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티탄〉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던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이 신작 〈알파〉로 돌아왔다. 줄리아 뒤쿠르노는 〈로우〉, 〈티탄〉 등 금기시되는 욕망을 파격적인 미장센으로 그려내며 독보적인 세계관을 구축한 감독이다. 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신체 변형의 이미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몸으로 체감하게 만드는 감각의 전이, 규범화된 정체성의 해체 등을 그려왔다. 그는 〈알파〉에서 기존의 세계관을 이어가면서도 새로운 변화를 새겨 넣었다. 비극적인 가족드라마의 장르적 색채는 더욱 짙어지고, 전작에서는 볼 수 없었던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구성을 취하며 세계관의 변이를 마주하게 한다. 이처럼 그의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는 〈알파〉는 뒤쿠르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논쟁적인 작품으로 떠올랐다. 제78회 칸영화제 공개 직후 〈알파〉는 메타크리틱 최고점 100점과 최저점 20점을 각각 기록하며 극단적으로 갈린 평단의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단연코 〈알파〉는 올해의 문제작이 될 것이다.


인간의 몸을 석고상처럼 굳게 만드는 혈액 매개 바이러스가 도시를 휩쓴다. 반항적인 13살 소녀 알파(멜리사 보로스)는 어느 날 술에 취한 채 귀가한다. 의사인 알파의 엄마(골쉬프테 파라하니)는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알파의 팔에서 ‘A’라고 새겨진 문신을 발견한다. 문신 도구에 의한 감염을 걱정한 알파의 엄마는 알파에게 바이러스 검사를 받게 한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2주 동안 알파는 학교에서 이미 바이러스 감염자로 낙인찍히고, 아이들로부터 기피 대상이 된다. 이 혼란의 가운데, 알파의 삼촌인 아민(타하르 라힘)이 갑작스레 알파의 앞에 나타난다. 이후 두 모녀는 과거 마약 중독자였던 아민과의 아슬아슬한 동거를 이어간다.
“공포 자체에 의한 오염”

영화 속 혈액을 매개로 전파되는 바이러스는 1980년대를 휩쓴 에이즈를 연상시킨다. 극중 알파의 엄마는 자신의 손을 직접 칼로 찔러 피를 낸다. 직후 감염이 의심되는 알파의 손도 바늘로 찔러 피를 내고 자신의 손과 맞대어 운명을 함께 하기로 한다. 이 장면은 에이즈에 대한 노골적인 은유로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질병 그 자체보다 사회적 혐오로 흘러갔던 80년대 에이즈 공포의 비극적 역사를 재현하는 데 더 몰두한다. 문신으로 인한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알파는 학교에서 피를 흘리고, 그 광경을 본 아이들은 알파를 바이러스 감염자로 낙인찍는다. 피를 흘리는 알파를 외면하는 아이들의 기피와 혐오의 시선은 당대의 에이즈 환자들이 겪었던 사회적 오해와 고립의 시간을 투영한다. 또 동성애자인 알파의 담임 선생님에 대한 반 아이들의 조롱과 석고화된 그의 연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차별적 시선도 이를 뒷받침한다. 도덕적 히스테리의 광풍을 목도한 작가 수잔 손택은 자신의 저서 「에이즈와 그 은유」(1989)에서 에이즈를 “나병이나 매독과 함께 가장 의미로 가득 찬 질병 중 하나”라고 칭하면서 질병을 도덕적 처벌로 간주하는 잘못된 사회적 인식으로 의미가 과적된 질병이라고 짚어냈다. 줄리아 뒤쿠르노는 이러한 수잔 손택의 논의를 이어받는다. 그는 인터뷰에서 반복적으로 〈알파〉가 에이즈 그 자체를 다룬 영화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뒤쿠르노는 “영화의 주요 주제가 ‘공포 자체에 의한 오염’”이라 밝히며, 타인에 대한 두려움이 어떻게 사회 전체를 감염시키고, 결국 타자를 배척하는지에 중점을 둔다고 말했다. 〈알파〉는 90년대 에이즈 공포에 대한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감염병이라는 불가항력적 위협 속에서 쉽게 이질적이고 낯선 타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인간의 병적인 공포를 드러낸다.
트라우마의 시간

