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나도 낳을 수 있을까? 아니 낳아도 될까? '우리 둘 사이에'

문화기획자 하치


〈우리 둘 사이에〉
〈우리 둘 사이에〉

장애 여성의 임신을 정면에서 다룬 작품이 있었던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 성과 육체성에 관한 몇몇 이야기가 스쳐 지나가지만, 임신 당사자의 감정과 결정을 오롯이 따라가는 영화를 본 기억은 없다. 장애가 없는 여성들조차 임신과 출산을 망설이는 시대다. 그런 사회에서 장애를 지닌 여성의 임신은 축하 대신 당혹감을, 응원보다 우려를 먼저 받는다. ‘고통이 전제된 선택이겠구나’ 섣불리 단정 짓는 마음이, 이런 이야기를 애써 외면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후천적 장애 여성의 임신을 다룬 영화 〈우리 둘 사이에〉는 분명 낯설고도 반가운 시도다. 단순히 소재가 희소해서 만은 아니다. 장애와 여성, 임신이라는 키워드가 만날 때 흔히 따라오는 정형화된 서사를 경계하며, 영화는 감정의 과잉이나 외화 대신 인물의 내면을 조용히 응시하는 길을 택한다. 신중한 거리두기는 주인공의 불안과 충돌, 낯섬과 망설임을 따라가며 우리가 외면해온 질문을 경유해 보편적 이야기를 세심히 길어올린다. 저출산 시대를 걱정하는 이 사회는 진정 새로운 생명을 받아 키울 준비가 된 곳인가, 라는 해묵은 질문 또한 따라온다.


아기, 나도 낳을 수 있을까? 아니 낳아도 될까?

〈우리 둘 사이에〉
〈우리 둘 사이에〉

은진(김시은)은 17년 차 휠체어 사용자다. “엉망진창이겠지?” 척수장애가 있는 은진이 예기치 못한 임신을 마주하고 남편 호선에게 농담처럼 꺼낸 말이다. 태아의 초음파 사진을 본 호선(설정환)의 첫 마디 또한 “축하해”, 혹은 “잘 됐다”가 아니라, “이런 일 겪게 해서 미안해”였다. ‘이런 일’이란 곧 임신중절을 뜻한다. 다정하고 성실한 호선이지만, 불안정한 시간강사로 일하며 한 생명을 책임질 자신은 없다. 부부의 인생 계획에 없던 출산이라는 변수는 기쁨보다 걱정과 죄책감의 모습으로 밀려온다. 임신 사실을 알린 의사도 은진의 불안함을 부추긴다. 은진이 처한 상황이나 감정을 묻기보다, “더 늦으면 수술이 어려워진다”라며 선택을 서두르라 말한다. 출산은 하나의 가능성이라기보다, 막아야 할 위험처럼 취급된다. 사실 가장 망설인 건 은진 자신이다. 매일 야뇨증 약을 포함한 여러 약물을 복용해야 하고, 임신을 유지할 만큼 몸이 버텨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초음파로 들려오는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듣고, ‘쪼꼬’라는 태명까지 붙여보는 순간, 부부는 조심스레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기 시작한다.


장애 이야기에서 보편의 이야기로

〈우리 둘 사이에〉
〈우리 둘 사이에〉

영화는 장애 여성의 '도전’이나 ‘희생’ 같은 거창한 수사 대신,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는 두 사람이 함께 겪는 고민과 선택의 시간을 세심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세공한다. 은진은 임신 기간 내내 한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나는 아이를 키워도 되는 사람인가?” 이 질문은 남편 호선이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서 시작된다. 어느 날, 동네 아이가 방치되는 모습을 보고 “그런 사람들은 애를 키우면 안 되는 거 아닌가”라고 말했던 호선의 말은, 은진의 마음속에 깊은 파장을 남긴다. 그는 자신이 ‘아이를 키워도 되는 사람’의 범주에 들어가는지, 출산이라는 선택이 자기 욕심은 아닌지를 끊임없이 자문한다. 멈추지 않는 차들로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한 채 주춤거리는 은진의 눈을 클로즈업하고, 2층 높이의 칼국숫집 계단 앞에서 좌절하는 그의 뒤통수를 비추며 영화는 시작된다. 차별을 짚어가던 카메라는 서서히 임신이 불러오는 신체의 변화, 죄책감, 그리고 알 수 없는 불안으로 시선을 옮겨, 그것이 여성들이 공유하는 보편의 감정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개성 있게 포착한다.


“나도 그랬어” “괜찮을 거야”

〈우리 둘 사이에〉
〈우리 둘 사이에〉

장애 당사자인 은진에게 임신과 출산을 둘러싼 고민은 어쩌면 더 깊고 복잡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의사라서, 가족이라서 다가올 고통을 섣불리 가늠하고 판단하는 것 역시 편견일 것이다. 성지혜 감독 역시 영화 준비 초기 ‘임신한 장애 여성’이라는 특수한 조건에 맞춰 자료 조사를 시작했다고.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장애인 임신부에게서만 나타나는 특별한 증상 같은 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임신으로 인한 몸의 변화와 심리적 불안은 장애 여부와 무관하게 일어난다는 것을 깨달은 감독은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 짓는 대신, 임신한 몸이 겪는 다양한 변화와 감정을 구체적으로 그려내는 쪽으로 연출 방향을 바꾸게 된다. 영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관객에게 묻는다. “장애 여성도 아이를 가질 수 있는가?”가 아니라, “왜 아직도 그것이 질문이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 말이다. 그 질문에 대해 영화는 따뜻하고 신뢰 서린 ‘임신 선배’ 지후(오지후)의 목소리를 등장시킨다. 임신 초기, 염증으로 병원에 입원한 은진이 우연히 만난 지후는 은진에게 필요한 말들을 콕 집어 건넨다. 임신한 몸에 적응하느라 지친 은진에게 “나도 그랬어”라고 툭 던지는 한마디, 입원 중인 은진에게 “오늘 뭐 해?”“빵 먹으러 갈래?”라고 묻는 일상의 말들, “괜찮을 거야”라는 다정한 확신까지. 강직으로 요동치는 은진의 다리를 부드럽게 감싸는 지후의 따스함은 의외의 긴장 또한 자아내며 은진의 자기 이해의 길을 닦아준다.


이 다정함은 분명

〈우리 둘 사이에〉
〈우리 둘 사이에〉

은진과 호선은 “내가 아이를 키워도 될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되묻고, 길 한복판에 홀로 남겨진 아이를 차마 지나치지 못하는 성실하고 다정한 이들이다. 그런 마음이 모여 좋은 부모를 만든다. 서로를 깊이 존중하고 아끼는 이들을 부모로 만나, 그 품 안에서 배려의 언어를 배우고, 자신의 선택을 믿는 용기를 익히며, 그들의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날 것이다.

영화는 〈최선의 삶〉(2021)의 조감독, 〈찬실이는 복도 많지〉(2019)의 스크립터 등 다양한 현장 경험을 쌓아온 성지혜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감독의 문제의식이 연출의 출발점이 되었다. 〈장손〉(2024) 〈드라이브〉(2024) 등에 출연한 김시은은 단단함과 연약함을 동시에 품은 은진을 섬세하게 표현해 내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7월 3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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