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서사시에서 길어올린 메시지와 비주얼,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 시사 후기

〈오디세이〉
〈오디세이〉

크리스토퍼 놀란의 한계 돌파, 그런 표현이 절로 떠올랐다. 8월 5일 개봉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오디세이〉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옮겼다. 「오디세이아」는 그리스군의 승리로 끝난 트로이전쟁 직후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 왕의 이야기를 담은 대서사시로, 지금까지도 문학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고전이다. 그리스 시대를 배경으로 한 대작을, 아날로그적 연출의 장인 크리스토퍼 놀란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것에서 화제를 모은 〈오디세이〉는 북미를 비롯해 먼저 개봉한 국가에서 흥행과 비평 모두 성공을 거두며 한국 관객들을 더욱 조바심 내게 했다. 감독 및 주연 배우가 내한을 예고한 〈오디세이〉는 7월 23일, 언론배급시사회를 진행했다. 단순한 평단의 호평을 넘어 일반 관객층까지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는 영화의 실체를 먼저 본 후기를 전한다.


영웅의 신화 대신 위대하고도 하찮은 인간

〈오디세이〉
〈오디세이〉

〈오디세이〉(와 원작 「오디세이아」)는 보통 ‘오디세우스의 귀향기’로 요약되곤 한다. 그러나 〈오디세이〉는 이렇게만 요약하기가 어려운데, 영화의 한 축은 오디세우스가 돌아오지 못한 이타카의 인물들이 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트로이전쟁이 끝나고 10년, 트로이의 목마로 전쟁의 승기를 가져온 지략가 오디세우스의 영웅담은 노래가 돼 전해지지만 정작 당사자 오디세우스는 돌아오지 않았다. 왕좌가 빈 국가엔 구혼자들이 몰려들고, ‘제우스의 법’(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에 따라 그들을 내쫓을 수 없다. 왕비와 왕자는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굳게 믿지만 그럼에도 왕좌를 영원히 비워둘 순 없다. 반면 오디세우스 본인은 전쟁의 마침표를 찍은 영웅이지만 가는 곳마다 거듭 위기를 맞는다. 영웅담만 있고 영웅이 없는 곳, 영웅담이 아닌 생사를 오가는 위기를 마주한 영웅. 두 갈래의 전개가 〈오디세이〉를 이끈다.

지난 세 작품에서 영화와 시간에 대한 구성과 형식을 실험해온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번 작품에선 상대적으로 이해가 편한 구성을 택했다. 아마도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관람하는 관객들에게 이야기의 핵심을 전하기 위함일 것이다. 동시에 그는 이 작품에 다양한 갈래의 사유를 유발하도록 이야기를 채운다. 신화이자 인간의 여정인 원작의 줄기를 따라 신과 인간, 삶과 죽음, 전쟁과 위협, 시대의 몰락 등을 자연스럽게 이야기 내에 던져둠으로써 원작을 몰라도 해당 원전의 풍부한 장을 감지할 수 있다. 영웅의 신화가 아니라 신화와 공존하는 시대의 인간으로 오디세우스를 비추는 〈오디세이〉는 인간이란 얼마나 위대한가, 동시에 얼마나 하찮은가 묻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질문이 엿보인다.


이질감 없는 신화 속 세계, 확실한 존재감의 출연진

〈오디세이〉
〈오디세이〉

근래 크리스토퍼 놀란이 보여준 구성과 형식의 시너지는 한발 물러선 자리엔 작품의 정서와 이미지가 한 발짝 앞서 나온다. 비현실적인 것을 현실적으로 끄집어내는 데 주력한 〈오디세이〉는 신화적 존재가 스크린에 모습을 보이는 순간, 그것이 유발하는 경이 이상의 공포를 고스란히 구현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작품에 관객이 기대하는 사실적인 표현은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하다. 분명 ‘신화’에 해당하는 이야기임에도 장면 내 등장하는 모든 신화적 묘사들이 IMAX 70mm 필름의 높은 해상도에도 전혀 이질감 없이 담긴다. 터무니없을 정도로 사실적이라서 오히려 ‘이걸 어떻게 찍었지’ 하는 궁금증에 몰입이 깨진다고 말해도 될 정도다. 한편으로 이 정도의 로케이션과 특수효과, 촬영을 병행할 수 있는 할리우드의 노하우와 자본력이 프레임 내 영상만으로도 느껴질 것이다. 이 여정의 웅장함과 격정을 목격하는 최선의 선택은 아이맥스 70mm 필름의 1.43:1의 비율로 상영하는 IMAX GT관이지만, 차선책은 루드비히 고란손의 음악과 사운드팀이 만든 놀라운 시너지를 느낄 수 있는 사운드가 좋은 관을 추천한다.

〈오디세이〉
〈오디세이〉

이른바 초호화 캐스팅으로 구성한 출연진 또한 납득이 간다. 놀랍게도 이 배우들의 일부는 예상보다 적은 분량으로 등장한다. 그럼에도 각 캐릭터가 놓인 환경을 그대로 녹여내는 연기가 관객을 압도한다. 특히 왕비 페넬로페 역의 앤 해서웨이와 야심가 안티노오스 역 로버트 패틴슨의 존재감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두 배우를 신뢰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물론 오디세우스 역을 맡아 영화 전체를 이끄는 맷 데이먼의 연기가 가장 인상적이다. 비록 영웅적 모습은 거의 묘사되지 않음에도 영화의 막바지에 도달하면 그에게 붙은 영웅담을 신뢰하게 만드는 마법을 보여준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그려낸 인간의 신의

〈오디세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가운데)
〈오디세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가운데)

그동안 〈오디세이〉를 이야기할 때 간과했던 건 왜 크리스토퍼 놀란이 〈오펜하이머〉 다음으로 〈오디세이〉를 꺼내들었는가이다. 오디세우스는 그리스 신화를 대표하는 ‘인간’ 영웅 중 한 명이다. 〈오디세이〉는 영웅담에 감춰진 인물을 재구성해 전쟁이란 것이 만든 신화의 허상을 거둬낸다. 매일같이 전쟁의 전조가 끊이지 않는 이 시대에, 지성인이 갖는 공포 혹은 고통에 대한 이야기로 〈오디세이〉를 귀결한다. 〈오디세이〉 자체로도 완결성이 있으나 세계적 전쟁에 마침표를 찍었지만 누명과 죄책감에 시달린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결부하면 한층 더 흥미로운 짝패가 될 것이다.

〈오디세이〉
〈오디세이〉

호평 일색인 영화이지만, 사실 여전히 길다는 생각은 든다. 무엇보다 (상영시간 3시간을 넘을 수 없는 아이맥스 70mm 필름의 한계에 맞춰) 그 긴 템포를 어떻게든 줄이기 위해 때로는 거칠게 넘어가는 편집이나 IMAX의 해상도에서 더욱 선명한 액션·리액션 샷의 묘한 빛깔 차이도 은근히 거슬린다. 보는 이에 따라 다소 노골적인 메시지 전달도 웅장한 영화에 썩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오디세이〉가 밀어붙이는 기세에는 영향이 없다. 〈오디세이〉는 그 이름에 걸맞게 스크린의 극한까지 활용해 귀향길을 담아낸다. 신화이자 영웅, 왕이자 인간이었던 오디세우스의 얼굴을 통해 〈오디세이〉가 보여주는 인간의 신의를 극장에서 만나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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