앞서 말했듯이 〈알파〉는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면서 혼동을 일으킨다. 영화는 미세한 색감의 변화로만 시간대를 짐작하게 한다. 세피아 톤과 붉은빛의 색감이 화면을 물들인 과거의 시간과 달리 현재의 시간은 창백하리만치 서늘한 색감으로 뒤덮여 있다. 현재의 시간을 지배하는 서늘한 색감은 무균실과 같은 공간감을 영화에 불어넣으며, 여전히 과거에 정체되어 있는 인물의 내면을 풍경화한다. 여기서 아민의 존재는 더욱 인지적 혼란을 부추긴다. 과거의 아민은 석고화되는 바이러스의 감염자로 죽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와 달리 현재의 그는 마약 중독자로 등장한다. 영화는 시종 두 인물이 동일인인지 헷갈리게 하고,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겹치는 사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가족의 비극을 폭로한다.


알파의 엄마와 알파는 현재에도 바이러스로 가족을 떠나보낸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현재의 아민은 그들의 끝나지 않은 슬픔과 고통에 의한 트라우마의 망령이다. 아민의 존재는 그의 영화 속 등장 시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알파의 엄마는 알파가 팔에 문신을 새기고 귀가한 밤,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바이러스에 감염된 가족을 곁에서 무력하게 지켜보아야 하는 과거의 고통이 다시 시작될까 봐 두려운 마음을 털어놓는다. 그의 공포는 과거의 기억과 함께 슬픔으로 붙들고 있던 존재를 다시 불러온다. 과거 5살이었던 알파 역시 두려움으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불러오고, 아민을 보기 시작한다. 줄리아 뒤쿠르노는 트라우마에 잠식된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현재와 과거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구성을 취한다. 뒤쿠르노는 인터뷰에서 “트라우마의 시간은 결코 선형적이지 않다. 과거는 플래시백과 뇌를 잠식하는 이미지들의 부활로, 미래는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끊임없이 현재를 침식한다”고 말했다. 그들의 현재는 과거의 재현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끊임없이 구멍이 뚫린 현재다.

다만 감염병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질병과 마약 중독이라는 개인의 선택적 경로를 동일한 층위의 비극으로 묶어버린 설정은 다소 성급한 비약으로 보인다. 사실 극 중 아민의 마약 중독은 자발적 선택이 아닌 감염병의 고통을 잊기 위한 관리에서 시작됐다. 감독은 이 지점을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시선이 질병마저 개인의 도덕적 결함으로 몰아가는 냉혹한 메커니즘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러한 설정은 보통의 마약 중독자들의 현실과는 괴리된 극 중의 작위적인 설정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연결은 논리의 적확성보다는 작가의 주관과 야심이 더 앞선 것으로 보인다. 뒤쿠르노는 영화에서 이러한 복합적인 의미의 연결을 반복해서 그려낸다. 바이러스 감염자와 함께 성소수자, 이슬람 문화권의 이민자들(알파 가족의 배경) 등은 사회적 소수자들의 모습을 파편적으로 그려내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소수자들의 연결을 강조한다. 아민의 팔에 남은 주사 자국을 잇는 선의 이미지는 이러한 주제 의식을 드러낸다. 하지만 영화는 타자와 연결되자는 주제 의식과 달리 지나치게 자기만의 의미 체계 안에 갇혀버린다. 그 단단한 의미 체계 속에서 뒤쿠르노의 드라마는 관객에게 감정적으로 다가가지 못한다. 〈알파〉는 뒤쿠르노의 개인적인 이야기마저 풀어놓은 작가의 야심이 가득한 영화이지만,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하나의 시행착오처럼 보이는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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