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주인 버스터 키튼 ③ 대표작 리뷰 '우리의 환대'(1923)와 '셜록 주니어'(1924)

〈셜록 주니어〉는 44분이라는 애매한 상영시간이 아니었다면, 영화사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기록될 만하다.

〈우리의 환대〉
〈우리의 환대〉

프레임 내의 끊임없는 슬랩스틱 운동 이미지,

〈우리의 환대〉(1923)


윌리 맥케이(버스터 키튼)는 땅을 상속받기 위해 고향으로 향한다. 기차의 철로는 엉망이고 댐도 무너지는 등 위험천만한 길을 헤치며 나아간다. 그러던 중 만난 버지니아 캔필드와 친해져 집에 초대받게 되는데, 버지니아와 윌리는 맥케이 가문과 캔필드 가문이 오랜 원수였던 것을 모르고 있다. 겉으로는 점잖게 ‘손님접대법’을 보여주나, 버지니아의 오빠인 캔필드 형제는 그를 죽이려 한다. 〈우리의 환대〉에는 위험천만한 관계와 환경을 기어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버스터 키튼 영화의 매력이 듬뿍 담겨 있다.

〈우리의 환대〉

윌리는 남부 부모의 집을 유산으로 받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간다. 철로의 모양은 제멋대로이고 여기저기 요철도 있다. 심지어 기관사가 방심하는 사이 철로를 벗어나 평지로 가기도 한다. 기차 굴뚝에 맞춰 설계된 터널의 모습에서 보듯 버스터 키튼은 야외 로케이션의 실제 풍경도 스튜디오 세트 다루듯 자유자재로 변형한다. 이렇게 현실의 풍경을 바꿔놓음으로써, 그의 영화는 자연과 인공적 세트를 오가는 기이한 희극적 효과를 획득한다.

〈우리의 환대〉
〈우리의 환대〉

버스터 키튼의 영화가 보여주는 경제적인 미장센은 깊은 심도의 화면에서 발생한다. 두 개의 사건을 대조적으로 동시에 제시함으로써 그 긴장감이 극대화된다. 윌리가 음모를 엿듣는 것을 모르고 작당 모의하는 캔필드 형제, 그리고 숨어있는 악당을 보지 못하는 윌리의 모습을 한 화면에 세팅함으로써, 빈틈없이 서사를 구축한다. 사진에서 기관사는 자신의 부주의로 떨어져 나가 이미 저만치 가고 있는 객차를 발견하지 못해 어안이 벙벙하다. 공간 배열의 심도에 힘입어 두 개의 사건이 병치되며 서스펜스가 발생한다. 특히, 댐이 폭파되는 장면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은 버스터 키튼을 가려주지만, 그것은 이내 드러나고 말 것이다. 후면 공간에 있는 윌리를 물이 감추면서 캔필드 형제의 움직임은 전면에 드러난다. 버스터 키튼은 배경을 지우고 새로운 전경을 갑작스럽게 드러내 주고 구분하면서 스크린 구도의 평면성을 깨트리고 3차원의 공간을 창출한다. 같은 공간에 자리하면서도 서로 가까이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면서, 윌리를 찾아 헤매는 캔필드 형제의 움직임에 새로운 서사와 미장센을 덧붙인다.

〈우리의 환대〉

낚시를 하던 윌리의 모습이 여기서 새롭게 변주된다. 윌리의 몸이 마치 낚싯줄에 물고기가 걸리듯 밧줄에 걸리는 것. ‘인간 낚시’를 통해 〈우리의 환대〉는 서로 다른 상항에서 발생하는 영화의 내적인 통일성을 보여준다. 그것은 영화에서 윌리가 처한 상황에 대한 비유이면서, 두 가지 서사적 사건을 시간차를 두고 병치시키면서 얻어지는 새로운 희극 서사의 구조이다. 또한 그 사건 자체는 버스터 키튼만이 보여줄 수 있는 슬랩스틱 스턴트 연기의 전형을 보여주는데, 줄에 매달린 채 폭포에서 떨어지는 여자를 서커스하듯 구해내는 버스터 키튼의 연기는 감탄을 금할 수 없게 한다.


