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트로가 트렌드다. 20대 청춘들의 패션, 음악, 소품 어느 하나 Y2K 감성이 침투하지 않은 곳이 없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출신 1990년생 한창록 감독의 장편 데뷔작 〈충충충〉은 이 레트로 감성을 스크린으로 대놓고, 적극적으로 끌어온 영화다. MTV 스타일의 현란하고 빠른 화면 속, 10대들의 방황과 폭력, 방황, 욕설, 욕망의 감정과 액션이 충돌한다. 2018년 워싱턴 벤턴에서 있었던 살해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충충충〉은 세 아이의 엇갈린 욕망이 불러오는 파국을 그린 영화다.

용기만 있을 뿐 모든 게 서툰 용기(주민형), 용기의 사랑을 받지만 늘 애정이 고파 주목받고 싶은 지숙(백지혜), 그런 지숙에게 ‘우주’와도 같은 이름마저 우주인 우주(정수현). 세 청춘의 화살표가 비켜나갈수록, 파국의 크기도 몸집을 부풀린 채 관객을 충격에 빠뜨린다. ‘날 것의 감정’이 만들어 내는 주체 못 할 에너지. 〈비트〉나 〈눈물〉,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아니 〈말죽거리 잔혹사〉를 보아 온 관객에게는 기시감마저 든다. 어쩌면 30년을 거슬러 올라 가 한국영화의 청춘물의 끊겼던 맥이 이어지는 기분이다.

중요한 건 레트로는, 새롭게 해석된 과거이지, 과거 그 자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창록 감독이 직시하는 것은 분명 2026년 현재의 아이들이다. 지금의 순애보는 과거와는 한참 결이 다르다. 누가 누구를 지켜주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이 영화의 캐릭터 누구 하나 빠짐없이 자기 감정의 ‘주체’가 된다. 과시가 곧 선망이 되는 세상. 모두가 실시간으로 열람할 수 있는 유튜브와 SNS가 한 축을 형성하는 사회에서 아이들은 각자의 불안에 빠져 약물을 소비하고 폭력을 정당화 하며 비극 까지도 전시한다. 영화는 후반부 말그대로의 ‘충격’적인 영상에 이르기까지 지금의 십대 문화를 지배하는 공기를 담아낸다. 바로 그 지점에서 〈충충충〉은 지금의 관객을 움직일 정확한 언어와 스타일을 찾아낸 가장 핫한 레트로 청춘물이다. 영화를 연출한 한창록 감독과 이 영화로 강렬한 캐릭터를 부여받은 두 배우, 주민형, 백지혜 배우를 만났다.

영화의 엔딩에 ‘본 영화는 실제 사건에서 착안했다’는 문구를 명시했는데요. 이야기를 구상하게 된 계기와 실제 사건 이야기를 먼저 부탁드립니다.
한창록 범죄뉴스를 보다가 2018년 워싱턴 벤턴에서 있었던 사건을 접했는데요. 이 영화와 큰 모티브 면에서 조금 닮아 있어요. 시골 마을에 소년과 소녀가 살고 있었는데 전학생이 찾아오면서 소녀의 삶이 망가져요. 소년이 빨간 복면을 쓰고 복수를 하려고 한다는 내용이었어요. 소녀의 생일선물로 그런 일을 계획한 거죠. 실제 이 사건은 미수 사건으로 끝났는데요. CCTV 화면에 붉은 복면을 쓴 소년의 모습을 봤는데, 그 이미지가 굉장히 강렬하게 남아서 시나리오로 풀어보고 싶었어요.
스토리로 보면 과거 청춘영화들의 계보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데요. 1990년대 후반, MTV 아날로그 감성을 접목해 그 느낌을 강화하는데요.
한창록 사실 10대들, 젊은 층 사이에서 2000년 전후의 Y2K 복고 문화가 유행한 지는 꽤 됐는데요. 왜 이 문화가 유행할까를 생각해 봤는데, 시대적인 감각이 비슷해 보였어요. 혼란스러운 시대의 감각이라고 해야 할까요. 1990년대 말에는 종말론도 있었고, 폭주족이나 본드 같은 것들이 사회적으로 굉장히 많이 이야기되던 시기였어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여러 가지 시도들이 있었고요. 그런 것들이 지금 시대와도 비슷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당시 한국은 IMF 시기였고, 지금도 저성장 시대를 지나면서 젊은 세대가 미래를 꿈꾸기 어려운 상황인데요. 그래서 그들만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방식들이 닮아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스타일로 한번 찍어보고 싶었어요.

연상되는 작품들이 많았는데요. 〈비트〉 〈말죽거리 잔혹사〉 같은 청춘영화들이 자연스레 떠올랐어요.
한창록 사실 하이틴 영화의 굉장히 전형적인 플롯을 따른다고 생각해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소년과 소녀가 있고, 거기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면서 관계가 파괴되고, 삼각관계가 형성되는 이야기들이요. 그런 이야기들은 굉장히 고전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 사건을 접했을 때도 그런 전형적인 하이틴 영화의 플롯이 굉장히 다크한 버전으로 펼쳐진 것 같아 거기서 흥미를 느꼈었어요.
강렬한 데뷔작인 동시에, 캐스팅 라인도 신선해요. 새로운 배우의 발굴이 함께한 작품인데요. 주민형 배우는 첫 주연 도전인데요.
주민형 첫 장편의 주연을 맡아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됐고, 긴장도 엄청 많이 했어요. 감독님을 만나고 긴장을 많이 했는데 그 모습까지도 그냥 솔직하게 보여드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걱정도 있었는데요. 제가 타투가 있어서 고민하다가 미팅 마지막 쯤에 “감독님, 사실 제가 타투가 있습니다. 괜찮을까요?”라고 했죠. 그랬더니 감독님이 “좋은데요. 다음에 또 해보시죠”라고 말씀해 주셔서 안심이 됐어요.

지숙 역의 백지혜 배우도 강렬한 연기를 보여주는데요. 기존 청춘영화에서 주로 피해자이거나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묘사되던 여성 캐릭터의 틀을 깨고 용기와 덤보, 세 명의 관계에 한 축을 형성하는 역할이죠, 동시에 애정 결핍과 불안에 시달리는 10대 소녀이기도 한데요, 지숙을 어떤 인물로 이해하셨나요.
백지혜 지숙은 배가 고픈 사람이 아니라 정서가 고픈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상태가 거식증이라는 형태로 드러나는 거죠. ‘내가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계속 부족하기 때문이야.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야’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더 노력하려고 하고, 어떻게든 눈에 띄려고 하죠. 현실에서 관심을 못 받으면 인터넷에서라도 관심을 받고 싶어 하고요.

거식증을 표현하기 위한 외적 도전과제도 컸는데요.
백지혜 거식증에 관한 책과 논문을 살펴보며 공부를 했고요. 모델 활동을 하면서 단기간에 살을 뺐던 기억도 있었는데요. 이번에도 체중 감량을 했어요. 그리고 사람들과 거의 어울려 다니지 않았어요. 원래 제가 굉장히 밝은 성격이라 조금만 이야기해도 바로 리액션이 나오는데 그러면 지숙이 사라질 것 같았어요. 혼자 있는 쓸쓸함과 가난함, 마음의 공허함을 계속 느끼자. 그래서 촬영할 때도 거의 혼자 있었고, 말을 많이 하지 않았어요.
▶ 〈충충충〉 한창록 감독, 주민형, 백지혜 배우와의 인터뷰는 2부로 이어집니다.

댓글 (0)
댓글 작성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