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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아영의 오르골] 삶의 아름다움을 머금은 돈 헤르츠펠트 '좋은 날'과 스메타나의 ‘몰다우’

나는 영화 속 음악에 꽂힌다. 음악은 때때로 보이는 이미지와 들리는 대사만으로는 다 전할 수 없는 인물의 내밀한 감정을 들려준다. 창작자의 숨은 의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구가 되기도 한다. 내게 영화 음악을 이해하는 것은 영화에 가닿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추아영의 오르골’은 음악을 경유해 영화의 목소리를 더 가까이에서 들어본다. (P.S. 음악을 들으며, 글을 읽어 주기를 바란다.)

〈좋은 날〉
〈좋은 날〉

돈 헤르츠펠트 감독의 애니메이션 〈좋은 날〉(It’s Such a Beautiful Day)은 기억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시간의 본질을 탐구한다. 미국 독립 애니메이션계에서 예술성을 인정받은 감독인 돈 헤르츠펠트는 캐릭터와 배경의 세부적인 묘사를 최소화하는 미니멀리즘 스타일을 고수한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는 미니멀리즘 스타일의 애니메이션과 다중 노출 기법을 이용한 실사 영상을 혼합하고, 각종 특수 효과를 실험해 시간의 동시성을 표현한다. 이처럼 단순한 미학에서 시작된 그의 영화는 늘 실험적 기법으로 확장되어 독창적인 시각 언어를 구축했다. 〈좋은 날〉은 삶과 죽음, 시간의 비선형성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으나, 헤르츠펠트 특유의 블랙 코미디와 실존주의적 통찰을 통해 죽음이 오히려 삶을 풍요롭게 하고 의미를 부여한다는 역설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관객은 빌의 조각난 기억과 환각을 따라가며 개인의 정체성과 가족, 그리고 존재의 본질에 관한 심오한 명상에 잠기게 된다. 여기서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의 교향시 ‘몰다우’는 영화와 유기적인 결합을 통해 주제 의식을 드러낸다.


〈좋은 날〉
〈좋은 날〉

빌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신경 장애로 기억을 잃어간다. 지극히 평범했던 그의 일상은 한순간에 병에 의해 잠식되고, 어렴풋하게 남은 과거의 기억과 발작으로 인한 환각이 불쑥불쑥 그의 현재를 침투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마저 기억하지 못하게 된 빌은 의식의 쇠퇴 속에서 점점 죽음을 향해 간다. 그러나 뜻밖에도 죽음은 그의 삶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 낸다.


거대한 삶의 은유,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중 제2곡 '몰다우'

〈좋은 날〉
〈좋은 날〉

영화에서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의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Má Vlast) 중 제2곡 ‘몰다우’(Vltava (The Moldau))는 단순한 배경 음악을 넘어서서 영화의 주제를 감정적으로 번역하는 역할을 한다. 본래 이 곡은 보헤미아의 숲에서 시작된 두 개의 물줄기가 프라하를 가로질러 거대한 강을 이루는 여정을 묘사하며, 체코의 자연과 역사, 민족의 기억과 삶을 그려낸다. 암석에 부딪히면서도 나아가는 강물의 여정은 19세기 후반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 아래에서 고난을 이겨내고 해방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는 체코의 역사를 상징한다. 또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나아가는 삶의 지속성과 체코의 민족성을 함께 드러낸다.

〈좋은 날〉
〈좋은 날〉

영화 속에서 ‘몰다우’는 민족의 역사가 아닌 개인의 삶을 상징하는 장치로 바뀐다. 영화는 스메타나의 음악이 강의 수원에서 강의 하류로 나아가는 강물의 물리적 경로를 추적하듯이, 죽음에 가까워진 빌이 새로운 각성을 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음악의 리듬에 맞춰 편집한다. 우선 헤르츠펠트는 영화의 시작점에서 빌의 평범한 일상의 순간과 ‘몰다우’의 도입부를 함께 등장시킨다. 플루트와 클라리넷의 미세한 소리로 시작하는 곡의 도입부는 빌이라는 인물의 삶을 관객에게 점진적으로 펼쳐낸다.

〈좋은 날〉
〈좋은 날〉

영화는 3개의 챕터로 나누어져 있고, 1장 끝부분에서 다시 ‘몰다우’의 마지막 부분이 등장한다. 여기서 시련과 역경을 딛고 일어선 체코 민족의 강인함을 드러냈던 곡은 절망적인 상황을 이겨내고 삶을 지속하는 인간의 생명력을 드러내는 것으로 바뀐다. 일시적으로 병세가 호전된 빌은 출근길의 버스 안에서 창문 너머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본다. 헤르츠펠트는 이 장면에서 비가 내리는 평범한 풍경을 과거와 현재, 미래가 겹쳐진 이미지로 그려내며 시간의 동시성을 표현한다. 헤르츠펠트에게 있어 “시간의 흐름은 단지 환상에 불과하고, 과거는 절대 사라지지 않으며 미래는 늘 이미 일어나 있다”. 이 장면은 선형적으로 시간을 감각했던 빌이 비선형적으로 시간을 감각하기 시작한 인지적 전환점을 드러낸다. 아무런 의미 없이 그저 쳇바퀴 돌듯이 살아온 빌은 죽음의 가능성을 마주한 후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본다.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빌은 자신의 파편화된 기억과 삶의 조각들이 결국 군단을 이루는 거대한 시간들 속에 존재함을 어렴풋이 느낀다. 여기서 ‘몰다우’의 마지막 부분은 금관악기가 주도하는 웅장한 찬가 풍의 선율을 울려 퍼지게 하며 경이로운 순간을 완성한다. ‘몰다우’는 영화의 1장을 끝맺으며, 빌이라는 개인의 삶과 일상의 풍경을 소리로 그러안은 채 장엄하게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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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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