〈셜록 주니어〉
〈셜록 주니어〉

시대를 한참 앞서간 영화 속 영화의 사유,

〈셜록 주니어〉(1924)

〈셜록 주니어〉는 44분이라는 애매한 상영시간이 아니었다면, 영화사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기록될 만하다. 탐정이 되고 싶어 하는 시골 극장의 영사기사(버스터 키튼)가 객석에 앉아 「탐정이 되는 법」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잠들어 꿈을 꾸는데, 그 꿈속에서 환상처럼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이 나온다. 그 두 인물은 영사실에서 스크린을 바라보는 창(영화 속 이중 프레임)으로 함께 드러난다. 〈셜록 주니어〉는 꿈 장면의 오프닝으로 시작하여 버스터 키튼이 관객 역할로 출연해 극장 안의 여러 사람들을 동시에 연기했던 〈플레이 하우스〉(1921)의 확장판이다.

〈셜록 주니어〉

영사기사는 흠모하던 여자에게 구애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그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러던 중 삼각관계의 라이벌인 남자가 그녀 아버지의 시계를 훔쳐 영사기사에게 누명을 씌운다. 스크린으로 걸어 들어간 영사기사 버스터 키튼은 이제 영화 속 영화의 주인공 셜록 주니어가 되어 진짜 범인을 찾는 모험을 시작한다. 이후 현실 속의 일(한 여자를 사모하나 시계도둑으로 몰려 여자에게 버림받은 영사기사)이 꿈속에서 연극처럼 재현된다. 영화 속으로 들어간 그의 앞에 극장의 무대는 사라지고 전혀 다른 자연의 프레임이 펼쳐진다. 그는 이제 다시 스크린 밖으로 나올 수 없다.

〈셜록 주니어〉
〈셜록 주니어〉

영화로 들어가 셜록 주니어가 된 버스터 키튼은 장면 전환과 함께 갑자기 정글 속에 있다. 프레임을 벗어나지 않는 버스터 키튼의 뒤로 미장센으로서의 배경만 계속 바뀌며 그를 위기로 몰아넣는다. 브레히트적 거리두기의 초현실적 아이디어, 선형적인 내러티브의 파괴, 그 파괴의 순간에 웃음이 발생한다. 그처럼 영화 속 무대의 사이즈가 영화 속 영화를 보여주는 스크린 사이즈와 같아지면서, 셜록 주니어의 본격적인 활약상이 펼쳐진다.

〈셜록 주니어〉
〈셜록 주니어〉

하지만 그것은 꿈이자 환상이다. 그 꿈에서만큼은 그가 세계의 주인, 명탐정 셜록 주니어다. 꿈(영화 속 영화)에서 사건을 해결한 셜록 주니어와 현실(영화 속 현실) 속에서 누명을 벗은 영사기사 버스터 키튼이 하나로 만나는데, 그것은 다시 영화 속 이중의 프레임 속에서 이루어진다. 〈셜록 주니어〉는 꿈과 영화의 관계, 영화와 현실의 결합에 대한 영화역사의 기념비적 순간이다.


영화인

'호프', 나홍진이 그린 한국의 편집증적 믿음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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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에 관한 이 글은 1부에서 이어집니다. 감독은 외계인의 위치를 잘못 짚는 범석의 모습을 통해 관객들도 교란한다. 범석과 종구는 둘 다 경찰이지만 겁도 많고 무능하다. 두 영화의 인물이 공유하는 무능한 경찰이라는 설정은 재난의 상황에 부재하는 정부를 드러내는 알레고리이지만, 동시에 나홍진이 관객에게 제안하는 유희적 게임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나홍진은 의도적으로 주인공을 재난과 같은 상황에서 무너지고, 혼란을 느끼는 보통의 사람으로 설정한 후 주인공에게 이입하는 관객의 감정을 역이용한다. 주인공의 불완전한 시점을 공유하는 관객은 감독이 설계한 거대한 인지적 함정 속에서 주인공과 함께 오인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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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는 이미 예고편에서부터 외계인을 등장시키며 인간과 외계인을 둘러싼 정면 대결을 기대케 했다. 그러나 나홍진 감독은 외계인을 러닝타임의 50분이 지난 이후에 비로소 등장시킨다. 그렇다고 초반 50분 동안 외계인의 전사를 빌드업하는 것도 아니다. 이질적인 것이 한데 모여 있는 모호한 공간인 호포항에 관한 배경 설명도, 인물의 전사도 설명하지 않는다. 영화의 이해를 돕기 위한 모든 설명을 최소화한 채 그가 서사적 측면에서 관객에게 보여주기로 선택한 것은 그저 사소한 소문에서 시작된 일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 가는 진행 과정이다. 관객은 주인공 범석 의 시점으로 그 과정을 따라간다. 그러나 범석은 사건에 관해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자꾸만 외계인의 위치마저 오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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