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 나홍진이 그린 한국의 편집증적 믿음②

▶〈호프〉에 관한 이 글은 1부에서 이어집니다.


감독은 외계인의 위치를 잘못 짚는 범석의 모습을 통해 관객들도 교란한다. 범석과 종구는 둘 다 경찰이지만 겁도 많고 무능하다. 두 영화의 인물이 공유하는 무능한 경찰이라는 설정은 재난의 상황에 부재하는 정부를 드러내는 알레고리이지만, 동시에 나홍진이 관객에게 제안하는 유희적 게임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나홍진은 의도적으로 주인공을 재난과 같은 상황에서 무너지고, 혼란을 느끼는 보통의 사람으로 설정한 후 주인공에게 이입하는 관객의 감정을 역이용한다. 주인공의 불완전한 시점을 공유하는 관객은 감독이 설계한 거대한 인지적 함정 속에서 주인공과 함께 오인을 경험한다. 이는 〈곡성〉에서는 대사와 편집(대표적으로 일광이 살을 날리는 굿을 벌이는 시퀀스의 편집)을 통해 드러났고, 〈호프〉에서는 이미지와 사운드를 활용한다. 관객은 범석과 함께 외계인의 소리를 듣는 순간, 나홍진이 쳐 놓은 오인의 덫에 걸려든 셈이다. 또 범석의 시야를 제한하는 구도로 숏의 프레임을 설정해 정보를 최소화한다. 〈곡성〉에 이어 〈호프〉까지 나홍진의 영화가 호불호를 낳는 이유의 일부분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나홍진은 서술 트릭을 통해 관객의 인지 체계를 뒤흔들고, 영화적 체험을 확장하며 지적 유희를 완성한다.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혼란스러운 감정은 누군가에게는 낯설게 다가가 불쾌로 작용하고, 누군가에게는 미학적 보상을 주는 쾌락으로 치환된다.

〈호프〉
〈호프〉

다만 〈곡성〉에서는 소문의 진위를 밝혀두지 않은 채 시작했다면, 〈호프〉에서는 소문이 거짓임을 전제로 하고 시작한다. 영화에서 범석에게 해술의 말을 전한 수렵꾼은 사실 그를 본 적도 없다고 말한다. 여기서 관객은 범석과 다르게 소문의 진위를 알게 된다. 또 해술이 성애(정호연)에게 목격한 것을 진술하는 장면도 그의 말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게 한다. 해술은 외계인의 크기에 대해 4m가 넘는다고 말하지만, 바미기르(카메론 브리튼)의 사체를 해부한 부검의(황석정)는 3m 정도라고 말한다. 또 해술은 4개의 손가락을 펴면서 3마리를 보았다고 말하다가 다시 손가락 하나를 구부린다. 이처럼 해술의 진술은 과장과 왜곡된 기억이 뒤섞인 거짓에 가깝다. 그럼에도 호포항의 사람들은 해술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믿는다. 나홍진은 말의 절대적인 권위를 갖는 해술이 아저씨 캐릭터로 다시 지금의 한국 사회를 비춘다. 사람들은 포퓰리즘 정치인과 인플루언서 등 사회의 영향력을 갖는 사람들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신뢰한다. 또 반대로 자신의 믿음 체계를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 믿음에 부합하고 생각이 맞는 대리인을 만들어 내고, 그에게 권위를 쥐여 준다. 〈곡성〉이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인식의 한계와 불안에 관해 말한다면, 〈호프〉는 거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믿는 합리적인 인식 자체의 거부와 그릇된 믿음에 관해 말한다. 나홍진은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맹목적인 믿음에 부합하는 거짓된 사실을 지키는 것이 진실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본 듯하다. 그는 이번 영화를 통해 눈앞에 보이는 것이 거짓인 걸 알면서도 믿게 하는 모순적 체험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호프〉
〈호프〉


나홍진의 인물들이 품는 그릇된 믿음은 지극히 편집증적이다. 철학자 로베르트 팔러는 정신분석학자 옥타브 마노니의 분석을 빌려 상상의 세 가지 유형으로 미신과 신조, 편집증이 있다고 보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편집증적 믿음을 품는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강박을 지닌다. 그들에게는 “어떤 주장이 참인지를 규정하는 조건이나 회의의 계기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또 “편집증적 주체는 자기가 상상하는 것을 결코 어리석거나 가치 없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자기의 상상에 대해 조금의 거리도 두지 않고 오히려 그것과 완전히 하나라고 느낀다. 편집증적 주체는 생각(또는 상상) 속에 세계 전체를 감싸 넣고, 이 세계에 대해 빈틈없는 설명을 갖는다”. (「나쁜 삶의 기술」, 로베르트 팔러, 나유신 옮김, 사월의 책, 2024, 170-172쪽 참조) 나홍진의 영화에서 인물들은 편집증적 믿음으로 눈앞이 흐려져 타자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자기 내면의 공포를 투사하여 타자를 적으로 규정한다. 나홍진은 이를 반복해서 영화에 녹여내며, 편집증적 믿음이 지금의 한국을 지배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호프〉
〈호프〉

