영화 '오디세이' 속 장면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영화 '오디세이' 속 장면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오디세이〉

오디세우스는 겉으로는 귀향을 욕망하면서 내면에서는 신의를 저버리고 도시를 섬멸한 자신의 계략에 대한 깊은 수치심과 죄책감에 시달린다. 정체성이 완전히 파괴되어 버린 그는 물리적인 고향인 이타카에 돌아가더라도 이전과 같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의 영혼이 안식할 수 있는 심리적 고향은 소멸해 버린 것이다. 곡 ‘Sirens’와 ‘Odysseus’는 이러한 무너져 내린 오디세우스의 내면을 드러낸다. 두 곡은 오디세우스의 고향 이타카를 향한 갈망을 상징하는 4음절 하행 모티프를 반복한다. ‘Sirens’에서 이 모티프는 아울로스의 날카로운 소리와 왜곡된 전자음으로 변형되어 오디세우스의 트라우마를 끌어낸다. 세이렌의 치명적인 유혹은 쾌락을 충족시키는 도구가 아닌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의 과거를 되짚어보려는 시도이자 윤리적 복구 과정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반면 ‘Odysseus'’ 이타카 모티프는 강렬한 타악기 소리와 결합하여 더욱 웅장해진다. 이는 환상이 아닌 실제의 귀환을 드러냄과 동시에 도덕적 부상을 입은 영웅의 정체성 회복을 선포한다. 결국 두 곡은 동일한 테마를 공유하면서 전쟁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붕괴한 영웅이 다시 신의와 윤리적인 정체성을 회복하는 시작과 끝을 이룬다.

[추아영의 오르골] 서브컬처의 메타적 재현 '초(超) 가구야 공주!'의 ‘World Is Mine’와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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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추아영의 오르골] 오디세우스의 무너진 내면을 풍경화한 '오디세이'의 음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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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8. 13.

[추아영의 오르골] 오디세우스의 무너진 내면을 풍경화한 '오디세이'의 음악들

나는 영화 속 음악에 꽂힌다. 음악은 때때로 보이는 이미지와 들리는 대사만으로는 다 전할 수 없는 인물의 내밀한 감정을 들려준다. 창작자의 숨은 의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구가 되기도 한다. 내게 영화 음악을 이해하는 것은 영화에 가닿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추아영의 오르골’은 음악을 경유해 영화의 목소리를 더 가까이에서 들어본다. (P. S. 음악을 들으며, 글을 읽어 주기를 바란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오디세이〉는 오디세우스의 신화적 모험담을 다룬 호메로스의 고전 서사시를 전쟁의 참상을 다룬 현대적 비극으로 재해석한다. 여기서 오디세우스 는 전쟁의 승리를 거둔 명예로운 영웅에서 비극을 일으킨 자신의 선택을 참회하는 성찰적 인간으로 거듭난다.

'언더독', 4K 편집본으로 확 바꿨다… 19일 롯데시네마 단독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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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독', 4K 편집본으로 확 바꿨다… 19일 롯데시네마 단독 개봉

'언더독'의 진화, 4K로 돌아온 '길 위의 뭉치'… 9분의 압축이 만든 서사의 밀도2019년 한국 애니메이션의 새 지평을 열었던 명작이 완전히 새로운 질감으로 스크린에 귀환한다. 4K 해상도의 압도적 화질과 치밀한 재편집을 거친 '길 위의 뭉치'가 그 주인공이다. 제작사 오돌또기는 오는 19일 롯데시네마를 통해 '길 위의 뭉치'를 단독 개봉한다고 밝혔다. 오성윤, 이춘백 감독이 공동 연출한 원작 '언더독'은 이번 리마스터링을 통해 시각적 완성도를 극대화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러닝타임이다. 기존 102분이었던 상영 시간을 '93분'으로 과감히 압축해 서사의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작품이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를 한층 선명하게 세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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