또 나홍진은 한국의 역사적 트라우마가 한국 사회에서 타자를 가려내는 주요한 기준으로 작용한다고 본다. 〈곡성〉과 〈호프〉는 모두 한국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상기시킨다. 〈곡성〉의 외지인은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에 걸친 두 번의 침략과 식민 지배, 집단적 폭력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서 식민 지배의 기억과 트라우마는 낯선 타자의 형상에 투사되고, 그를 악마로 간주하게 한다. 사실 외지인은 실제로는 악마가 아니라 우리에게 남아 있는 역사적 트라우마로 인해 그릇된 믿음이 실제화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감독의 문제의식은 〈호프〉에서도 이어진다. 호포항은 비무장지대 인근에 있다고 설정된 가상의 공간으로 국가 안보에 대한 공포가 서려 있다. 영화에는 간첩 신고 광고판과 현수막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호프〉는 한반도를 할퀸 6.25 전쟁을 상기시키고, 레드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한국의 근현대사의 모습을 가져온다. 극 중에서 성애는 바미기르를 공격하며 “넌 선을 넘었어”라고 말하고, 범석은 다시 양배에게 “이 선을 넘으면 죽일 거”라고 말한다. 그들이 반복해서 말하는 선은 단순한 공간적 경계를 넘어 침범해서는 안 되는 금지의 영역, 소통과 이해가 중단된 물리적이고 심리적 경계로서의 선이다. 그 선을 넘으면 곧바로 적으로 간주하고, 서로를 향한 용서 없는 공격이 시작된다.

〈호프〉
〈호프〉

하지만 〈호프〉는 괴물화된 외계인에게 인간과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을 남겨둔다. 인간과 이질적인 존재인 외계인은 얼굴을 가짐으로써 동질감과 이질감이 동시에 충돌하는 존재가 된다. 나홍진은 그들에게 감정을 읽을 수 있는 얼굴을 남겨둠으로써 이해될 여지를 마련한다. 범석은 바미기르의 눈물을 보고 마음이 이상해진다. 외형적으로는 외계인이지만, 인간의 익숙한 감정을 내비치는 바미기르의 얼굴은 범석이 그를 외계인으로만 볼 수 없게 만든다. 이는 타자를 오로지 적으로만 규정하려는 편집증적 믿음에 균열을 내는 장치로 작용하며, 관객 역시 외계인과 인간 사이의 모호한 경계에서 혼란에 빠진다. 영화가 말하는 절체절명의 재앙에서 벗어날 희망은 외계인 아기 칼리의 운명에 달려 있지만, 어쩌면 범석이 느낀 “짠함”에 있을 수도 있겠다.

영화인

'호프', 나홍진이 그린 한국의 편집증적 믿음②
NEWS
2026.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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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에 관한 이 글은 1부에서 이어집니다. 감독은 외계인의 위치를 잘못 짚는 범석의 모습을 통해 관객들도 교란한다. 범석과 종구는 둘 다 경찰이지만 겁도 많고 무능하다. 두 영화의 인물이 공유하는 무능한 경찰이라는 설정은 재난의 상황에 부재하는 정부를 드러내는 알레고리이지만, 동시에 나홍진이 관객에게 제안하는 유희적 게임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나홍진은 의도적으로 주인공을 재난과 같은 상황에서 무너지고, 혼란을 느끼는 보통의 사람으로 설정한 후 주인공에게 이입하는 관객의 감정을 역이용한다. 주인공의 불완전한 시점을 공유하는 관객은 감독이 설계한 거대한 인지적 함정 속에서 주인공과 함께 오인을 경험한다.

'호프', 나홍진이 그린 한국의 편집증적 믿음①
NEWS
2026. 7. 27.

'호프', 나홍진이 그린 한국의 편집증적 믿음①

〈호프〉는 이미 예고편에서부터 외계인을 등장시키며 인간과 외계인을 둘러싼 정면 대결을 기대케 했다. 그러나 나홍진 감독은 외계인을 러닝타임의 50분이 지난 이후에 비로소 등장시킨다. 그렇다고 초반 50분 동안 외계인의 전사를 빌드업하는 것도 아니다. 이질적인 것이 한데 모여 있는 모호한 공간인 호포항에 관한 배경 설명도, 인물의 전사도 설명하지 않는다. 영화의 이해를 돕기 위한 모든 설명을 최소화한 채 그가 서사적 측면에서 관객에게 보여주기로 선택한 것은 그저 사소한 소문에서 시작된 일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 가는 진행 과정이다. 관객은 주인공 범석 의 시점으로 그 과정을 따라간다. 그러나 범석은 사건에 관해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자꾸만 외계인의 위치마저 오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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